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세기 말 빈 공방전의 실패(1683) 이후 오스만 제국은 수백 년간 이어온 확장 시대를 마감하고 서서히 쇠퇴의 길에 들어섰습니다. 밀려나기 시작한 오스만 제국의 영토에는 새롭게 부상하는 유럽 열강들이 하나둘 발을 딛게 되었는데, 18세기 초 그 주역은 바로 오스트리아(합스부르크 제국)와 러시아였습니다.
오스트리아: 파사로비츠 조약(1718)으로 얻은 발칸의 땅
합스부르크 오스트리아는 1716~1718년 오스트리아-튀르크 전쟁에서 승리하며 오스만 제국으로부터 대규모 영토를 빼앗았습니다. 1718년 체결된 파사로비츠 조약(Treaty of Passarowitz)에 따라 오스트리아는 헝가리 남부의 테메슈바르 바나트, 베오그라드를 포함한 세르비아 북부, 그리고 왈라키아 서부 지방인 올테니아(현 루마니아 남서부)를 손에 넣었습니다.
이 조약으로 오스트리아는 다뉴브 강 유역과 발칸반도 북부에서의 지배력을 크게 확장했으며, 파사로비츠 조약은 오스만 제국이 체결한 조약 가운데 가장 불리한 것 중 하나로 평가됩니다.
러시아: 프루트 조약과 흑해로의 남하
한편 러시아는 표트르 대제(Peter the Great)의 주도 아래 흑해로 통하는 출구를 찾기 위한 남하 정책을 본격적으로 추진했습니다. 1696년 아조프(Azov)를 점령하며 흑해 진출의 교두보를 마련했지만, 1710~1711년 러시아-튀르크 전쟁에서 패배하면서 체결된 프루트 조약(Treaty of Pruth, 1711)에 따라 아조프를 당분간 오스만 제국에 반납해야 하는 시련을 겪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러시아의 남하 야망은 여기서 멈추지 않았습니다. 1735~1739년 러시아-튀르크 전쟁의 결과로 아조프를 되찾았고, 이후 흑해 북안 지역으로 확장을 이어가며 18세기 후반 크림 반도 병합과 흑해 장악으로 나아가는 발판을 다졌습니다.
두 열강의 확장이 남긴 의미
정리하면, 18세기 초 오스만 제국의 영토를 잠식한 유럽 열강은 오스트리아와 러시아입니다. 오스트리아는 파사로비츠 조약(1718)을 통해 헝가리·세르비아·왈라키아(올테니아) 일대의 땅을 차지했고, 러시아는 프루트 조약(1711)을 전후한 시기부터 아조프와 흑해 북안 방면으로 세력을 뻗치기 시작했습니다. 두 제국의 팽창은 이후 오스만 제국이 '유럽의 병자'로 불리며 점차 쇠퇴해가는 길의 서막을 연 사건이었다고 평가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