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의 역사

사산조 페르시아를 제압했으나 벼락에 맞아 죽은 로마 황제 카루스

벼락을 맞고 최후를 맞은 병영황제, 카루스

로마의 '병영황제 시대'라고 불리는 혼란기의 황제들은 대부분 암살이나 질병 등 뜻밖의 방식으로 생을 마감했습니다. 그중에서도 카루스(Carus)는 원정 도중 벼락을 맞아 사망했다는 기록을 남긴, 극도로 이례적인 최후를 맞은 황제입니다.

사산조 페르시아를 격파한 황제

로마 역사에는 통칭 '다섯 번의 굴욕'이라 불리는 치욕적인 패배들이 있습니다.

첫 번째는 기원전 4세기경 갈리아족이 로마 시의 절반 가까이를 점령한 사건입니다. 당시 로마는 '로마의 제2의 건국자'라 불리는 카밀루스의 지휘 아래 잃었던 영토를 되찾을 수 있었습니다.

두 번째는 기원전 321년 삼니움 전쟁 중 벌어진 '카우디움의 수치'입니다. 로마군은 좁은 산길에서 삼니움군에게 포위되어 굴욕적인 항복을 해야 했지만, 결국 전쟁 자체는 승리로 마무리했습니다.

세 번째는 기원전 216년 제2차 포에니 전쟁의 칸나에 전투입니다. 한니발에게 로마군은 괴멸적인 타격을 입었으나, 결국 스키피오 아프리카누스가 한니발을 격파하며 설욕에 성공했습니다.

네 번째는 삼두정치 시대 크라수스의 패배입니다. 상대는 페르시아의 계승자라 할 수 있는 파르티아 제국이었습니다. 그리고 다섯 번째는 3세기 후반 발레리아누스 황제의 포로 사건으로, 이번에는 페르시아의 후계자인 사산조 페르시아가 적수였습니다.

이처럼 로마는 오랫동안 페르시아에 대한 만족스러운 설욕에 실패해 왔습니다. 사산조를 여러 차례 격파한 카루스 황제는 조금 더 높은 평가를 받아도 손색이 없는 인물이지만, 안타깝게도 페르시아 원정 중 벼락이라는 비운을 맞고 목숨을 잃고 말았습니다.

그리스와 마찬가지로 로마에서도 최고신은 천둥의 신 유피테르였습니다. 따라서 당시 사람들에게 벼락을 맞는다는 것은 곧 신의 벌을 받았다는 징표로 받아들여졌습니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카루스

카루스는 갈리아 지방의 나르보(Narbo) 출신으로, 선대 황제 프로부스 시절 근위대장(프라이토리안 프리펙트)을 지냈던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프로부스는 병사들에게 암살당했는데, 카루스가 이 사건에 연루되었는지는 명확하지 않습니다. 직접 관여하지 않았을 가능성이 높지만, 어쨌든 그는 이미 황제 프로부스에게 충성을 다하지 않았던 것으로 보입니다.

황제가 된 카루스는 스스로를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카루스'라 칭했습니다. 그는 명군으로 이름난 아우렐리우스 황제처럼 원로원을 중시하는 정치를 하겠다고 선포했지만, 실상은 군사력을 배경으로 한 통치에 가까웠습니다.

프로부스의 뒤를 이어 카루스는 페르시아 원정을 추진했습니다. 장남 카리누스와 차남 누메리아누스를 공동황제로 임명한 가운데, 원정은 연전연승으로 순조롭게 진행되었습니다.

당시 사산조 페르시아는 로마보다 더 심각한 내분기를 겪고 있었습니다. 카루스는 로마가 상실했던 메소포타미아 지역을 되찾는 데 성공했고, 사산조의 수도 크테시폰까지 진격하여 함락시켰습니다. 사산조의 멸망도 눈앞에 다가온 듯 보였지만, 앞서 언급했듯이 그는 벼락을 맞아 급사하고 말았습니다.

그의 뒤를 이은 두 아들 역시 하나는 살해당하고 하나는 전사하면서 혼란은 계속되었지만, 이윽고 디오클레티아누스가 등장하면서 로마에는 새로운 희망이 찾아오게 됩니다. 다만 그것은 아직 먼 미래의 일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