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의 역사

'터키를 잡아먹은' 독일 원수…코르푸에서 오스만군 전멸시키다

 터키를 잡아먹은  독일 원수…코르푸에서 오스만군 전멸시키다

1715~1716년 펠로폰네소스 반도에서 베네치아를 격파한(제7차 베네치아-튀르크 전쟁) 오스만 제국은 다음 목표로 코르푸 섬을 노리기로 결정했다. 튀르크 함대는 116척의 배에 예니체리 7,000명, 이에 맞먹는 수의 알바니아인, 시파히 1,500명, 포병 약 500명, 보조병력 1,000명, 그리고 선원과 승객 수천 명을 싣고 나타났다. 일부 기록에 따르면 총 병력은 무려 5만 명에 달했다.

반면 베네치아군을 지휘하던 요한 마티아스 폰 슐렌부르크(Johann Matthias von Schulenburg) 원수가 거느린 정규군은 겨우 3,097명에 불과했다. 물론 그리스 주민들도 방어에 적극적으로 힘을 보탰다.

코르푸 공방전

1716년 7월 8일, 예니체리 4,000명이 코르푸에 상륙했다. 그러나 베네치아 분함대 27척의 과감한 공격이 튀르크군을 위협해 섬으로 향하는 병력 수송이 잠시 중단됐다. 7월 10일 튀르크군이 되돌아와 수송을 재개했지만, 그 사이 수비군은 해상으로 병력 1,500명과 식량·물자를 추가 지원받았다. 아울러 몰타 기사단, 스페인, 제노바, 토스카나, 교황령 소속 연합 함대가 도착해 바다에서 도시 요새를 엄호했다.

한편 튀르크군은 도시 접근로를 감싸는 요새 하나와 언덕 하나를 점령하며 작전을 개시했다. 8월 5일, 그들은 슐렌부르크에게 도시 항복을 요구하며 "강공으로 함락되면 당신과 부하들을 몰살하겠다"고 협박했다. 독일 출신 원수는 당연히 이 최후통첩을 거절했다.

이에 튀르크군 지휘관 메흐메트 파샤와 카라 무스타파 파샤는 도시에 대한 대대적인 포격을 시작했다. 기독교 연합 함대가 개입하려 했으나 바람 때문에 실패했다. 슐렌부르크는 자신이 계획한 출격 작전에 베네치아 함대 사령관 피사니 제독의 지원을 요청했지만 거절당했고, 튀르크군은 아무런 방해 없이 도시를 완전히 포위했다.

그러나 8월 8일, 보병연대 하나가 더 도착해 수비군이 강화됐다. 새로 온 병사들은 포위된 병사들에게 오스트리아가 페트로바라딘 전투에서 튀르크군에게 대승을 거두었다는 소식을 전했고, 이는 수비군의 사기를 크게 북돋았다. 8월 18일 밤, 수비군이 돌출 공격을 시도했으나 격퇴당했다. 실제로 예니체리가 선봉에 선 튀르크군이 역습을 감행해 성 아타나시오스 요새까지 진격해 성벽 위에 군기를 올렸다.

그러나 슐렌부르크는 아직 끝내지 않았다. 그는 검을 뽑아 들고 직접 병사들을 이끌고 적진에 돌격해 튀르크군을 가차없이 몰살했다. 성 아타나시오스 요새와 스카르포나스 문에서 벌어진 이 전투에서 그리스 민병대가 크게 활약했으며, 현지 랍비의 아들이 이끌고 지역 유대인 공동체의 비용으로 무장한 유대인 주민 분견대도 용맹을 떨쳤다.

8월 20일, 튀르크군이 재정비를 시도하던 때 거센 폭풍우가 몰아쳤다. 튀르크군의 참호는 물에 잠기고 화약은 젖어 쓸모없게 됐으며 함대도 손상됐다. 이후 튀르크군은 포위를 풀고 철수하기로 결정했다. 실제로 그들의 철수는 너무나 급박해서 대포 56문과 박격포 8문 등 수많은 군수품은 물론 병약자들까지 모두 버려졌다. 튀르크 함대의 혼란은 피사니 제독이 적 함대를 완전히 궤멸시킬 절호의 기회였지만, 안타깝게도 그는 이를 활용하지 못했다.

급작스러운 철수의 이유

튀르크군의 갑작스러운 철수 이유는 여전히 논쟁거리다. 어떤 이들은 스페인 분함대의 도착에 겁먹었다고 주장하지만, 이 함대는 단 6척뿐이라 그들에게 겁먹었을 가능성은 낮다. 또 다른 이들은 페트로바라딘 참패 소식에 경악했다고 본다. 그러나 이 설도 설득력이 떨어지는데, 페트로바라딘 전투는 8월 5일에 벌어졌고 튀르크군은 8월 22일(구력 8월 11일)에야 코르푸를 떠났기 때문이다.

결국 튀르크군은 총 1만 5천 명 이상을 잃었고, 반면 수비군의 손실은 적었지만 '용맹한' 튀르크군의 보복을 받은 그리스 민간인들의 피해는 컸다. 주민들과 원수, 그리고 그의 병사들은 튀르크군의 갑작스러운 철수를 코르푸의 수호성인 성 스피리돈(Saint Spyridon)의 기적으로 여겼고, 그 이후로 매년 8월 11일 도시에서는 성대한 행렬이 열리고 있다.

'터키를 잡아먹은' 슐렌부르크 원수

요한 마티아스 폰 슐렌부르크 백작은 1661년 작센 지방의 엠덴에서 태어났다. 1687년 오스트리아 제국군에 자원입대해 헝가리에서 튀르크군과 싸웠고 대위까지 진급했다. 1693년에는 대령으로 승진했다.

그는 대동맹 전쟁과 에스파냐 왕위계승전쟁에서 프랑스군과 싸워 중장으로 승진했다. 1702년에는 작센군에 들어가 대북방전쟁에서 스웨덴군과 맞섰다. 1707년 제국군으로 복귀해 우덴아르더와 말플라케 대전투에서 다시 프랑스군과 격돌했고, 원수로 승진했다.

에스파냐 왕위계승전쟁이 끝나고 베네치아-튀르크 전쟁이 발발하자 그는 베네치아에 들어갔다. 펠로폰네소스를 구하기에는 너무 늦었지만, 1716년 5만에 달하는 튀르크·알바니아 연합군을 상대로 극소수 병력으로 코르푸에 대한 대공세를 막아내는 데 성공했다.

코르푸 승리 후 그는 북에피루스의 부트린토와 레프카다 요새(아기아 마브라)를 함락했다. 1718년에는 베네치아군을 이끌고 튀르크 점령 하의 알바니아로 침공해 몬테네그로까지 진격했지만, 같은 시기 파사로비츠 조약이 체결되면서 전쟁은 종식됐다.

슐렌부르크는 계속 베네치아군 사령관으로 남아 코르푸와 달마티아 베네치아 영토의 방어 시설을 크게 강화했다. 당대 최고의 명장으로 꼽히던 말버러 공작 존 처칠과 외젠 공작은 슐렌부르크를 '그 시대 최고의 군인 중 한 명'으로 평가했다. 프로이센 국왕은 그에게 '흑색 독수리 훈장'을 수여했다. 그는 1745년 세상을 떠났다.

 터키를 잡아먹은  독일 원수…코르푸에서 오스만군 전멸시키다
 터키를 잡아먹은  독일 원수…코르푸에서 오스만군 전멸시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