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주의의 부상:
* 제1차 세계 대전의 여파로 여러 나라에서 전체주의 정권이 들어섰습니다. 베니토 무솔리니 치하의 파시스트 이탈리아, 아돌프 히틀러 치하의 나치 독일, 이오시프 스탈린 치하의 소련이 대표적인 사례로 떠올랐다.
* 이들 전체주의 정권은 극단적인 민족주의, 선전, 권위주의적 통치를 이용해 사회를 통제하고 공격적인 팽창주의 정책을 추구했으며 결국 제2차 세계 대전을 초래했습니다.
베르사유 조약과 그 영향:
* 제1차 세계대전을 종결한 베르사유 조약은 독일에게 영토 상실, 군대 제한, 막대한 배상금 부과 등 엄격한 조건을 부과했습니다.
* 조약의 가혹한 조건은 독일인들 사이에 적개심과 보복감을 불러일으켰고, 이는 히틀러와 나치당의 부상에 기여했습니다.
세계 경제 불황:
* 1929년 미국에서 시작되어 전 세계로 확산된 대공황은 광범위한 경제적 황폐화와 정치적 불안을 초래했습니다.
* 경제 위기는 민주주의를 약화시키고 기존 정치 체제에 대한 불만을 불러일으켜 민족주의와 권위주의 운동이 발흥할 수 있는 좋은 기반을 마련했습니다.
국제 연맹의 실패:
* 제1차 세계 대전 이후 국제 협력을 촉진하고 향후 분쟁을 방지하기 위해 설립된 국제 연맹은 양차 대전 사이의 문제를 해결하는 데 효과적이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 연맹은 베르사유 조약을 이행하지 못하고, 전체주의의 발흥을 막고, 국제 분쟁을 해결하지 못하여 결국 실패로 끝났습니다.
회유 보상 정책:
* 나치 독일의 침략이 커지자 영국과 프랑스는 유화 정책을 채택하여 히틀러에게 양보하여 무력 충돌을 피하려고 했습니다.
* 독일이 체코슬로바키아의 주데텐란트 지역을 합병할 수 있도록 허용한 1938년 뮌헨 협정은 유화의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그러나 이 정책은 결국 히틀러의 야망을 저지하는 데 실패했고 제2차 세계대전 발발에 한몫했다.
제2차 세계대전 발발:
* 1930년대 후반 독일이 베르사유 조약을 위반하고 영토를 합병하며 공격적인 요구를 하면서 긴장과 갈등은 계속 고조되었습니다.
* 1939년 9월 1일 독일의 폴란드 침공은 제2차 세계 대전의 시작을 알리고 전간기 동안 유지되었던 취약한 평화에 종지부를 찍었습니다.
제1차 세계대전과 제2차 세계대전 사이의 정치적 상황은 권위주의 정권의 부상, 경제적 혼란, 집단 안보 시도의 실패, 그리고 궁극적으로 세계에 파괴적인 결과를 가져올 글로벌 분쟁의 발발로 특징지어졌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