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의 역사

살인자가 이웃에 왔을 때: 함부르크 성파울리를 뒤흔든 살인청부업자의 최후

1980년대, 독일 함부르크에서는 잔혹한 포주 전쟁이 격렬하게 벌어졌습니다. 사건의 핵심 인물이자 중요한 목격자는 살인청부업자 베르너 '무키' 핀츠너(Werner "Mucki" Pinzner)였습니다. 그는 체포 후 모든 것을 자백하며 배후 세력을 폭로했지만, 결국 심문실에서 충격적인 총기 난사 참극을 일으키며 비극적인 최후를 맞이합니다.

1986년 7월 29일, 함부르크 경찰본부 심문실에서 핀츠너는 갑자기 권총을 꺼내 담당 검사를 겨냥해 방아쇠를 당겼고, 이어 아내를, 마지막으로 자신에게 총구를 돌렸습니다. 세 사람 모두 현장에서 사망했습니다. 이른바 '성파울리 킬러(St. Pauli Killer)'라 불린 핀츠너는 세 달여 전인 같은 해 4월 15일 체포된 뒤 구속 상태에 있었습니다. 이 참극 이후 함부르크 사법 당국과 경찰은 거센 비판에 직면했고, 두 명의 상원의원(지방장관)이 자리를 물러나야 했습니다.

1970년대: 동네 거물들의 시대가 저물다

사실 이 극단적 사건 이전부터 성파울리 지역의 분위기는 크게 변하고 있었습니다. 1970년대 중반까지 이 동네의 실권은 빌프리트 '프리다' 슐츠(Wilfried "Frieda" Schulz)가 쥐고 있었습니다. 성파울리의 '대부'로 불린 그는 강력한 제국을 일궜고, 로이퍼반(Reeperbahn)의 총독처럼 존경받았습니다. 누군가 말썽을 일으키면 슐츠는 비공식 재판을 열고 판결을 내렸습니다. 가장 무거운 형벌은 '성파울리 추방령'이었는데, 이는 대개 해당 인물의 완전한 몰락을 의미했습니다. 추방되면 유흥가에서의 모든 지분도 무효화되었기 때문입니다.

새 포주 조직의 이름은 'GmbH'와 '누텔라'

1970년대 말, 슐츠는 영향력을 잃기 시작합니다. 성파울리에는 두 개의 포주 조직이 세력을 확장하고 있었습니다. 하나는 멤버들의 이니셜에서 이름을 딴 'GmbH', 다른 하나는 이른바 '누텔라 갱(Nutella Bande)'이었습니다. 젊은이들로 구성된 이 집단에게 이 별명을 붙인 것은 연장자 라이벌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소년들을 비웃으며 "크고 튼튼하게 자라려면 누텔라 빵을 더 먹어야 한다"며 놀렸다고 합니다.

전직 경찰관 발데마르 파울젠(Waldemar Paulsen)은 이 동네의 모든 거물들과 직접 아는 사이였습니다. 그는 1972년부터 성파울리에서 포주·매춘 관련 사건을 담당하는 형사로 근무하며, GmbH가 단숨에 수백 명의 매춘부를 거느린 제국을 건설하는 과정을 지켜봤습니다. "저들은 끝없는 현금을 갖고 있었어요. 주머니에서 돈이 쏟아져 나왔죠"라고 파울젠은 회상합니다. GmbH의 'M'에 해당하는 미하엘 '미샤' 루히팅(Michael "Mischa" Luchting)은 그 시절 맞춤 양복만 입었고, 롤스로이스를 몰고 로이퍼반을 활보했습니다. 파울젠은 감탄을 금치 못했습니다. "남자든 여자든 발 밑에 두고 부릴 줄 아는 똑똑한 놈이었지요."

그런데 곧 이 성공적인 포주들에게 까다로운 형사 파울젠은 눈엣가시가 됩니다. GmbH는 음모를 꾸며 파울젠을 몰아내려 합니다. 계획은 이랬습니다. 어디서나 '붉은 여우'로 불리던 그 경찰관이 매춘부를 고용했다는 소문을 퍼뜨리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파울젠은 이 계획을 미리 알아차리고 교활한 음모를 좌절시킵니다.

마약이 부추긴 피비린 포주 전쟁

1980년대 초, 코카인이 등장하면서 상황이 급변합니다. 포주들에게 코카인은 단순한 새 수입원 이상의 의미를 지녔습니다. 파울젠의 말입니다. "거리에 마약이 너무 많이 돌았고, 놈들은 서로를 쏘며 완전히 예측 불허가 되었어요." 중독에 빠진 이들은 스스로 무덤을 팠습니다. 업계의 원로들은 거래처들에게 마약을 '금지'시켰고, 마약에 빠진 자들은 축출당했습니다. GmbH 출신의 전직 브로델(매춘업소) 보스 '미샤'도 실각합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는 뤼네부르크 헤이데(Lüneburger Heide) 숲에서 목 매달린 채 발견됩니다.

1981년, '리체' 술집에서 벌어진 첫 청부살인

곧 GmbH는 와해됩니다. 이후 성파울리의 주도권은 '비너 페터(Wiener Peter)'로 알려진 페터 N.이 쥐게 됩니다. 1981년 9월 28일, 유명한 술집 '리체(Ritze)'에서 첫 청부살인이 벌어졌을 때, '비너 페터'는 피해자인 그의 동업자 '차이니즈 프리츠' 바로 옆에 앉아 있었습니다. 정확히 누가 그를 죽였는지는 밝혀지지 않았지만, 파울젠에 따르면 코카인 중독에 빠진 동업자가 은퇴하려 하자 '비너 페터'가 직접 살인자를 고용했다는 정황이 많다고 합니다. 이 폭력사건을 기점으로 성파울리에는 피비린 포주 전쟁이 시작됩니다.

갱단 사이의 대립은 극도로 첨예해졌습니다. 훗날 '성파울리 킬러'로 머릿기사를 장식할 남자는 당시 치명적인 강도 사건으로 10년형을 복용 중이었습니다. '산타 푸(Santa Fu)'라 불리는 풀스뷔텔 교도소(JVA Fuhlsbüttel)에서 베르너 '무키' 핀츠너는 마약을 접하게 되고, 코카인은 그의 늘 곁에 있는 동반자가 됩니다. 출소 후 그는 홍등가에서 첫 인맥을 쌓았습니다.

교도소 안에서도 이름을 떨친 핀츠너

핀츠너는 1984년 7월 외출 중 첫 살인을 저지릅니다. 그는 총기를 구해 킬(Kiel)에서 업계 사람들을 협박하던 전직 브로델 운영자를 사살한 것입니다. 복귀 후 그는 총을 교도소 사물함에 숨겨둡니다. 얼마 후 모범 행실로 조기 석방된 핀츠너의 '무자비한 무법자'라는 평판은 이미 업계에 널리 퍼져 있었습니다.

9개월간 벌어진 네 건의 살인

이후 9개월 동안 네 건의 살인이 추가로 일어납니다. 배후 의뢰인은 언제나 강력한 포주 두목 '비너 페터'였습니다. 핀츠너는 늘 .38구경 아르미니우스 리볼버로 총격을 가했습니다. 어떤 청부살인자도 같은 무기를 두 번 사용하지 않는데, 핀츠너는 오히려 모든 사건 현장에 자신의 '명함'을 남기듯 흔적을 남겼습니다.

점점 그는 '거래 상대'들에게도 위험한 존재가 됩니다. 청부살인으로 큰돈을 벌었지만 그는 더 많은 몫을 요구했고, 심지어 브로델 지분까지 탐냈습니다. 결국 핀츠너는 의뢰인과 공범들에게 감당하기 힘든 위험천만한 존재가 되었고, 그들은 '성파울리 킬러'를 영원히 없애기로 결심합니다.

1986년 4월 15일, 핀츠너 검거

하지만 살인 계획을 실행하기도 전인 1986년 4월 15일, 경찰 특수부대(SEK)가 함부르크 바름베크의 핀츠너 아파트에 투입되어 연쇄살인범을 체포합니다. 구속 후 그의 신변 안전이 최우선 과제가 됩니다. 그는 자신을 고용한 배후 실세들에 대한 중요한 증인이었기 때문입니다. 체포된 후에도 핀츠너는 여러 거물들에게 여전히 위험한 존재였습니다.

그의 곁에는 아내 유타(Jutta)와 변호사 이졸데 O.(Isolde O.)가 있었습니다. 변호사는 핀츠너에게 메시지와 마약을 전달해 주었고, 언론에 그를 적극적으로 홍보하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결국 그녀는 핀츠너의 마지막 '무대'에서 공범이 됩니다.

공범이 된 변호사

구속 기간 동안 핀츠너는 폭넓게 진술하며 다섯 건의 살인을 자백합니다. 동시에 그는 자신의 '영웅적 퇴장'을 위해 만반의 준비를 하고 있었습니다. 마지막 심문 날짜는 1986년 7월 29일로 잡혔습니다. 핀츠너는 또 다른 살인 사건의 세부 내용을 진술하겠다고 밝혔습니다. 그의 변호사와 아내 유타는 이 심문에 숨겨진 그의 진짜 계획을 알고 있었습니다. 변호사가 리볼버를 구했고, 아내가 그것을 경찰본부 심문실로 반입했습니다. 베를리너 토(Berliner Tor) 소재 경찰본부에서 담당 검사 볼프강 비스트리(Wolfgang Bistry)는 복도에서 두 여성을 만나 신사적으로 보안 게이트를 열어주었습니다. 아무도 두 사람을 검문하지 않았습니다. 화장실에서 은닉해 온 스미스 앤 웨슨 리볼버는 손가방으로 옮겨졌습니다.

심문실에는 유타 핀츠너와 변호사 외에 검사 비스트리, 타이피스트 한 명, 무장하지 않은 경찰관 두 명이 있었습니다. 법률 설명이 끝난 후 비스트리는 피고인에게 약속했던 세부 내용을 말하라고 요청했습니다. "자, 그럼 말씀하세요." 핀츠너는 무기를 들어 비스트리를 쏘았고, 자신의 앞에 무릎 꿇은 아내를 쏘았으며, 마지막으로 자신에게 총구를 겨눴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핀츠너의 살인 공범들과 의뢰인 '비너 페터'가 체포됩니다. 그는 종신형을 선고받았고, 형기를 마친 후 2001년에 출소했습니다. 1980년대 이후 성파울리의 분위기는 근본적으로 변했습니다. 오늘날 성파울리를 장악한 것은 완전히 다른 조직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