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상 가장 대표적인 제스처를 꼽으라고 하면 많은 이들이 모나리자의 미소를 떠올립니다. 하지만 이 글에서 소개하는 것은 그와는 다른, 무려 2천 년 넘게 예술가들의 영감을 자극해 온 장면입니다. 바로 '스키피오의 관용'이라 불리는 제스처입니다.
기록에 남긴 이들: 폴리비우스와 리비우스
고대 그리스의 역사가 폴리비우스와 로마의 역사가 티투스 리비우스는 스키피오 아프리카누스가 카르타고 노바(오늘날 스페인 카르타헤나)를 정복한 직후 벌어진 이 일화를 상세히 기록했습니다. 로마 문화의 우월성과 승자의 자비를 선포하려는 의도가 분명히 읽히는 서사입니다.
일화의 전말 — 전쟁 포로가 된 이베리아 공주
카르타고 노바 함락 후, 로마 병사들은 전리품으로 붙잡아 온 이베리아 공주를 스키피오에게 헌상했습니다. 기록에 따르면 그 소녀는 보는 이를 취하게 만들 만큼 아름다웠다고 합니다. 젊은 여성은 자신이 정복자의 손에 든 것이나 다름없다고 생각했고, 마침내 용기를 내어 이렇게 말했습니다. “저는 이미 루시우스와 약혼한 몸입니다.” 루시우스는 켈티베리아의 지도자였습니다.
딸의 처지를 알게 된 아버지는 큰 몸값을 마련하고 직접 스키피오를 찾아갔습니다. 그러나 기대와 달리 스키피오는 공주를 아버지에게 돌려보냈을 뿐 아니라, 받은 몸값을 딸의 결혼 지참금으로 쓰라고 권했습니다. 이후 루시우스는 감사의 표시로 자신과 병사들을 이끌고 스키피오의 군대에 보조 부대로 합류했습니다.
예술 전 분야에 남은 '스키피오의 관용'
이 인도주의적 행위는 시대와 매체를 넘어 반복적으로 재현된 주제가 되었습니다.
조각
- 15세기에는 이 모티프를 바탕으로 보석, 조각품, 카메오가 새겨졌습니다.
회화
- 르네상스 이탈리아 화가 핀투리키오(Pinturicchio)의 패널화
- 1505년, 조반니 벨리니(Giovanni Bellini)의 대형 그림
- 17세기 플랑드르 화가 안토니 반 다이크(Anthony van Dyck)의 캔버스 두 점
- 17세기 프랑스의 니콜라 푸생(Nicolas Poussin)과 르무안(Lemoine)의 작품 두 점
- 18세기 베네치아의 티에폴로(Tiepolo)의 대형 그림
- 19세기 페데리코 데 마드라소(Federico de Madrazo)의 작품
오페라
- 프란체스코 카발리, 알레산드로 스카를라티, 토마소 알비노니, 게오르크 F. 헨델, J. C. 바흐 등이 이 주제로 오페라를 작곡했습니다. 1664년부터 1815년 사이에만도 관련 작품이 잇달아 탄생했습니다.
문학
- 여러 문학 작품이 '스키피오의 관용'을 소재로 이 일화를 다루고 해석했습니다.

스키피오의 관용

스키피오의 관용 2
사진 출처: 위키피디아 / 참고 자료: 『판타레이와 스페인, 새로운 역사』(호세 엔리케 루이스-도메네크)
'스키피오의 관용'은 단순한 고사가 아니라, 승자의 덕목이 정치적 명분과 예술적 영감으로 이어진 대표 사례입니다. 고대 역사가들의 기록에서 시작해 르네상스와 바로크를 거쳐 19세기 회화까지 이어진 이 주제는, 오늘날에도 리더십과 자비를 논할 때 자주 인용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