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의 역사

비행선이 전쟁 무기가 된 날: 제1차 세계대전 체펠린 폭격기의 탄생

작성: 디르크 헴펠(Dirk Hempel), NDR.de

1914년 8월 1일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했을 때, 카이저 빌헬름 2세의 최신 무기는 아직 전력으로 가동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전년도에 창설된 해군 비행선 부서가 보유한 비행선은 단 한 대뿐이었습니다. 그러나 영국 첩보부는 이미 독일 제국의 중앙 비행선 기지가 쿡스하펜 남쪽 노르드홀츠에 건설 중이라는 사실을 파악한 상태였습니다. 격납고, 숙소, 작업장, 자체 가스 생산 시설까지 갖춘 이 기지에는 1,800만 마르크 이상이 투입되었습니다.

라이트 형제보다 앞선 도전, 체펠린 비행선의 탄생

그로부터 불과 14년 전, 페르디난트 그라프 체펠린(Ferdinand Graf Zeppelin) 백작은 콘스탄스 호수변 프리드리히스하펜에서 길이 128미터의 최초의 비행선 LZ 1을 발사했습니다. 그것은 1903년 라이트 형제가 동력 비행기로 이륙하기 3년 전의 일이었습니다. 기구(풍선)를 이용한 비행 실험 자체는 18세기부터 존재했지만, 그라프 체펠린이 만든 것은 바람의 방향에 좌우되지 않고 스스로 조종할 수 있는 비행선이었습니다. 그는 25년 넘게 재산을 모두 쏟아부으며 이 꿈을 관철했습니다.

이제 비행선 열풍이 독일 전역을 사로잡았습니다. 체펠린호를 비롯한 비행선들이 곧 독일 주요 도시를 잇는 운항에 나설 예정이었습니다. 1912년에는 함부르크 푸흘스뷔텔(Hamburg-Fuhlsbüttel)에 최초의 비행선 격납고가 건설되었는데, 이곳이 바로 오늘날 함부르크 공항의 시초입니다. 그라프 체펠린은 이미 미국행 정기 항공편 구상까지 진행하고 있었습니다.

전쟁이 시작되자 비행선은 무기가 되다

한편 군부 역시 새로운 비행체에 주목하고 있었습니다. 전쟁이 발발하자 육군과 해군은 신속히 준비를 마쳤습니다. 1915년 6월까지 노르드홀츠에는 4대의 비행선이 주둔했고, 동프리슬란트의 하게(Hage)와 비트문트하펜(Wittmundhafen), 올덴부르크 인근 알호른(Ahlhorn), 슐레스비히 북부 퇸네르(Tønder) 등에도 착륙장이 건설되었습니다. 부대는 곧 장교와 병사 약 4,000명 규모로 확장되었으며, 대부분 "안팎으로 매달려" 폭탄을 다루는 병사들이었습니다. 그라프 체펠린 본인도 북부로 배송되는 함정과 함께 직접 동행했습니다. 현지 훈련은 전직 저널리스트이자 그라프 체펠린의 절친한 친구였던 휴고 에케너(Hugo Eckener)가 관리했습니다.

초기에 비행선은 정찰 임무에만 투입되었습니다. 영국 잠수함의 위치를 파악하고 기뢰밭을 표시하는 것이 임무였습니다. 그러나 노르드홀츠에 참모진과 함께 머물며 비행선 부대를 지휘하는 호위함 함장 페터 슈트라서(Peter Strasser)는 곧 특히 영국의 산업 지역과 수송로를 상대로 한 장거리 폭격 작전을 강력히 요구합니다. 그의 부하들은 전투에 목말라 격납고에서 잠들 정도였습니다. 그러나 카이저 빌헬름 2세는 망설였습니다. 그는 영국 왕실과 혈연 관계였고, 민간인에 대한 공격은 전쟁 범죄로 간주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1914년 크리스마스, 영국군 항공기가 노르드홀츠를 기습 공격하면서 상황이 반전됩니다. 1915년 1월 10일, 카이저는 마침내 영국 내 군사 목표물에 대한 폭격을 승인합니다. 단, 런던만은 예외로 남겨두었습니다. 9일 후, 3대의 비행선이 독일 북부에서 이륙합니다. 정오 무렵, 300명의 병사가 길이 158미터의 거대 비행선들을 격납고 밖으로 끌어내며 출격 준비를 마쳤습니다.

1915년 1월 19일, 영국 상공에 나타난 비행선

거대한 가스 셀에 담긴 22,000입방미터의 고가연성 수소 가스가 비행선을 공중에 띄웠습니다. 가스 셀은 금박 처리된 얇은 소 창자막을 여러 겹 접착해 만든 것으로, 한 척당 무려 70만 개가 사용되었습니다. 알루미늄 골조를 덮는 외피는 옻칠한 면 직물로 꿰매어졌으며, 그 크기는 축구장 4개에 달했습니다. 비행선의 동력은 마이바흐(Maybach) 가솔린 엔진이 담당했습니다.

초기 무장은 500kg에 불과했지만, 이후 최대 5톤의 폭탄과 다수의 기관총을 장착하게 됩니다. 약 15명으로 구성된 승무원에는 비행 중 외피 손상을 수리할 돛 제작자까지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비행선 상단에는 기관총 사격용 플랫폼이 설치되어 있었는데, 이곳의 사수들은 두꺼운 가죽 장구, 모피, 펠트 신발로 혹한을 버텨야 했습니다. 고도 5,000미터에서는 영하 30도가 측정되었습니다.

1915년 1월 19일 저녁, 비행선들은 드디어 영국 해안에 도착했습니다. 달 없는 어두운 밤, 검은 하늘에 비행선의 검은 실루엣은 식별하기 어려웠습니다. 당시 영국에는 항공기 요격이든 대포든 어떠한 대공 방어 체계도 갖춰져 있지 않았습니다. 비행선들은 노퍽(Norfolk)의 부두에 폭탄을 투하했습니다. 이 공격으로 4명이 사망하고 16명이 부상당했습니다. 영국은 근대전에서 자신들의 고립된 섬나라가 더 이상 안전하지 않다는 사실을 깨닫고 큰 충격에 빠집니다.

  • 1부: 비행선이 무기가 됩니다
  • 2부: 런던 상공의 비행선 폭격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