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0년대 초, 독일 여객선 '유로파(Europa)'는 대서양을 가로지르는 가장 빠른 배였습니다. 그러나 이 호화 여객선의 시작은 순탄하지 않았습니다. 취역을 앞두고 '유로파' 호는 대형 화재로 거의 완전히 파괴되고 말았습니다.
최첨단 기술, 압도적인 럭셔리함, 그리고 빠른 속도. 1928년 8월 15일, 여객선 '유로파'가 함부르크의 블롬+포스(Blohm + Voss) 조선소에서 진수되었습니다. 해운 회사 노르트도이처 로이드(Norddeutscher Lloyd)는 특유의 낮은 깔때기가 인상적인 이 우아한 배를 뉴욕행 대서양 횡단 항로의 고속 여객선으로 운항할 계획이었습니다. 약 2,000명의 승객을 수용할 수 있는 9개의 갑판을 갖추고, 연회장과 겨울 정원까지 갖춘 이 배는 승객들에게 쾌적한 횡단 여행을 약속했습니다.
대형 화재로 거의 완성된 선박이 파괴되다
그러나 '유로파' 호가 취역하기 직전인 1929년 3월 26일, 선내에서 대형 화재가 발생했습니다. 배는 약 20시간 동안 불길에 휩싸였고, 소화 작업에 투입된 방대한 양의 물이 선내로 유입되면서 결국 바닥에 가라앉았습니다. '유로파'는 거의 완전히 파괴되었지만, 조선소와 해운 회사는 배를 복원하기로 결정합니다. 복구 작업은 불과 11개월 만에 마무리되었으며, 화재의 원인은 지금까지도 밝혀지지 않았습니다.
4일 반 만에 뉴욕까지 — '블루 리밴드' 획득
1930년 3월 19일, '유로파' 호는 처녀 항해를 위해 뉴욕으로 향했습니다. 프랑스 셰르부르에서 뉴욕까지 단 4일 16시간 48분 만에 항해한 것입니다. 자매선 '브레멘(Bremen)'보다 조금 더 빠른 기록으로 대서양 횡단 최고 속도 기록을 경신하며 '블루 리밴드(Blue Riband)'를 차지했습니다. 다만 이후 '유로파'는 이 상을 '브레멘' 호에 다시 넘겨주어야 했습니다.
'슬링 비행'으로 시작된 항공 우편의 새 장
'유로파' 호의 특별한 특징은 두 개의 깔때기 사이 상부 갑판에 자리한 캐터펄트(발사대)였습니다. 이곳에서 우편물을 실은 수상 비행기가 이륙해, 배가 목적지 항구에 도착하기 전에 수백 킬로미터를 날아가 편지와 소포를 먼저 전달할 수 있었습니다. 이른바 '슬링 비행(Sling Flight)'이라 불린 이 방식은 우편 배송 시간을 무려 1~2일이나 단축시켰습니다.
병력 수송선, 그리고 난민선으로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면서 이 호화 여객선은 더 이상 여객선 역할을 하지 못하고 독일 해군의 숙소선으로 사용되었으며, 이후 병력 수송선으로 개조되었습니다. 전쟁이 끝나기 직전인 1945년 3월에는 스비네뮌데(Swinemünde)에서 뤼베크 만과 킬(Kiel)까지 난민들을 실어 나르는 구조 임무를 수행했습니다. 전쟁이 끝난 후 미국은 '유로파' 호를 압류했고, 이후 전쟁 배상금의 일환으로 프랑스에 넘겨주었습니다. 프랑스에서는 '리베르테(Liberté)'라는 이름으로 개조되어 1961년까지 르아브르-뉴욕 항로에서 운항했습니다. 1962년, 이 배는 이탈리아 북부 라스페치아에서 해체되며 긴 항해 인생을 마감했습니다.
'MS 유로파': 호화로운 후속작들
1928년에 진수된 '유로파'는 노르트도이처 로이드가 보유한 이 이름의 세 번째 선박이었습니다. 이후에도 같은 이름을 가진 여객선 세 척이 더 등장했습니다. 시리즈 여섯 번째 배인 크루즈선 'MS 유로파'는 1999년에 건조되어 현재도 하파크로이드 크루즈(Hapag-Lloyd Cruises)의 바다를 누비고 있으며, 2011년에 건조된 '유로파 2'는 세계에서 가장 호화로운 크루즈선 중 하나로 꼽힙니다.
2018년 8월 15일 오후 2시 31분
편집자 주: 이 글의 초기 버전에는 오류가 있었습니다. '유로파' 호를 거의 전멸시킬 뻔한 대형 화재는 1919년이 아니라 1929년 3월 26일에 발생했습니다. 이 점 정정하며 사과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