피터 자덱(Peter Zadek)은 베를린 극장 만남(Berliner Theatertreffen)에 무려 21회나 초청된, 그 누구도 넘지 못한 기록의 소유자다.
생전에 이미 피터 자덱은 한 명의 전설이었다. 그의 수많은 연출작들이 관객과 비평가 사이에서 격렬한 찬반 논쟁을 불러일으켰기 때문이다. 아니, 바로 그렇기에 더욱 전설이었다. 오늘날 그의 대표작으로 꼽히는 함부르크 연출작 '룰루(Lulu)'는 실제로 연극계 굴지의 스캔들을 일으킨 바 있다. 이 거장은 1926년 5월 19일, 지금으로부터 90년 전 베를린에서 태어났다.
자신만의 극단, 어린 시절의 꿈
피터 자덱은 첫 자서전의 제목을 '나의 길(My Way)'이라 붙였다. 그리고 실제로 그는 늘 자기만의 길을 걸었다. 곧게 나아가기보다는 예상치 못한 굴곡과 회전을 거듭하면서 말이다. 오랜 동료였던 드라마투르그 헤르만 바일(Hermann Beil)은 그를 이렇게 회상했다. "내가 그에게서 참 매력적으로 느끼는 점은, 한 줄기를 고집스럽게 고수하지 않고 구불거리는 곡선을 그리며 방향을 바꿔간다는 것, 그런 점에서 언제나 호기심으로 가득하다는 것이다."
2005년, 세상을 떠나기 4년 전, 자덱은 어린 시절의 꿈 하나를 이루었다. 톰 슈트롬베르크(Tom Stromberg)와 함께 자신만의 극단을 만든 것이다. 그 이름도 당연히 '마이 웨이 프로덕션스(My Way Productions)'였다. 평생 그의 연극적 중심이었던 셰익스피어 작품을 선보였는데, 그것도 수십 년에 걸쳐 형성된 '자덱 패밀리' 소속 배우들, 즉 에바 마테스(Eva Mattes), 우베 봄(Uwe Bohm), 주잔네 로타르(Susanne Lothar), 안겔라 빙클러(Angela Winkler) 같은 배우들의 무대였다.
리허설 내내 며칠씩 침묵하던 감독
배우들과의 관계야말로 피터 자덱에게 있어 핵심이었다. 리허설 중에는 종종 배우들이 며칠 동안 그냥 연기하도록 내버려 두었다. 코멘트 없이 관찰하고 기다리기만 하다 보니 배우들은 절망에 빠지곤 했다. 역시 고인이 된 게르트 포스(Gert Voss)는 자덱의 방식을 이렇게 설명했다. "연극, 특히 연기에는 엄청난 거짓이 숨어 있습니다. 그는 우리 배우들에게 위장하지 않고 자신을 드러내도록 만들었습니다. 그것도 온전한 인간 전체로서요."
'오셀로'와 '룰루', 두 차례의 스캔들
물론 그렇게 자신을 드러내려면 상당한 용기와 강한 의지가 필요했다. 하지만 성공했을 때, 위대한 연극이 탄생했다. 1976년 함부르크 극장(Schauspielhaus)에서 에바 마테스와 울리히 빌트그루버(Ulrich Wildgruber)가 출연해 선보인 '오셀로(Othello)'가 그랬다. 검게 칠한 몸집의 거구 빌트그루버가 무대를 질주하자, 연극계 스캔들은 완성되었다. 언론은 "연극의 무덤을 파는 자다. 사람들에 대한 항복이라는 발상 자체가 끔찍하다. 셰익스피어에 대한 모욕이요, 배우들에 대한 학대다"라고 혹평했다.
12년 후, 다시 같은 함부르크 극장에서 주잔네 로타르 주연의 '룰루'가 공연되었고, 또 한 번의 스캔들이 터졌다. 당시 자덱은 독일 최대의 대사극장 총감독직도 맡고 있었지만, 행정 업무는 전혀 그의 적성이 아니었다. 결국 1989년부터는 프리랜서 감독으로만 활동했다. 그는 자신의 작업을 이렇게 표현했다. "내 재능은 분명 연극에서 사람들과 함께 일하는 데 있습니다. 사람들로부터, 그 혼합물로부터, 사람들이 주제나 희곡, 영화에 담아 오는 상상력을 받아 그것을 형태로 빚어내는 것이지요."
브레멘이 낳은 '세계 연극'
한편 자덱은 스스로를 수줍음 많고 긴장하기 쉬운 사람이라 여겼다. 왜 연극의 길을 선택했는지 정확히 알지 못한다고 고백한 적도 있다. 그는 1933년 부모와 함께 영국으로 이민 갔고, 첫 연출작들을 영국에서 선보였다. "영국에서의 연출 작업은 영국 관객들과 늘 꽤 우스꽝스러운 불화 속에 있었습니다. 다만 이곳에서 생기는 종류의 불화가 아니라, 영국에서는 내가 단순히 '독일인'이었을 뿐입니다"라고 그는 회상했다.
연극을 새로운 시대로 이끌다
1950년대 말 피터 자덱은 독일로 돌아왔고, 1962년 쿠르트 휴브너(Kurt Hübner)와 함께 브레멘으로 자리를 옮겼다. 브레멘 출신으로 당시 극장 청소년 정기 관람권을 끊고 다니던 클라우스 파이만(Claus Peymann)은 그 시절을 이렇게 증언한다. "그곳에서 '세계 연극(Welttheater)'이 탄생했습니다. 새로운 시대의 여명이었죠. 독일 연극이 국제 연극의 수준에 도달했습니다. 어떻게든 나치와 얽혔던 세대가 이뤄낸 전후 비더마이어 시대가 요란하게 막을 내린 것입니다."
브레멘에서 자덱은 셰익스피어의 '자의적인 척결(Measure for Measure)'을 연출해 또 하나의 전설적인 무대를 만들어냈다. 감독 자덱은 셰익스피어 안에서 자신의 연극을 특별하게 만드는 모든 것, 아름다움과 야성, 공포, 외설과 은총을 발견했다. 피터 자덱은 오랜 투병 끝에 2009년 7월 30일 함부르크에서 세상을 떠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