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메로스(Homer)는 기원전 8세기경에 활동한 고대 그리스의 서사시 시인으로, 서양 문학의 원류라 할 수 있는 『일리아스』와 『오디세이아』를 편찬한 인물로 널리 알려져 있다.

호메로스는 누구인가?
호메로스는 서사시 『일리아스』와 『오디세이아』를 엮은 그리스 시인이다. 역사학자들은 그의 삶에 대해 거의 아는 바가 없으며, 한동안 현재는 위작으로 간주되는 여러 저술들마저 그의 작품으로 여겨졌다. 이 방대한 서사시들을 정리한 업적 덕분에 호메로스는 고대 그리스의 문화와 신화에서 빼놓을 수 없는 존재가 되었다.
오늘날에도 호메로스는 그리스 문화와 신화를 이해하는 가장 중요한 자료 중 하나로 꼽히지만, 그의 작품을 둘러싼 의문점은 많다. 앞선 두 작품은 고대 그리스인들이 널리 사용하던 운율 형식인 장단육보격(dactylic hexameter)으로 지어졌다.
호메로스 요약
- 호메로스는 기원전 8세기 어느 시점에 태어난 것으로 추정된다.
- 출생지는 소아시아(아나톨리아)의 도시 스미르나로 추측된다.
- 고대 그리스인들은 그가 맹인이었으며 '멜레시게네스'라 불렸다고 믿었으나, 두 설 모두 역사학자들에게는 전설로 분류된다.
- 『일리아스』와 『오디세이아』를 편찬한 장본인이다.
- 그의 작품은 1488년 데메트리우스 칼콘딜레스에 의해 처음 출판되었다.
편찬자로서의 호메로스
호메로스는 서사시 『일리아스』와 『오디세이아』로 역사에 이름을 남긴 그리스 시인이다. 다만 호메로스는 이 작품들의 '저자'가 아니라 '편찬자'로 이해된다. 역사학자들은 그가 이미 그리스 구전 전통 속에 존재하던 시들을 모아 문자로 옮긴 인물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호메로스는 고대 그리스의 문화와 신화를 아는 핵심 자료로 평가받으며, 고전기 그리스 문화에서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했다. 그러나 관련 정보가 워낙 부족해 역사학자들이 그의 생애와 작품을 연구하는 데 큰 어려움을 겪고 있다.
출생과 출생지를 둘러싼 미스터리
문제는 호메로스의 전기를 작성하는 단계부터 시작된다. 그가 정확히 언제 태어났는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역사학자들은 그가 기원전 8세기 어느 시점에 태어났을 가능성이 높다고 추정하며, 출생지 또한 확실하지 않다. 그리스 문헌들은 그가 소아시아(오늘날 터키)의 이오니아 지역 출신이라고 기록하고 있다.
고전기에는 여러 그리스 도시들이 자신이 호메로스의 고향이라고 주장했다. 그중 가장 유력한 가설은 이오니아 서해안에 위치한 스미르나(현 터키 이즈미르)라는 도시다. 이 밖에도 키오스와 이오스 같은 섬들도 고향임을 내세웠다.
맹인 설화와 위작들
호메로스에 관한 고대 문헌 중에는 그가 멜레시게네스(Melesigenes)라 불렸다는 기록도 있다. 이는 스미르나를 흐르던 멜레스 강에서 따온 이름이다. 그러나 역사학자들은 이 주장을 입증하지 못했으며, 오늘날에는 전설로 취급된다. 고대 문헌에 자주 등장하는 또 다른 소문은 호메로스가 맹인이었다는 것이지만, 이 역시 사실이 아닌 것으로 간주된다.
실명설이 전설로 여겨지는 이유는, 그리스인들이 호메로스에게 나중에 위작, 즉 미상의 작가가 지은 것으로 판명된 시들을 돌렸기 때문이다. 그중에는 『호메로스 찬가』도 있는데, 이 가운데 한 구절은 키오스 출신의 시인이 맹인이었다고 전한다.
호메로스의 작품으로 잘못 알려진 다른 위작들로는 『마르기테스』, 『에피고노이』, 『개구리-쥐 전쟁』 등이 있다. 고대 그리스인들은 또한 호메로스가 구전 시인 헤시오도스와 동시대 인물이며 몇 차례 만났다고 주장했지만, 이 정보 역시 오늘날 확인하기 어렵다.
죽음과 실존 여부 논쟁
호메로스는 이오스 섬에서 사망한 것으로 추정되지만, 정확한 시기와 상황은 알려져 있지 않다. 그리스 전설에 따르면 그는 강가에서 미끄러져 바위에 머리를 부딪힌 지 사흘 만에 세상을 떠났다고 한다. 반면 역사학자들은 질병이나 노령으로 인한 자연사였을 것으로 보고 있다.
일부 역사학자들은 호메로스라는 인물이 실존하지 않았다고 보기도 한다. 즉, 이 이름이 실제로는 서사시 제작에 참여한 여러 그리스 시인들을 통칭하는 것이라는 견해다.
호메로스의 작품: 『일리아스』와 『오디세이아』

호메로스에게 귀속된 두 작품은 서사시 『일리아스』와 『오디세이아』다. 앞서 언급했듯이 호메로스는 이 작품들의 저자가 아니라, 구전 문화로 세대에서 세대로 전승되던 시들을 문자로 정리한 편찬자로 간주된다.
『일리아스』: 트로이 전쟁의 마지막 순간
『일리아스』는 아마도 기원전 8세기 말 또는 기원전 7세기 초에 쓰였으며, 고졸기 그리스에서 널리 쓰이던 운율 형식인 장단육보격 15,693행으로 구성되어 있다. 또한 24권으로 나뉘며, 각 권은 그리스 알파벳 글자 하나에 해당한다.
『일리아스』는 그리스인과 트로이인 사이에 벌어졌다고 전해지는 트로이 전쟁의 마지막 국면을 다룬다. 서사에 따르면 이 전쟁은 스파르타 왕 메넬라오스의 아내 헬레네를 트로이의 왕자 파리스가 데려가면서 시작되었다. 이들 외에도 시의 주인공 중 한 명은 그리스 진영에서 싸운 위대한 전사 아킬레우스다.
역사학자들은 트로이 전쟁의 실존 여부, 그리고 서사시가 언급하는 것이 단일한 전쟁인지 아니면 트로이를 둘러싼 일련의 충돌인지를 놓고 오랫동안 논쟁을 벌여 왔다. 그럼에도 이 전쟁은 기원전 13세기에서 12세기 사이에 일어났을 가능성이 제기된다. 따라서 호메로스는 이 사건의 목격자가 아니었다. 오늘날 역사학자들은 트로이에서 기원전 12세기 무렵 도시 약탈이 있었음을 확인했으며, 트로이 전쟁은 미케네인과 히타이트인 사이의 충돌이었을 것으로 추측한다.
호메로스가 전하는 『일리아스』에는 그리스 신화의 사건들이 수없이 등장하는데, 그리스 신들이 이 분쟁의 서사에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했기 때문이다.
『오디세이아』: 오디세우스의 10년 귀향 항해
반면 『오디세이아』는 장단육보격 12,109행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마찬가지로 24권으로 나뉜다. 이 시에서 그려지는 이야기는 트로이의 패배로 끝난 트로이 전쟁 직후를 배경으로 한다. 『오디세이아』는 오디세우스가 고향인 이타카 섬으로 돌아가기까지의 10년 항해를 그린 작품이다.
『오디세이아』의 중심 인물인 오디세우스가 『일리아스』에도 등장한다는 점도 주목할 만하다. 그는 그리스 군대의 핵심 병사였으며, 여러 국면에서 그리스의 왕 아가멤논의 조언자 역할을 수행했다. 오디세우스는 트로이 전쟁 내내 중요한 임무를 맡았고, 전쟁이 끝난 후에도 고향으로 돌아가는 과정에서 수많은 모험을 겪었다.
작품의 전승과 최초 출판
호메로스의 두 서사시가 오늘날까지 전해질 수 있었던 것은 기원전 6세기의 아테네 참주 피시스트라토스가 이룬 편찬과 정리 덕분으로 여겨진다. 호메로스 작품의 첫 근대 판본은 1488년 데메트리우스 칼콘딜레스에 의해 출판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