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에페오스(트로이 목마의 제작자)가 만든 이 물건이 성벽을 허물기 위한 장치였다는 사실은, 프리기아인들을 완전한 어리석음으로 치부하지 않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다"(『아티카』 I 23.80).
고대 여행가 파우사니아스는 이 한 구절로 그리스군이 사용한 최초의 '성벽 해체 기계', 즉 트로이 목마의 정체를 짚어낸다. 프리기아인, 곧 트로이인들은 자기 손으로 성벽을 헐어 나무말을 도시 안으로 끌어들일 만큼 어리석은 민족이 아니었다. 오히려 그들의 성벽을 무너뜨리고 아카이아인(그리스 연합군)의 입성을 가능하게 한 것은 바로 그 '나무말' 자체였다. 그렇다면 트로이 목마는 대체 무엇이었을까?
전설 속 트로이 목마
전설에 따르면, 길고 지루한 트로이 포위전에 지친 아카이아인들은 마침내 계략에 승부를 걸었다. 포카이아 출신의 기술자 에페오스는 속이 빈 거대한 나무말을 제작했고, 그 안에 선발된 전사들이 숨어 들었다.
트로이인들이 이 말을 성벽 안으로 끌어들이자, 숨어 있던 아카이아 전사들이 몰래 빠져나와 성문을 열었고, 밖에서 기다리던 미케네 군대가 도시로 쏟아져 들어와 트로이를 함락시켰다. 이것이 우리가 잘 아는 이야기다. 그러나 이 낭만적인 전설 뒤에는 어떤 역사적 사실이 숨겨져 있을까?
초기 형태의 '엘레폴리스'?
트로이 전쟁을 다룬 서사시 사이클(Epic Cycle)의 문헌들은 에페오스의 작품을 상세히 언급한다. 기록에 따르면 트로이 목마는 당시 기준으로는 놀라울 만큼 거대한 구조물이었고, 그 안에 들어가거나 조작·운반하기 위해서만 무려 3,000명의 인력이 필요했다고 한다(『소일리아스』).
후대의 작가들은 이 숫자가 과장되었다고 여겨 100명, 50명, 나아가 12명으로까지 줄여 버렸다. 또한 기하학 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가장 오래된 회화·조각 자료에서도 트로이 목마는 전사들이 가득 실린 나무말로 자연스럽게 묘사되어 있다.
그러나 여기서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사실이 있다. 공성 무기(siege engine)는 이미 기원전 18세기부터 존재했다는 점이다. 고왕국과 중왕국 시대 이집트의 무덤 벽화에는 바퀴 달린 공성 사다리, 공성충(ram) 등 다양한 공성 장비가 등장한다.
히타이트 역시 비슷한 기계를 보유하고 있었다. 이집트와는 이 시기(기원전 16세기경)에 함께 힉소스와 싸울 만큼 밀접한 관계를 맺었고, 히타이트와도 활발히 교류했던 그리스인들이 간단한 공성 장비의 존재조차 몰랐으리라고 상정하기는 어렵다.
『소일리아스』에 등장하는 3,000명이라는 숫자는 언뜻 과장으로 보이지만, 흥미롭게도 후대 헬레니즘 시대의 초대형 공성탑 '엘레폴리스(Helepolis)' 하나를 운용하는 데 필요한 인원수와 거의 일치한다. 그런데 『소일리아스』는 헬레니즘 시대보다 무려 300년이나 앞선 시기에 쓰인 작품이다!
'짐승'의 이름을 얹은 전쟁 기계들
바퀴 달린 공성 기계(상상력이 풍부한 이들 중 일부는 이를 '고대판 탱크'에 비유하기도 한다)는 적어도 기원전 10세기부터 아시리아가 널리 운용했다. 그러나 역사상 어떤 기술도 돌연변이처럼 홀로 태어나지 않듯, 아시리아의 공성 기술 역시 주변 문명의 노하우에서 영향을 받았을 개연성이 크다.
주목할 점은 아시리아의 공성 기계들이 종종 동물의 형상을 하고 있었으며, 거의 항상 동물의 이름으로 불렸다는 사실이다(예: '코뿔소'). 이는 우연이라기보다 의도적인 전통이었을 것이다.
결론: 트로이 목마의 정체는 대형 공성충?
이러한 배경을 종합하면 상당히 설득력 있는 추론이 가능하다. 트로이 목마란, 화염 공격에 견딜 수 있도록 짐승 가죽으로 덮고 안을 두른 바퀴 달린 차량, 곧 대형 공성충이었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 거대한 기계를 움직이고 조작하기 위해서는 많은 병력이 필요했다. 아카이아인에게 남은 유일한 관문은 트로이인들을 '설득'해 이 기계가 성벽 앞으로 다가오도록 '허용'하게 만드는 일이었다.
트로이인 역시 바로 이것을 두려워했다. 그들은 필사적이고 적극적인 방어전을 펼치며 적이 성벽에 접근하는 것을 최대한 늦추려 했다. 그러나 일단 아카이아인이 성벽 앞까지 진출해 공성 기계를 작동시키는 데 성공하는 순간, 포위전의 귀추는 이미 기울어 있었다.
실제로 트로이 포위전은 몇 달 정도로 짧게 끝난 것으로 보인다. 즉, 아카이아인이 적을 성벽 안에 유폭시키는 데 걸린 시간만큼이었다. 호메로스의 『일리아스』가 그린 것은 길게 잡아도 포위전 가운데 단 51일간의 사건들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