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이 남긴 가장 절박한 문제, 식량 부족
제2차 세계 대전이 끝나갈 무렵 유럽은 승리의 환희보다 생존의 문제가 더 시급한 상황에 놓여 있었습니다. 전쟁으로 인해 농업 생산 기반이 크게 훼손되었기 때문입니다. 장정들이 징집되면서 농촌 노동력이 크게 부족해졌고, 농경지는 전장이 되거나 방치되었으며, 가축과 농기계마저 전쟁 물자로 동원되거나 파괴되었습니다.
여기에 더해 철도, 도로, 항만 등 운송망이 폭격과 전투 과정에서 유령화되면서, 설령 곡물이 생산되더라도 필요한 도시까지 원활하게 공급되지 못했습니다. 결국 식량 부족은 전후 유럽 전역에서 가장 시급한 사회 문제로 대두했습니다.
배급제의 실시와 그 한계
각국 정부는 이러한 위기에 대응하기 위해 배급제를 도입했습니다. 영국은 전쟁 초기부터 식량 배급표를 실시했고, 프랑스·독일·네덜란드 등 여러 나라에서도 빵, 감자, 지방 등 주요 식품의 1인당 구매량을 엄격히 제한했습니다. 특히 네덜란드에서는 1944년부터 1945년 겨울까지 이어진 극심한 기근 때문에 '헝거 윈터(Hongerwinter)'라는 이름까지 남겼으며, 수많은 사람이 굶주림으로 목숨을 잃었습니다.
그러나 배급으로 공급되는 열량은 건강한 생활을 유지하기에 턱없이 부족한 경우가 많았습니다. 사람들은 가족을 먹여 살리기 위해 다른 길을 찾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림자 경제, 암시장의 성행
이렇게 해서 암시장(블랙 마켓)이 급속히 번성했습니다. 농민들은 정부에 납부해야 할 농산물을 몰래 챙겨 도시 주민들에게 비싼 값에 팔았고, 도시 주민들은 귀금속, 가구, 의류, 담배 등을 내놓아 음식과 바꾸었습니다. 미국 군인들이 들여온 초콜릿, 커피, 담배 한 갑이 현지 화폐보다 더 높은 가치를 지니기도 했습니다.
암시장 거래는 분명 불법 행위였지만, 당시 유럽인들에게는 생존을 위한 필수적인 경제 활동이나 다름없었습니다. 일부 역사학자들은 이러한 그림자 경제가 오히려 전후 유럽 경제 회복과 통화 개혁의 중요한 배경이 되었다고 평가하기도 합니다.
정리하며
요컨대 제2차 세계 대전 종결 무렵 유럽이 직면한 가장 큰 문제 중 하나는 전쟁으로 파괴된 생산·운송 체계에서 비롯된 식량 부족이었고, 배급제만으로 이를 해소할 수 없자 암시장이라는 지하 경제가 성행하게 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