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의 역사

독일군은 캐나다군에 대한 공격을 어떻게 시작했을까?

1944년 여름, 노르망디 전선에서 캐나다군은 카앙(Caen) 남부와 팔레즈(Falaise) 일대에서 독일군과 치열한 공방을 벌였습니다. 독일군은 강력한 방어선과 기갑 부대를 바탕으로 포병 집중 사격으로 시작해 보병과 전차의 역공으로 이어지는 전형적인 방어·반격 전술을 구사하며 캐나다군의 진격을 막아서려 했습니다.

버리에르 능선 전투와 '스프링 작전'

1944년 7월 25일, 캐나다군은 '스프링 작전(Operation Spring)'이라는 코드명 아래 버리에르 능선(Verrières Ridge) 일대를 향해 대규모 공세를 개시했습니다. 그러나 독일군은 준비된 방어진지에서 포격을 퍼부은 뒤, 제12SS 기갑사단 '히틀러유겐트'를 비롯한 기갑 부대로 신속하게 역공에 나섰습니다. 이 과정에서 독일군은 캐나다군의 여러 전선을 돌파하고 상당 지역을 탈환하는 데 성공했으며, 캐나다군은 큰 피해를 입고 물러났습니다. 이후 캐나다군은 전열을 재정비해 반격을 준비했지만, 능선 일대의 전투는 오랫동안 끓어오르며 양측 모두에게 막대한 희생을 안겼습니다.

'토탈라이즈 작전'과 독일군의 강한 저항

1944년 8월 8일, 전황을 뒤집기 위한 새로운 공세가 시작되었습니다. 캐나다군과 영국군은 '토탈라이즈 작전(Operation Totalize)'이라는 코드명 아래 팔레즈 방면으로 진격에 나섰습니다. 이 공세는 대규모 포병 사격에 이어 야간 기동과 최초 실전 투입된 '캉구루(Kangaroo)' 장갑병원수송차를 활용한 혁신적인 전술로 진행되었지만, 독일군은 결사적인 저항으로 맞섰습니다. 특히 팔레즈 인근에서 독일군의 역공과 방어는 매우 완강했고, 연합군의 진격 속도는 크게 더뎌졌습니다. 며칠간의 격전 끝에 독일군은 점차 밀려나 후퇴를 강요당했습니다.

팔레즈 전투, 노르망디의 전환점

팔레즈 일대의 전투는 여러 날에 걸쳐 계속되었으며, 8월 하순 팔레즈 포위망이 닫히면서 독일군은 대량의 병력과 장비를 상실한 채 후퇴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캐나다군이 거둔 팔레즈와 토탈라이즈 방면의 승리는 노르망디 전투의 중요한 전환점이 되었으며, 연합군이 프랑스 내륙으로 진격하는 길을 열고 궁극적으로 나치 독일의 패배로 이어지는 발판을 마련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