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3년, 역사학자 블라시스 아그지디스(Vlassis Agzidis)는 1924년에 발행된 세 개의 신문 보도를 발굴해냈습니다. 이 보도들은 무스타파 케말 아타튀르크 정부가 영국 선적의 화물선을 통해 인골 약 400톤(약 5만 구의 시신에 해당하는 분량)을 프랑스 마르세유 항으로 운송했던 사실을 담고 있었습니다. 당시 《뉴욕타임스》, 프랑스 신문 《미디(Midi)》, 그리고 그리스 신문 《마케도니아(Makedonia)》에 실린 이 기사들은 해당 유해가 터키 마르마라 해 연안의 무다니야(Moudania) 항에서 선적되었음을 상세히 기록하고 있습니다.
인골이 산업용 원자재가 되던 시대
아그지디스는 이 유해들이 산업용 원자재로 사용될 목적으로 반출되었을 가능성을 제기했습니다. 사실 사람의 뼈를 거름으로 만드는 관행은 19세기 초반에는 결코 드문 일이 아니었습니다. 실제로 1815년 워털루 전투 직후에도 이러한 일이 벌어졌습니다.
2014년 8월 3일자 영국 《인디펜던트》에 로버트 피스크(Robert Fisk)는 다음과 같이 기고했습니다. "워털루 전투 이후, 전사자들의 뼈는 잉글랜드의 푸르고 아름다운 땅의 비료로 쓰이기 위해 헐(Hull) 항으로运반입되었고, 이빨은 살아있는 사람들의 의치(人工齒) 제작에 사용되었다."
19세기 국제 인골 무역의 증거
2015년 3월, 조 터너(Joe Turner)가 당시 기록 보관소의 신문 보도를 바탕으로 수행한 연구 역시 19세기에 실제로 인골의 국제 무역이 존재했다는 신뢰할 만한 증거를 확인해냈습니다.
아그지디스에 따르면, 당시 프랑스는 친(親)터키 노선을 걷고 있었기 때문에, 프랑스 입장에서 학살당한 그리스인과 아르메니아인의 유해를 산업용으로 구매하는 것은 큰 도덕적 부담이 되지 않았다고 합니다.
1924년 언론이 기록한 '충격적인 화물'
1924년 12월 23일자 《뉴욕타임스》는 다음과 같이 보도했습니다.
"마르세유는 기묘한 소문에 떠들썩하다. 영국 선기를 달고 '잔(Zan)'이라는 이름을 가진 한 배가 이 항구에 도착하여, 현지 제조업체들에 공급될 미스터리한 화물, 곧 인골 400톤을 싣고 온 것이었다. 이 뼈들은 마르마라 해의 무다니야 항에서 선적되었으며, 소아시아 학살 희생자들의 유해로 알려졌다. 소문이 확산됨에 따라 조사가 진행될 것으로 예상된다."
프랑스 신문 《미디》 역시 '슬픈 화물(A Sad Cargo)'이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다음과 같이 전했습니다.
"현재 마르세유에서는 화물선 잔호가 곧 입항하여 마르세유의 각종 산업에 공급될 인골 400톤을 실어 올 것이라는 소식으로 시끄럽다. 이 인간의 유해는 터키 내 아르메니아인 절멸 수용소들, 특히 소아시아 지역에서 나온 것이다."
1922년 소아시아에서 벌어진 대학살의 비극은 여기서 끝나지 않고, 희생자들의 유해마저 하나의 '상품'으로 유통되는 형태로 이어졌습니다. 이 사건은 전쟁과 학살이 인간 존엄성을 얼마나 철저하게 짓밟을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충격적인 사례로 오늘날까지 회자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