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가학적 정신병자이자 대량 학살자였습니다. 폴란드 역사가들은 그에 대해 입을 다물기를 선호하지만, 그것은 잘못된 태도입니다. 그의 성격이라는 프리즘 없이는 폴란드 최초의 공작부인 도브라바의 속마음을 이해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935년, 보헤미아 공작 보레슬라프 1세는 정당한 계승권도 없이 권좌를 강탈했습니다. 원래 왕위에 있어야 할 사람은 그의 형 바츨라프였습니다. 오늘날 바츨라프는 성인으로서 바벨 대성당의 수호성인으로 널리 알려져 있는데, 그를 순교자로 만든 것은 다름 아닌 동생 보레슬라프였습니다. 보레슬라프는 몇몇 심복들과 함께 아침 미사에 가던 통치자를 습격해 모욕을 퍼붓으며 개처럼 해치웠습니다.
여러 정황으로 미루어 볼 때, 보레슬라프의 장녀 도브라바는 형 바츨라프를 제거한 뒤 이어진 숙청과 권력 다툼, 처형이 난무하던 시기에 태어난 것으로 보입니다. 당대 기록들은 새 공작이 형의 지지자들을 가차없이 학살했다고 전합니다. 살아남은 이들은 대부분 국외로 도피한 사람들이었을 뿐입니다.
어린 시절부터 미에슈코의 미래 아내가 될 도브라바는 아버지가 친형을 죽였다는 사실을 안고 자랐습니다. 위 삽화는 바츨라프를 살해하는 보레슬라프와, 매수된 사제가 희생자의 도망길을 막는 장면을 담고 있습니다. 체코에서 가장 귀중한 고서 중 하나인 볼펜뷔텔 사본의 장식화입니다.
그러나 적대 세력의 죽음과 추방만으로는 보레슬라프의 분노를 달래기에 부족했습니다. 그는 반대파의 아이들을 블타바 강에 빠뜨려 죽이고, 그들의 미망인이나 버려진 아내들을 다른 남자에게 억지로 시집보냈다고 전해집니다.
새 군주의 분노
프라하 궁정에는 언제나 공포의 분위기가 감돌았습니다. 그 증거는 멀리 찾을 필요도 없습니다. 연대기 작가 코스마스는 통치 최상층에서 벌어진, 겉보기에는 사소하기 짝이 없는 논쟁을 기록으로 남겼습니다. 일은 보레슬라프 즉위 초반, 잘못된 군주를 선택한 이들에 대한 피바람이 불고 난 뒤, 그러나 그가 어떤 통치자인지 모두가 깨달리기 전에 벌어진 것으로 보입니다.
공작의 머릿속에는 독일의 건축 방식을 보헤미아로 옮겨와 주요 요새 하나를 '로마식'으로 보강하겠다는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관료들과의 회합에서 그는 반론을 용납하지 않을 목소리로 말했습니다. "나는 이곳 주위에 매우 높은 성벽을 쌓기를 원하며, 그리 명한다."
개방적이고 설득에 부드러웠던 바츨라프에게 익숙했던 신하들은 곧바로 공작의 변덕을 비난하기 시작했습니다. 체코의 전통과 어울리지 않고, 비용이 많이 들고, 노동력이 크게 드는, 어쩌면 그저 멍청하기까지 한 소행이라는 것이었습니다.
프라하의 귀족 저택은 진정한 독사의 소굴이었습니다. 한 걸음 잘못 내디디면 죽음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사진은 10세기 비잔틴 사본에 묘사된 독사의 모습입니다.
황양나무보다 창백해진 귀족들
귀족 중 한 명은 차마 말을 삼키지 못하고, 자신은 감히 공작의 검 아래 목을 내놓을지언정 그런 예속에 끌려가는 데는 동의할 수 없다고 내뱉었습니다. 이 말을 들은 보레슬라프는 분노로 얼굴이 붉어지며 벌떡 일어나 검을 움켜쥐고 고함을 질렀습니다. "비겁자들아, 비겁한 아비의 아들들아! 너희가 반쪽 남자라면, 하는 말을 행동으로 증명해 보아라. 검 아래에 목을 내놓는 것과 예속의 멍에를 지는 것 중 무엇이 더 쉬운지 시험해 보라!"
공작은 자신의 폭발이 기대했던 반응을 불러일으켰음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코스마스는 단 두 마디면 관료들이 '공포에 황양나무보다 더 창백해져' 꼼짝하지 못한 채 얼어붙었다고 강조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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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보레슬라프는 자신이 허풍을 쳤다는 소리를 들을 생각은 없었습니다. 항의하던 노신하 중 첫 번째 이의 머리카락을 움켜쥐고 거칠게 끌어당긴 뒤, 검을 휘둘러 — 연대기 작가의 표현을 빌리면 — 양귀비 씨앗 빵처럼 목을 잘라버렸습니다. 그 후로 아무도 반대하지 않았습니다.
두 번째 카인
이런 장면은 여러 차례 되풀이되었을 것입니다. 나아가 코스마스는 이 통치자를 '두 번째 카인', '헤로드보다 잔인하고 네로보다 무서우며, 죄악의 악독함에서 데키우스를, 흉포함에서는 디오클레티아누스를 능가하는 폭군'이라 불렀습니다.
이곳이 도브라바가 자란 도시였을까요? 체코 고고학자들의 복원도로 재현한 잔인공 시대의 프라하.
모욕의 나열처럼 들리지만, 이 시대 정치의 현실을 감안하면 보레슬라프는 거의 이상적인 군주로 보이기 시작합니다. 진정으로 강력한 중세 국가는 '네로보다 무서운 폭군'만이 건설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이 공작의 생전에 보헤미아는 진정한 제국이 되었습니다. 보레슬라프는 인접 부족들을 굴복시키고, 그들의 성채를 불태우고, 지배층을 몰살하고, 수만 명의 노예를 프라하의 대시장으로 몰아넣었습니다. 그는 과장이 아니라 문자 그대로 유럽 노예 무역의 왕이 되었습니다. 동시에 소폴란드, 실레지아, 그리고 키예프 변경에 이르는 초강대국을 장악했습니다.
아버지를 닮은 딸
이 모든 일은 어린 도브라바가 지켜보는 앞에서 벌어졌습니다. 옥좌의 홀에서 불쌍한 관료의 갈라진 목에서 피가 흥건히 쏟아지고, 남은 공작 평의회 의원들이 하나둘 군주의 발 앞에 엎드려 은혜를 구걸할 때, 커튼 뒤에 숨어 있던 몇 살배기 도브라바는 미래를 위한 교훈을 쌓아갔습니다.
형 살해범 보레슬라프가 범행 현장을 떠나는 모습. 안톤 페터의 그림 전체 장면.
965년, 미래의 남편의 나라를 향해 북으로 향하던 그녀는 결코 끊임없는 기도에만 몰두하는 소심하고 유순한 종이 아니었을 것입니다. 그녀의 출신과 성장 배경은 의심의 여지가 없습니다.
그녀는 가차 없고 필사적으로 야심 찬 정치가였을 것입니다. 한마디로, 아버지의 딸이었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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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브라바, 오다, 에믈히다. 이들은 학계의 저작에서 자리를 찾기 어렵고, 백과사전 편찬자들은 아무것도 알려진 바가 없다고 되풀이합니다. 이 여성들은 우리 역사에서 거의 완전히 지워졌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완전히 잘못된 통념입니다. 카밀 야니츠키는 이 여성들이 없었다면 폴란드 자체가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며, 추측과 동화에 의존하지 않고도 그들의 삶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할 수 있음을 증명합니다. 최초의 피아스트 왕조의 무자비하고 야심차며 권력에 굶주린 파트너들의 매혹적인 이야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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