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의 역사

도쿄 한복판의 저주받은 머리, 슬리피 할로우의 사무라이

도쿄 도심에 잠든 '저주받은 머리'

네온사인과 콘크리트 건물이 밀집한 도쿄의 한복판에는 아주 작은 무덤 하나가 자리하고 있다. 그곳에는 일본 역사상 가장 악명 높은 반역자 중 한 명으로 꼽히는 다이라노 마사카도(平将門)의 유해가 오랜 세월 잠들어 있다. 흥미로운 점은 그곳에 안장된 것이 온전한 시신이 아니라, 죄를 물어 목에서 잘려나간 '머리'뿐이라는 사실이다. 더욱 기묘한 것은, 이 무덤을 둘러싼 지역, 즉 일본의 월스트리트라 불리는 오오테마치(大手町) 일대에서 벌어진다고 전해지는 기이한 사건들과 의문의 죽음들이다.

잘못된 블로그에 들어온 것이 아니다. 여기는 여전히 '역사 이야기'를 다루는 공간이다. 다만 일본에서는 역사와 전설이 거의 언제나 손을 잡고 나란히 걷기 때문이다. 우리는 현실과 허구를 구분해 보면서, 이른바 '슬리피 할로우의 사무라이'라 불리는 이 저주받은 머리가 어떻게 그곳에 안치되었는지, 그리고 마사카도가 정말로 사람들이 그리는 만큼 악당이었는지를 살펴보려 한다.

도쿄 한복판의 저주받은 머리, 슬리피 할로우의 사무라이

마사카도 묘소 표지

무사의 시대, 헤이안의 그늘

10세기 말, 일본은 예술과 문화가 만개한 헤이안 시대 한복판에 있었다. 나라는 이론상 천황의 직접 통치 아래 있었고, 찬란하게 빛나는 새 수도 교토의 궁궐에서 천황이 모든 것을 명령하는 형태였다. 그러나 '천자'와 궁정 귀족들은 통치보다 시가 짓기에 더 몰두했고, 국정의 실권은 몇몇 유력 귀족 가문이 쥐고 제멋대로 휘두르고 있었다.

같은 시기 수도에서 멀리 떨어진 지방에서는 무사 기질이 짙은 향토 귀족층이 번성하기 시작했다. 이들은 명목상으로는 조정을 섬겼지만 실질적으로는 제멋대로 움직였고, 당시의 섭정 따위는 크게 개의치 않았다. 바로 최초의 사무라이들이었다.

그 시절 사무라이란 대체로 다소 거친 부류였다. 불교의 은혜가 미치지 못한 변방에서 야만 부족들과 싸우며 쌀벌이를 했고, 대부분 수백 킬로미터 떨어진 교토에서 술을 홀짝이며 달빛 아래 노래를 읊조리는 타락한 궁정 귀족들의 이익과 영지를 지켜주는 일에 종사했다. 어린 다이라노 마사카도도 이런 지방 무사 중 하나였다. 그는 오늘날의 도쿄에서 멀지 않은 간토평야에서 자랐다. 하지만 명망 있는 다이라(平氏) 가문의 일원으로서, 수도로 올라가 출세할 때가 되었다. 다이라 씨는 가장 오래되고 명망 높은 사무라이 가문 중 하나로, 황실과도 혈연 관계를 맺고 있었으며 태초부터 일본 역사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해왔다.

교토에서 좌절하다

그러나 궁정의 세계는 마사카도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복잡했다. 지방 출신의 무사가 그 화려한 향락가들과 배타적인 특권층 사이에서 자리를 잡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결국 마사카도의 짧은 궁정 경력은 케비이시(検非違使), 즉 당시의 경찰 관료에 해당하는 직위에 지원했다가 실패하면서 급격히 끝나 버렸다. 자리는 배후 연줄이 두터운 인사에게 넘어갔고, 일은 거기서 끝났어도 했다. 그러나 시작부터 성격이 급했던 마사카도는 이 실패를 몹시 격하게 받아들였다. 그는 분노를 삼키며 고향으로 되돌아갔고, 간토의 사무라이가 어떤 존재인지 교토의 교활한 궁정인들에게 똑똑히 보여 주겠다며 반역을 계획하기 시작했다.

천황을 칭한 반역자

그리고 그들은 알게 된다. 마사카도의 반란은 역사에 남을 격의 반란이었고, 순식간에 제국 전체가 뒤흔들렸다. 일부 사료는 그가 스스로를 천황이라 칭하고 교토 궁정에 맞서는 대체 궁정을 간토에 세워, 진짜 천자처럼 관위와 영토를 나누어 주었다고까지 전한다. 그렇게까지 했는지는 의문이지만, 적어도 당시 일본 전역에서 그에게 맞서 입을 열어 보는 자는 없었다. 전장에서의 승리가 연달아 이어졌고, 그에게 파견되는 군대는 하나같이 우스울 만큼 쉽게 격파당했다. 천황을 필두로 한 교토 귀족들은 완전히 발이 묶였다.

도쿄 한복판의 저주받은 머리, 슬리피 할로우의 사무라이

싸우는 마사카도

반란의 진짜 이유

마사카도의 진짜 동기는 분명하지 않다. 사건의 정확한 경위를 재구성하기란 어려운 일이지만, 가장 신뢰할 만한 사료들은 교토에서 모멸을 당한 뒤 꼬리를 내리고 고향으로 돌아온 마사카도가, 이윽고 불행한 가족 간의 분쟁 소용돌이에 말려들었다고 전한다. 다이라 씨의 대대적인 숙적이던 미나모토(源氏) 씨도 이 판국에 끼어들었다. 지방 호족들 사이의 단순한 충돌로 시작된 일은 걷잡을 수 없이 번져, 어느새 마사카도는 제국 정부는 물론 같은 핏줄과도 맞서야 하는 처지가 되었다. 그는 선택의 여지 없이 반역을 선언했을 것이다. 마사카도의 반란은 요컨대 전진하는 도피였다. 반란을 부추기고 파견되는 토벌군을 하나씩 격파하면서, 그는 천황과 대신들을 충분히 눌러 답답하게 만들어 명예로운 타협을 받아낼 수 있기를 바랐다. 문제는 마사카도가 적을 격파하는 데는 탁월했지만 고차원적인 정치 줄타기에는 서툴렀다는 점이다. 상황은 풀리기는커녕 날이 갈수록 걷잡을 수 없이 커져만 갔다.

5년에 걸친 전투 끝에, 그 과정에서 대립하는 각 세력의 수장은 이름이 알려지는 즉시 국적으로, 반대파를 토벌하는 쪽은 황실의 용사로 선언되곤 했다. 마침내 940년 2월 14일, 마사카도는 패배했다. 그의 혁명적 성전은 교토 한복판 창끝에 머리가 꽂히는 것으로 끝을 맺었다.

도쿄 한복판의 저주받은 머리, 슬리피 할로우의 사무라이

날아간 머리의 전설

아니면 그렇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전설에 따르면 마사카도의 머리는 몸에서 떨어진 뒤에도 아직 살아야 할 모험들이 남아 있었다고 한다. 벌레들의 밥이 되는 대신, 기록들은 효수대에 오른 직후 마사카도의 잘린 머리에 끔찍한 일그러짐이 나타나기 시작했다고 전한다. 그의 이빨은 숫돌 위의 칼처럼 사나운 소리를 내며 갈아댔고, 달아오른 숯덩이처럼 분노로 번쩍이는 눈은 눈구멍 밖으로 불룩 튀어나왔다. 마치 다시 살아난 듯했다. 마침내 세상을 향해 저주를 퍼붓으며 복수를 외치던 그의 머리는 공중으로 떠오르더니, 바람을 타고 하늘로 날아올랐다. 떠서, 또 떠서, 가는 곳곳마다 저주를 퍼붓던 그 머리는 마침내 그의 고향 간토, 오늘날 도쿄 대도시권의 한복판에 이르렀다. 그리고 그곳에서 10세기가 지난 지금까지 쉬고 있다.

도쿄 한복판의 저주받은 머리, 슬리피 할로우의 사무라이

마사카도의 무덤

여전히 살아 있는 저주?

하지만 마사카도의 영혼은 손이 많이 가는 존재로 보인다. 지역 주민들이 그에게 마땅한 경의를 표하는 것을 게을리하면, 전염병, 지진 등 온갖 재앙을 일으키기 일쑤라고 한다. 죽은 지 천 년이 지난 지금도, 무시무시한 다이라의 무사는 생전의 그 반골 기질을 그대로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단순한 도시전설일까? 아마 그럴 것이다. 그럼에도 오늘날까지도 도쿄 사람들은 만에 하나를 대비해 마사카도의 무덤을 정성껏 관리하는 일을 소홀히 하지 않는다.


R. 이바르사발(R. Ibarzabal) 집필

출처: The First Samurai: The Life and Legend of the Warrior Rebel — 다이라노 마사카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