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의 역사

로마 제21대 황제 카라칼라, 암흑왕자라 불린 폭군의 돌이킬 수 없는 통치

로마 제21대 황제 카라칼라, 암흑왕자라 불린 폭군의 돌이킬 수 없는 통치

로마 황제 카라칼라는 매우 흥미로운 인물입니다. 그의 공식 명칭은 '임페라토르 카이사르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세베루스 안토니누스 피우스 아우구스투스'로, 사실 '카라칼라'는 별명에 불과합니다.

이름이 너무 길다 보니 사람들은 모두 그를 카라칼라라고 불렀습니다.

이 별명의 유래는 그가 갈리아 지방의 전통 의상인 '카라칼라(caracalla)'를 즐겨 입었기 때문입니다. 군용 부츠에서 이름이 유래한 칼리굴라와 비슷한 사례인 셈이지요. 어른이 된 뒤 폭군이 된 점까지 두 사람은 닮았습니다.

이렇게 긴 이름이 된 데에는 이유가 있습니다. '임페라토르'는 최고 군사 사령관을 뜻하는 칭호이고, '카이사르 아우구스투스'는 황제의 상징적인 이름입니다. 아버지 셉티미우스 세베루스가 아들이 안토니누스 피우스와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의 뒤를 잇는 명문 황제가 되기를 바라며 이들의 이름을 아들 이름에 넣은 것입니다.

카라칼라는 셉티미우스 가문 출신으로, 태어날 때의 본명은 루키우스 셉티미우스 바시아누스였습니다.

친동생 게타 살해

성경 속 카인과 아벨처럼 형제가 서로 죽이는 비극은 오래전부터 전해져 왔지만, 카라칼라는 즉위하자마자 친동생 게타를 살해했습니다. 게다가 어머니가 지켜보는 앞에서 벌어진 일이었다고 합니다.

네로와 콤모두스처럼 카라칼라도 마음에 들지 않는 상대를 즉시 처형하는 성격이었으며, 로마를 대표하는 폭군 중 한 사람으로 꼽힙니다.

카라칼라를 차기 황제로 만든 것은 아버지 셉티미우스 세베루스였습니다. 카라칼라는 겨우 8세에 차기 황제라는 뜻의 '임페라토르 데스티나투스' 지위를 받았습니다.

이는 콤모두스를 물렁하게 키운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의 사례와 닮아 있는데, 아들이 폭군으로 변한 점까지 흡사합니다.

카라칼라의 분노는 무시무시했습니다. 아버지가 로마에 배포한 가족 초상화에서 동생의 모습을 지워버렸고, 원로원에 게타의 기록을 모두 말소하는 형벌까지 명령했습니다.

원래 성인이 된 동생 게타와 성질이 사나운 카라칼라는 본성부터 맞지 않았다고 하지만, 그렇다 해도 이 정도로 깊은 원한을 품는 것은 참으로 끔찍한 일입니다.

게다가 게타와 친분이 있었다는 이유만으로 숙청된 사람들도 적지 않았다고 하니, 솔직히 네로나 콤모두스보다 더한 면이 있는지도 모릅니다.

로마 제21대 황제 카라칼라, 암흑왕자라 불린 폭군의 돌이킬 수 없는 통치

카라칼라 목욕장과 안토니누스 칙령

카라칼라를 오늘날까지 유명하게 만든 것은 바로 이 두 가지입니다. 사실 위대한 업적이라고 하기는 어렵지만, 이런 연유로 세계사 교과서에 카라칼라의 이름이 등장하는 것입니다.

로마 제21대 황제 카라칼라, 암흑왕자라 불린 폭군의 돌이킬 수 없는 통치

참고로 카라칼라 목욕장의 건설을 착수한 것은 아버지 셉티미우스 세베루스 황제였습니다. 카라칼라 본인의 업적은 아니지만, 완공을 확실히 해냈기에 그의 이름이 남게 되었습니다.

이 목욕장은 놀라운 종합 오락 시설이었습니다. 도서관과 극장까지 갖추고 있었으니, 어쩌면 '원조 쇼핑몰'이라 불러야 할지도 모릅니다.

한편 재정이 부족했기 때문인지, 카라칼라는 화폐의 질을 낮추기 시작했고 이는 훗날 심각한 인플레이션을 불러일었습니다.

아마도 세수를 늘리기 위한 목적이었겠지만, 카라칼라는 제국 전역에 살던 모든 자유민에게 로마 시민권을 부여하는 안토니누스 칙령을 발표합니다.

이러한 로마 시민권의 대폭 확대 역시 인플레이션을 초래했습니다.

칙령의 배경에는 로마 시민들이 군 복무에 자원하지 않는 문제가 있었다고 전해집니다.

한때 로마 시민권과 병역은 한 세트였지만, 이 무렵의 로마 시민들은 최대한 군 복무를 피하려 했습니다. 결국 이 시기에는 복무가 의무가 아니었던 것입니다.

로마 정규군은 로마 시민만이 될 수 있었기에, 카라칼라로서는 시민의 수를 늘리는 수밖에 없다고 판단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이 정책은 큰 효과를 거두지 못했습니다.

로마군은 노령화되어 실질적인 전력이 계속 약해졌고, 이는 훗날 게르만 용병의 대두를 허용하는 결과로 이어집니다.

폭정과 낭비

카라칼라는 정치적으로는 최악 수준이었지만, 군사적 재능은 꽤 뛰어났습니다. 실제로 게르만족을 격파한 전력이 있으며, 전장에 서는 것을 무척 좋아했습니다.

이 문제는 카라칼라라기보다 아버지 대부터 시작된 것이지만, 병사들의 대우를 크게 개선하는 과정에서 국가 지출이 크게 늘어났습니다.

폭군이라 불리는 콤모두스는 전쟁을 하지 않아 그나마 돈을 쓰지 않았지만, 카라칼라 황제는 어느 쪽이든 막대한 돈을 써버렸습니다.

게다가 게타 사건에서 드러났듯이 그의 성격은 엉망이었습니다.

이집트 알렉산드리아에서는 수천 명이 황제를 비방했다는 이유만으로 학살당했고, 돈이 떨어지면 부유층의 재산을 마구 몰수했습니다.

그럼에도 병사들을 우대했기 때문에 군중에게는 인기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는 결국 살해당하고 맙니다.

범인은 자신을 보호해야 할 근위병이었다고 합니다.

이처럼 카라칼라의 통치에서 칭찬할 점은 거의 찾을 수 없습니다. 18세기의 로마사 학자 에드워드 기번은 그를 '인류 공통의 적'이라고까지 혹평했습니다.

로마사의 대표적인 폭군이라면 네로와 콤모두스를 꼽는데, 네로는 그래도 나은 정치를 펼친 면이 있었고, 콤모두스는 불필요한 지출을 하지 않았으며 숙청 대상도 자신의 목숨을 노린 자들과 기독교 탄압 정도에 그쳤다는 등 그래도 나은 점이 있었습니다.

솔직히 말해, 카라칼라에게서는 좋은 점을 거의 찾기 어렵습니다.

목욕장을 완공하고 게르만족을 물리친 것은 잘한 일일지 모르지만, 그럼에도 그는 로마 최악의 폭군 중 한 사람으로 기록에 남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