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Plantagenets』에서 발췌한 항목
중세 유럽의 가장 유명한 군주 두 사람을 꼽으라면 단연 카스티야의 '현자(El Sabio)' 알폰소 10세와 '스코틀랜드의 망치'로 불린 잉글랜드의 에드워드 1세입니다. 웨일즈를 정복하고 윌리엄 월리스, 로버트 브루스 같은 스코틀랜드의 영웅들과 맞서 싸운 이 잉글랜드 왕에 대해서는 이 블로그와 여러 페이지에서 이미 여러 차례 다룬 바 있습니다. 아래 글들을 통해 에드워드 1세가 이룬 위업의 크기를 가늠해 보실 수 있습니다.
잉글랜드의 에드워드 1세 대 웨일스 왕자 르웰린
에드워드 1세, 웨일스, 그리고 아서왕 전설
영국 왕위 계승자를 가리키는 '웨일스 왕자' 칭호의 유래
윌리엄 월리스 신화의 탄생
그런데 이 두 군주 사이에는 널리 알려지지 않은 특별한 인연이 있습니다. 알폰소 10세가 통치의 절정에 서 있던 1254년, 당시 겨우 15세의 왕자에 불과했던 에드워드는 부르고스에서 알폰소 10세의 손으로 기사 서임을 받았던 것입니다.
13세기 잉글랜드 왕은 가스코뉴를 비롯해 프랑스 땅에 산재한 여러 영토의 영주이기도 했습니다. 이들 영토를 둘러싼 분쟁은 보통 프랑스 왕과 벌어지곤 했지만, 1254년 가스코뉴 문제의 상대는 프랑스 왕이 아니라 카스티야의 알폰소 10세였습니다.
가스코뉴는 카스티야 왕 알폰소 8세의 왕비인 잉글랜드 공주 엘레노어(레오노르) 플랜태저넷의 지참금에 포함되어 있던 땅이었습니다. 물론 이 지참금 조항은 한 번도 효력을 발휘한 적이 없었지만, 그로부터 오랜 세월 동안 엘레노어의 후손들이 해당 영토에 대해 카스티야 왕위에 권리를 주장할 수 있는가 하는 문제가 잠복해 있었습니다. 알폰소 10세가 이 땅을 다시 차지하려 들면서 잉글랜드 왕 헨리 3세와의 갈등이 불붙은 것입니다.
문제를 해결하고, 나아가 어린 아들 에드워드 왕자가 정무를 다루는 일에 단련되기를 바란 헨리 3세는 그를 잉글랜드 사절단의 수장으로 임명해 카스티야로 파견했습니다. 결국 알폰소 10세는 가스코뉴에 대한 자신의 영유권 주장을 접기로 하고, 그 대가로 잉글랜드 왕자 에드워드와 카스티야 왕의 이복누이 레오노르(엘레노어) 사이의 혼사를 주선하기로 합의했습니다. 
이것이 잉글랜드 사절단이 가스코뉴에서 카스티야까지 긴 여정을 떠나 아름다운 도시 부르고스에 도착한 배경이었습니다. 알폰소 왕은 에드워드 왕자의 기사 서임 의식을 라스 우엘가스 수도원에서 거행할 것을 고집했습니다. 카스티야의 왕자들(인판테스)을 위한 서임식이 전통적으로 거행되던 카스티야 수도의 이곳에는, 분쟁의 근원이 되었던 바로 그 인물 — 어린 왕자의 대고모 레오노르 플랜태저넷 — 가 잠들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해서 카스티야의 현자 알폰소 10세라는 위대한 군주가, 훗날 중세 유럽의 또 다른 위대한 군주가 될 잉글랜드의 에드워드, 그러니까 15세 소년에게 기사 작위를 수여한 것입니다.
흥미로운 후일담도 있습니다. 잉글랜드의 에드워드와 카스티야의 엘레노어 사이에서 태어난 셋째 아들은 '알폰소'라는 이름으로 세례를 받았고, 오랜 세월 잉글랜드 왕위 계승자로 지목되었습니다. 만약 그가 아버지보다 먼저 세상을 떠나지 않았다면, '알폰소'라는 카스티야 이름을 가진 잉글랜드 왕이 한 명이 아니라 여러 명 등장했을지도 모릅니다.
출처: 마크 모리스, 『위대하고 끔찍한 왕, 에드워드 1세』(A Great and Terrible King: Edward 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