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의 역사

성 베드로의 유해, 거의 영원히 잃어버릴 뻔했다 – 바티칸 지하의 가장 위대한 비밀

콘스탄티누스 황제가 안치한 성유물

콘스탄티누스 황제가 직접 이곳에 안치한 것으로 추정되는 성 베드로의 유해는 수 세기 동안 그 자리에 잠들어 있었다. 제2차 세계대전이 한창이던 극도로 특수한 상황 속에서 발견되었지만, 조용히 옮겨져 잊혔다. 기독교에서 가장 귀중한 성유물 중 하나를 어떻게 다시 찾아낼 수 있었을까? 만약 그렇지 못했다면 우리는 이 유해를 영원히 잃었을지도 모른다.

비밀리에 진행된 발굴 작업

1940년부터 바티칸 성 베드로 대성당 앞에서 진행된 고고학적 발굴 작업은 대외적으로 알려지지 않았다. 발굴을 지시한 교황 비오 12세는 초대 교황인 성 베드로의 무덤을 찾고 싶은 속마음을 품고 있었지만, 겉으로는 단순한 보수 공사라고 발표했다. 그는 발굴 감독 업무를 루트비히 카스(Ludwig Kaas) 몬시뇰에게 맡겼다. 당시 카스는 바티칸 대성당을 양호한 상태로 유지·관리하는 기관인 '성 베드로 공사국'의 관리자였다.

카스 몬시뇰의 저녁 산책

성직자의 역할은 명백히 과학적인 것이 아니라, 마르게리타 구아르두치(Margherita Guarducci) 교수가 강조했듯이 '행정적이고 도덕적인' 것이었다. 사도의 안식처를 찾는 실질적인 탐사는 전문가들이 수행했다. 하지만 파베우 리시츠키(Paweł Lisicki)가 저서 『어부의 무덤』에서 전하듯:

고고학자들은 카스 몬시뇰이 발굴 작업이 중단되는 저녁과 밤에 정기적으로 현장을 방문한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 그에게 고고학 지식이 없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었다. 작업을 감독해야 할 도덕적 책임감을 느낀 그는 특히 인골과 유해에 신경을 썼는데, 그것들이 수백 년 전에 죽은 기독교인, 어쩌면 교황, 순교자, 성인들의 것이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바로 그런 저녁 방문 중, 아마도 1941년 11월경, 카스 몬시뇰 또는 동행한 작업자가 벽 하나에 가로로 된 개구부를 발견했다. 연구진은 며칠 전 이 은닉 공간을 발견해 두고 나중에 정밀 조사하기로 했었다. 그러나 성직자와 그의 조수는 구멍 안에 뼈가 들어 있다는 사실을 먼저 알아차리고 말았다.

"아무것도 의심하지도 예감하지도 못한 채, 몬시뇰과 삼피에트리노[세고니 - 편집자 주]는 남아 있던 모르타르를 제거하고 뼈를 나무 상자에 담았다"고 리시츠키는 전한다. 상자는 바티칸 그로토(지하 묘소)의 창고에 옮겨졌는데, 그곳에는 비슷한 발견물들이 보관되어 있었다. 저녁 방문객들은 고고학자들에게 발견 사실을 알리지 않았다. 그리고 며칠 뒤 텅 빈 은닉처를 발견한 연구진은 아무렇지 않게 다른 작업으로 넘어갔다. 그들은 필사적으로 찾던 것이 이미 발견되었고, 심지어 무시당하기까지 했다는 사실을 전혀 알지 못했다.

성 베드로의 유해, 거의 영원히 잃어버릴 뻔했다 – 바티칸 지하의 가장 위대한 비밀

카스 몬시뇰(왼쪽)은 교황 비오 12세의 측근이었다. 1933년 사진.

구아르두치 교수의 질문

벽의 미스터리한 구멍에 구아르두치 교수가 관심을 갖기까지 무려 12년, 즉 1953년까지 걸렸다. 성 베드로의 안식처가 근처에 있을 수 있음을 시사하는 비문들이 그녀의 주목을 끌었다. 그 무렵 카스 몬시뇰은 이미 1년 전 세상을 떠난 뒤였다. 그는 생애의 마지막 순간까지 발견하여 옮겨놓은 유해에 대한 정보를 누구에게도 알려주지 않았다.

이 사건은 거의 우연히, 아직 발굴 현장에 근무하던 세고니와의 대화 중 밖으로 드러났다. "조반니, 당신은 처음부터 발굴에 참여했잖아요. 공식 보고서에 없는 것 중에 그 안에서 발견된 게 있었나요?"라고 그녀가 물었다. 그러자 돌아가신 성직자의 조수는 그날 밤 방문을 기억해냈다. 그는 심지어 당시 구멍에서 꺼내온 뼈가 담긴 상자가 보관된 위치까지 찾아낼 수 있었다.

그때조차 교수는 자신이 사도 본인의 뼈 앞에 서 있다고 확신하기에는 이르렀다. 이 의심은 이후 몇 년이 지나면서 더욱 확실해졌다. 유해를 조사한 결과 60세에서 70세 사이에 사망한 '건장한 남성'의 것으로 밝혀졌다. 뼈는 금실로 짠 자주색 천에 싸여 있었다. 로마에서 이런 장례는 황제와 일부 원로원 의원들만이 누릴 수 있는 특권이었다. 이는 분명히 고인이 당대 사람들에게 깊이 존경받았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성 베드로의 유해, 거의 영원히 잃어버릴 뻔했다 – 바티칸 지하의 가장 위대한 비밀

파베우 리시츠키의 저서 『어부의 무덤』(프론다 출판사, 2019)을 통해 바티칸 지하의 가장 위대한 비밀을 만나보라.

이러한 단서들로 인해 많은 이들이 이 유해를 성 베드로의 성유물로 여기게 되었다. 구아르두치 교수 자신도 그중 한 사람이었다. 동시에 그녀는 유해를 잃을 뻔한 상황이 얼마나 아슬아슬했는지에 대해 전율을 느꼈다. 파베우 리시츠키가 저서 『어부의 무덤』에서 논평하듯:

만약 실제로 그랬듯 카스 몬시뇰뿐 아니라 작업자 세고니마저 그 사이에 세상을 떠났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혹은 그가 바티칸 밖에서 다른 일자리를 구했다면? 십여 년은 긴 시간이다. 그가 없었다면 베드로의 뼈는 결코 되찾을 수 없었을 것이다. 축축한 창고에서 결국 부서져 없어졌거나, 합동묘지에 묻혔을 테니까.

오늘날 베드로의 뼈로 인정받는 유해의 발견 경위를 알게 된 연구자와 여러 사람들은 돌아가신 몬시뇰의 무모함을 이해할 수 없었다. 리시츠키에 따르면 구아르두치는 모든 것을 그의 경험 부족 탓으로 돌렸다. 기자인 그는 조금 더 관대하게 바라본다. "그 몇 달 동안은 마치 히틀러가 전쟁에서 승리할 것 같은 분위기였다"고 그는 회상한다. 교황의 측근이 고고학이 아니라 시대의 거대한 정치에 마음을 쓰고 있었던 것도 놀라운 일이 아니었으리라.

출처

  • 파베우 리시츠키, 『어부의 무덤 – 바티칸 지하의 가장 위대한 비밀에 대한 추적』, 프론다(Fronda) 출판사, 20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