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의 역사

제2차 세계대전 후 뉘른베르크 전범재판, 어떤 판결이 내려졌을까?

제2차 세계대전이 종전한 뒤, 연합국은 나치 독일의 전쟁 지도자들을 심판하기 위해 1945년 11월부터 1946년 10월까지 독일 뉘른베르크에서 국제군사재판(International Military Tribunal)을 열었습니다. 이 재판은 국가의 지도자들을 국제법에 따라 처벌한 최초의 사례로, 오늘날 국제형사법과 국제형사재판소의 토대가 되었습니다.

재판에서 확립된 세 가지 범죄

반평화죄 (Crimes against Peace)

침략 전쟁을 계획·준비·개시하거나 수행한 행위, 그리고 국제조약이나 협정을 위반하는 전쟁에 가담한 행위를 의미합니다. 폴란드 침공으로 시작된 대규모 침략 전쟁의 책임을 묻기 위해 새롭게 정의된 범죄 유형입니다.

전쟁범죄 (War Crimes)

전쟁법규 및 전쟁 관습의 위반을 가리킵니다. 부상병에 대한 학대나 살해, 전쟁포로에 대한 잔혹 행위와 불법 처형, 민간인에 대한 폭력 등이 여기에 해당합니다.

반인도적 범죄 (Crimes against Humanity)

살인, 절멸, 노예화, 강제 추방(데포테이션)뿐만 아니라 인종적·종교적·정치적 이유로 자행된 박해 행위까지 포괄합니다. 홀로코스트와 같은 조직적 학살을 심판할 수 있는 법적 근거가 되었습니다.

판결 결과

본재판에서는 나치 정권의 핵심 인물 24명이 기소되었고, 실제로는 22명이 재판을 받았습니다. 그중 12명에게 사형이 선고되었으며, 헤르만 괴링, 요아힘 폰 리벤트로프, 빌헬름 카이텔 등이 사형수 명단에 포함되었습니다. 괴링은 형 집행 직전 자살했고, 마르틴 보어만은 부재중 판결로 사형을 선고받았습니다.

이후 미군 당국이 주관한 후속 재판에서는 의사, 산업가, 군인, 고위 관료 등 약 177명의 피고가 추가로 심판받았습니다. 이 과정에서 추가 사형 선고와 함께 종신형을 비롯한 중형이 잇달아 선고되며 나치 체제에 가담한 인물들의 책임이 넓게 추궁되었습니다.

뉘른베르크 재판은 '명령에 따랐을 뿐'이라는 변명으로는 책임을 면할 수 없다는 원칙, 즉 개인의 형사책임 원칙을 확립했다는 점에서 국제법 역사상 중요한 전환점이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