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의 역사

로마 역사를 바꾼 호르텐시우스 법, 그 의미와 제정 배경을 알아봅니다!

로마 역사를 바꾼 호르텐시우스 법, 그 의미와 제정 배경을 알아봅니다!

세계사 블로그를 운영하고 있는 필자는 문과 계열이긴 하지만, 문학부가 아니라 법학부 출신입니다. 한동안 변호사가 되는 것을 진지하게 목표로 삼았지만, 적성에 전혀 맞지 않아 금방 좌절하고 말았죠.

그래서인지 저는 법률에 관한 글을 읽고 쓰는 일을 몹시 싫어합니다. 고통스럽다고까지 말할 수 있을 정도입니다.

아직 써 보진 않았지만, 파르살루스 전투나 악티움 전투처럼 드라마틱한 주제라면 글을 쓰는 것도 분명 재미있을 것입니다. 반면 호르텐시우스 법 같은 법률 이야기는 쓰는 사람이나 읽는 사람 모두에게 그다지 즐겁지 않을 수 있겠죠.

하지만 이런 글을 쓰면서 한 가지 깨닫게 된 것이 있습니다.

국가를 형성하는 것은 바로 법이라는 사실입니다.

좋은 법 체계 아래에서 좋은 사람이 자랍니다.

이번 시간에는 로마 역사에서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며 로마라는 국가의 틀을 만든 호르텐시우스 법에 대해 자세히 살펴보겠습니다!

호르텐시우스 법의 특징

기원전 287년에 제정된 호르텐시우스 법(Lex Hortensia)의 핵심 내용은 단 하나입니다.

· 평민회(플레브스 회의)의 결의가 원로원의 승인 없이도 국법으로서 효력을 갖는다.

내용은 이것뿐이지만, 그 중요성은 이루 말할 수 없습니다.

호르텐시우스 법의 제정으로 평민과 귀족 사이의 오랜 대립, 이른바 '신분 질서 투쟁'이 드디어 막을 내리게 됩니다.

평민의 정치적 권리 확장은 12표법에서 시작해 리키니우스-섹스티우스 법을 거쳐, 호르텐시우스 법에서 마침내 완성되었습니다.

그 결과 평민회와 귀족 계급을 모두 포함하는 시민 집회(코미티아)의 의미가 한층 커졌고, 아테네와는 또 다른 로마 고유의 민주주의가 완성되었습니다.

호르텐시우스 법 제정의 배경

물론 12표법과 리키니우스-섹스티우스 법이 호르텐시우스 법 제정의 토대가 되었지만, 그보다 더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 것은 삼니움 전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섹스티우스-리키니우스 법이 제정되던 시기의 로마는 아직 이탈리아의 여러 도시 국가 중 하나에 불과했지만, 동시에 이탈리아 반도 통일을 향해 확장해 나가던 시기이기도 했습니다.

삼니움인은 산악 전투에 특화된 탁월한 민족이었고, 로마는 삼니움과의 전쟁에 약 40년이라는 긴 시간을 쏟아부어야 했습니다. 문제는 전후 처리 과정에서 벌어졌습니다. 정복한 토지가 귀족들에게 편중되어 배분되는 상황이 발생한 것입니다. 게다가 평민들 사이에서도 배분의 격차가 존재해 많은 평민들이 크게 불만을 품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불만은 당연한 것이었습니다. 로마에서 시민권을 가진 자는 스스로 장비를 마련해 중장보병(호플리테)으로 복무할 의무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전쟁의 희생은 평민이 감당하면서도 그 대가인 토지는 귀족에게 돌아갔으니, 분노하지 않는 것이 오히려 이상한 상황이었죠.

당시 독재관이었던 호르텐시우스는 이 상황을 심각하게 받아들였습니다. 불만을 품은 평민들이 잇달아 로마를 떠나는 '평민 퇴거(세세시오)' 사태가 벌어졌기 때문입니다.

결국 호르텐시우스 법은 평민들의 불만을 해소하고 공동체의 분열을 막기 위해 만들어진 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호르텐시우스 법 제정의 영향

로마에는 평민(플레브스)과 귀족(파트리키) 사이의 격렬한 신분 갈등이 있었지만, 호르텐시우스 법이 제정된 이후부터는 노빌레스(Nobiles)라 불리는 신흥 귀족의 세력이 급성장하게 됩니다.

노빌레스는 대토지 소유와 점차 침투하던 화폐 경제를 배경으로 원로원 의원직 등 요직을 세습하며 세력을 키운 사람들을 통칭하는 말입니다. 파트리키와 달리 평민 출신도 포함될 수 있다는 점이 큰 차이입니다.

호르텐시우스 법이 평민의 신분 향상을 가져왔는데, 그 결과 유력 평민 계층이 새로운 귀족인 노빌레스가 되어 국정을 장악하기 시작했다는 점은 어쩌면 역사의 아이러니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