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의 역사

야기엘로니안 왕조 출신이라면 부끄러워해야 할 7가지 이유

방종, 폭력, 그리고 경멸. 강대한 야기엘로니안 왕조의 일원이 되는 것은 수많은 특권을 누릴 수 있는 일이었지만, 동시에 부끄러움의 씨앗이 되기도 했습니다. 지금부터 7가지 사례로 그 이유를 하나씩 짚어보겠습니다.


이번 순위 역시 발표된 기사들을 바탕으로 선정되었습니다. 이번에는 왕가였던 야기엘로니안 가문의 구성원들 역시 부끄러워할 이유가 충분히 있었다는 점을 보여주는 글들을 골라 담았습니다. 폴란드와 세계의 근현대사에 대해 더 알고 싶으신 분들은 관련 기사를 참고해 주세요.

만약 당신이 야기엘로니안 가문의 핏줄이었다면, 다음과 같은 이유들로 고개를 들 수 없었을 것입니다.

7. 방종한 사생활

야기엘로니안 왕조 출신이라면 부끄러워해야 할 7가지 이유

얀 올브라흐트의 밤마다 이어진 연애 정복은 결국 성병으로 왕이 요절하는 비극으로 이어졌습니다.

야기엘로니안 가문은 놀랍도록 사생아가 적었지만, 배우자에게 절대적으로 충실했기 때문은 아니었습니다. 정부(情婦)들에 대한 기록이 상당히 많이 남아 있으며, 이런 관계에서 자식이 없었다는 사실은 상당수가 성병을 세상에 드러내지 않고 숨겼을 가능성을 시사합니다. 혹시 바르바라 왕비가 매독에 걸린 것은 지그문트 아우구스트에게서였을까요?

6. 친자식에게 가한 가혹한 교육 방식

야기엘로니안 왕조 출신이라면 부끄러워해야 할 7가지 이유

야기엘로니안의 카지미에시 4세는 좋은 군주였을까요? 의심할 여지가 없습니다. 그래서 그를 기리는 기념비가 세워졌으니까요. 그렇다면 좋은 아버지였을까요? 이에 대한 평가는 분분합니다.

카지미에시 4세는 이상적인 국왕의 모범으로 역사에 이름을 남겼습니다. 하지만 그가 자녀 교육에 허용했던 방식은 소름이 돋을 정도였습니다. 공포와 고통, 그리고 수많은 금지 사항은 어린 왕자들을 가르치는 데 빠질 수 없는 필수 요소로 여겨졌습니다.

5. '소름 돋는 마마보이'가 되어버린 것

야기엘로니안 왕조 출신이라면 부끄러워해야 할 7가지 이유

1521년 판화에 담긴 어린 시절의 지그문트 아우구스트. 이 초상은 실제 왕자의 모습과는 거리가 멉니다. 당시 지그문트 아우구스트는 갓 한 살이던 아이였습니다.

"우리 어린 임금은 여인들, 그리고 여인들보다 더 소심한 이탈리아인들 속에서 자랐습니다." 한 고위 궁정 신하는 지그문트 아우구스트에 대해 이렇게 기록했습니다. 폴란드의 미래 국왕은 어머니 보나 스 포르차의 사랑을 독차지하며 자랐고, 이는 그의 성격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음이 분명합니다.

4. 가장 가까운 가족이 무례한 대우를 받는 것을 방치한 것...

야기엘로니안 왕조 출신이라면 부끄러워해야 할 7가지 이유

안나 야기엘론카는 52세가 되어서야 결혼했습니다. 그녀의 삶은 말 그대로 인내의 학교였습니다.

안나 야기엘론카는 생전에도 사후에도 신하들의 존경을 받지 못했습니다. 어떤 이들은 그녀를 늙은 처녀나 신앙심만 깊은 사람이라 불렀고, 그녀의 외모는 흔히 부정당하며 못난 여자로 평가받았습니다. 그리고 그녀의 가족들은 이러한 대우를 바꾸기 위해 별다른 노력을 기울이지 않았습니다.

3. ...심지어 자기 가족조차 여성을 물건처럼 취급했다는 사실

야기엘로니안 왕조 출신이라면 부끄러워해야 할 7가지 이유

보나와 지그문트 2세 아우구스트의 갈등으로 그녀는 딸들과 함께 마조프셰로 떠나야 했습니다. 그곳에서 어린 조피아는 늙어가며 서서히 시들어갔습니다.

야기엘로니안 왕조 공주들의 삶이 장밋빛만은 아니었습니다. 지그문트 스타리와 보나 스 포르차의 딸 조피아 야기엘론카는 아마도 가장 불행한 인물이었습니다. 지혜와 우아함을 갖추고도 안타깝게도 친족들의 환영을 받지 못했습니다. 온갖 시련 끝에 마침내 맞이한 남편조차 결혼 직후 그녀를 배신했습니다...

2. 어머니를 독살한 범인에게 아무런 응징도 하지 못한 것

야기엘로니안 왕조 출신이라면 부끄러워해야 할 7가지 이유

보나 왕비는 독살당했지만, 살인범은 그 죄값으로 목숨을 잃지 않았습니다.

보나 스 포르차가 독에 희생된 후 범인을 찾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습니다. 모두가 그의 이름을 알고 있었으니까요. 바로 얀 바브지니에츠 파파코다였습니다. 하지만 왜 여왕의 죽음은 제대로 응징되지 않았고, 살인자는 끝내 처벌받지 않았을까요?

1. 폴란드의 운명을 결정짓은 선택이 낳은 비극적 결과

야기엘로니안 왕조 출신이라면 부끄러워해야 할 7가지 이유

프로이센 예속은 과연 좋은 결정이었을까요? 분명 역사 전체에 메아리친 중대 사건이었던 것은 틀림없습니다.

중세 폴란드의 오랜 재앙이던 튜턴 기사단은 16세기 초에 이미 옛날의 위세를 잃은 그림자에 불과했습니다. 그럼에도 당시 많은 폴란드인들은 왜 폴란드 군주가 프로이센 국가를 폴란드-리투아니아 연방에 편입하는 대신 알브레히트 호엔촐레른으로부터 명목상의 봉건적 예속만을 받아들였는지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이것이 훗날 폴란드 분할의 씨앗이 된 치명적인 실책이었을지도 모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