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남자는 폐허에 대한 비밀스러운 매력을 지니고 있습니다. 이 감정은 우리 본성의 연약함, 파괴된 기념물, 그리고 우리 존재의 덧없음 사이에서 느끼는 은밀한 일치에서 비롯됩니다."
— 르네 드 샤토브리앙(René de Chateaubriand)

고대 유적은 때때로 잔잔한 물결에 비치거나, 덩굴과 관목 숲에 반쯤 숨겨진 채 잠들어 있습니다. 평온한 시골의 자연, 언제나 맑은 하늘, 나무 틈새로 스며드는 해질녘의 햇살. 비슷한 색조가 주고받는 부드러운 화음과 분주하게 움직이는 인물들 사이에 묘사되는 건축물의 놀랄 만큼 정교한 기법. 이 모든 광경은 프랑스 화가 휴버트 로버트(Hubert Robert, 1733~1808)의 캔버스 위에서 펼쳐집니다.
프랑스의 풍경화가 로버트는 이상화된 자연에 둘러싸인 고대 유적의 낭만적인 이미지를 대형 캔버스에 담아내며 유럽 전역에 이름을 알렸습니다. 사람들은 그를 '로베르 데 루앵(Robert des Ruins)', 곧 '폐허의 로버트'라 불렀습니다.

탁월한 고대 미술 감식안을 지녔던 그의 그림 속 유적에는 언제나 낭만적인 정서가 배어 있습니다. 마치 화가가 고대 로마의 기념물을 바라보며 먼 세월 저편의 위대함을 애도하는 듯한 인상입니다. 존재의 무상함을 응시하는 것은 그의 주된 모티프이자 가장 즐겨 그린 주제였습니다.
그러나 로버트는 이 건축물들을 세운 과거의 사람들을 기억하면서도, 현재를 결코 외면하지 않습니다. 그는 쾌활한 동시대인들과 함께 폐허 속에 살며, 때로는 옛 상징을 헐거나 그 파괴에 일조하기도 합니다. 로버트가 그린 폐허는 대개 사람들로 북적입니다. 사람들은 그곳에 살고, 가축을 치고, 빨래를 널었다 개며, 가장 일상적인 일들을 이어 갑니다. 이따금 폐허의 주민들 사이에서 낡은 현관의 그늘 아래 꿈꾸는 한 예술가의 모습을 발견하게 되는데, 이 인물이 바로 화가 자신인 경우가 많습니다.

'폐허 건축 풍경'의 대가로 불리는 이 장르는 18세기 후반 회화를 가장 잘 보여주는 특징 가운데 하나입니다. 물론 로버트가 이 예술 장르를 처음 개척했다는 뜻은 아닙니다. 그보다 훨씬 이전부터 고대 건축물의 폐허 이미지는 회화 속에 존재했으며, 유적은 국가를 불문하고 모든 고전주의 풍경화에서 빼놓을 수 없는 요소였습니다.

주로 로마의 기념물을 소재로 한 로버트의 작품들은 오늘날까지 철저하게 연구되고 기록되어 왔습니다. 늘 연구자들의 관심 한가운데 있었던 이 그림들에는 웅장한 이탈리아 르네상스 궁전과 빌라의 모습뿐 아니라, 베르사유와 말리(Marly)를 비롯한 프랑스의 그림 같은 공원과 별장이 가득합니다. 이러한 작품에 대한 관심은 지극히 당연합니다. 미술사적으로도 매우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이 작품들은 동시대인들 사이에서 화가를 일약 유명 인사로 만들었고, '폐허의 로버트'라는 별명을 안겨 주었으며, 당대 최고의 미술 비평가 드니 디드로(Denis Diderot)의 따뜻한 찬사를 받았습니다.

이미 초기 작품부터 로버트는 당대 건축 풍경화의 거장들과 뚜렷이 구별되었습니다. 다른 화가들이 건축 디테일의 충실한 재현을 사명으로 여겼다면, 로버트는 색채와 톤을 통해 자연과 유적의 조화를 전달하는 데 주력했습니다. 대작 <폐허가 된 신전과 연설을 듣는 사람들이 있는 풍경>에서 오른쪽에 그려진 궁전의 석조 골격은, 연기를 피워 올리는 왕관 같은 수관과 우람하고 구불구불한 줄기를 지닌 회화적인 소나무들과 균형을 이룹니다. 그림 깊숙한 자리의 열주(列柱)는 푸르스름한 안개에 잠긴 거대한 나무들 앞에서 한층 시적으로 다가옵니다.

로버트의 그림에 등장하는 사람들은 오래된 건물 사이에서 즐겁게 지내며 고대와 친근하게 '동거'합니다. 사람이 없다면 오래된 건축물은 차갑고 불편해 보일 것입니다. 이처럼 휴버트 로버트는 회화와 장식 예술의 역사에서 결코 빼놓을 수 없는 독보적인 화가로 기억되고 있습니다.
출처 및 참고자료
유니버셜리스(Universalis) · 갈리카(Gallica) · 라루스(Larousse) · 루브르 박물관(Musée du Louv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