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사

브레스트-리토프스크 조약(1918년 3월 3일): 러시아가 영토의 대부분을 잃은 '굴욕의 평화'


브레스트-리토프스크 조약(1918년 3월 3일): 러시아가 영토의 대부분을 잃은  굴욕의 평화 브레스트-리토프스크 조약은 1918년 3월 3일 소비에트 러시아와 동맹국(독일, 오스트리아-헝가리, 오스만 터키) 사이에 체결된 별도 강화 조약으로, 오늘날 벨라루스의 브레스트에서 서명되었습니다. 러시아 혁명 이후 내전에 휘말린 레닌 정부는 약 80만 제곱킬로미터에 달하는 영토와 함께 농업·산업 자원의 상당 부분을 상실하는 '굴욕의 평화'를 받아들여야 했습니다. 폴란드, 발트 연안 국가들, 우크라이나, 벨라루스 일부가 분리되었고, 아르다한(Ardahan)·바투미(Batumi)·카르스(Kars)는 터키에 할양되었으며, 막대한 전쟁 배상금 지불 의무까지 부과되었습니다.

제1차 세계대전, 패배를 거듭한 러시아

연합국 진영으로 참전한 러시아군은 개전 초기부터 심각한 좌절을 겪었습니다. 특히 1914년 8월 동프로이센의 탄넨베르크 전투에서 독일군에게 궤멸적인 패배를 당했습니다. 1915년에는 전세가 더욱 악화되어, 곧 끝날 것으로 예상했던 전쟁이 제국 전체를 위협하기 시작했습니다. 독일-러시아 전선에서는 보급난과 빈약한 병참, 군 수뇌부의 실책이 겹치면서 대규모 탈영이 만연했습니다.

브레스트-리토프스크 조약(1918년 3월 3일): 러시아가 영토의 대부분을 잃은  굴욕의 평화 1916년 러시아는 베르됭 전선의 연합군을 구원하기 위해 발트 방면에서 공세를 개시했지만 완전히 실패했습니다. 독일군이 베르됭에서 병력을 돌리지 못하도록 묶어두지 못했을 뿐 아니라, 러시아군 역시 10만 명이 넘는 손실을 입었습니다. 같은 해 6월부터 8월까지 브루실로프 장군은 부코비나와 갈리시아에서 비교적 성과를 거둔 공세를 펼쳤으나, 거의 백만 명에 육박하는 막대한 손실은 군의 사기를 크게 꺾었습니다. 전쟁은 대중의 지지를 잃었고, 석탄과 빵 부족은 모스크바에서 격렬한 시위로 번져갔습니다.

1917년, 제국 정부에 대한 국민의 반란이 나라를 뒤흔들었습니다. 3월에는 임시 정부가 수립되고 차르 니콜라이 2세가 퇴위를 강요당했습니다. 새 정권은 전쟁을 계속 수행했고, 7월에는 브루실로프 장군이 다시 갈리시아와 부코비나를 공격했지만 점령지는 오스트리아-독일군에 의해 순식간에 되돌려졌습니다. 9월 3일에는 코르닐로프 장군이 방어하던 리가가 독일군의 손에 넘어갔고, 10월에는 라트비아 대부분과 발트해의 러시아 섬들이 함락되었습니다. 그리고 11월 7일(그레고리력 기준), 전쟁 종결을 최우선 요구로 내건 볼셰비키가 권력을 장악합니다. 10월 혁명의 성패를 위해 즉각적인 평화가 필요하다고 확신한 지도자 레닌은 독일과의 강화 협상에 나서기로 결심합니다.

브레스트-리토프스크 조약의 체결과 결과

브레스트-리토프스크 조약(1918년 3월 3일): 러시아가 영토의 대부분을 잃은  굴욕의 평화 1917년 12월 15일, 브레스트-리토프스크에서 소비에트 러시아와 동맹국 사이에 휴전 협정이 체결되었고, 이후 강화 조약을 위한 협상이 이어졌습니다. '혁명 전쟁'을 주장한 트로츠키와 중앙위원회 일부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레닌은 즉각 강화 노선을 고수했으며, 1918년 2월 18일 독일군의 새로운 공세가 시작되면서 최종 결단이 이루어졌습니다.

1918년 3월 3일 체결된 브레스트-리토프스크 조약은 러시아에게 재앙이었습니다. 러시아는 폴란드, 리투아니아, 발트 연안 국가들, 벨라루스 일부를 상실했고, 바투미와 카르스, 아르다한을 터키에 양도했으며, 핀란드와 우크라이나의 독립을 승인해야 했습니다. 그 결과 석탄 생산량의 90%, 야금 산업의 70%, 농업 자산의 55%를 잃었습니다. 차르들이 3세기에 걸쳐 이룩한 업적이 무너진 것처럼 보였고, 소비에트 러시아는 이반 대제 즉위 당시의 모스크바 공국보다도 작은 영토로 축소되고 말았습니다.

동부 전선의 평화는 오스트리아-독일 40개 사단이 동부 전선에서 서부 전선으로 이동하는 길을 열어주었고, 연합국은 이를 배신 행위로 간주했습니다. 이후 연합국은 러시아의 모든 반혁명 세력을 지원하게 됩니다. 10월 혁명은 서구 사회에 충격과 혼란을 안겼고 만장일치로 비난받았으며, 레닌은 자신의 급진주의를 관철하며 나머지 세계에 등을 돌리는 듯한 모습을 보였습니다.

1918년 3월 12일 수도를 모스크바로 옮긴 결정은, 서방의 눈에 페트르 대제가 열어준 문명의 창을 닫고 원시로 회귀하는 징후처럼 비쳤습니다. 그러나 운명은 반전됩니다. 1918년 11월 13일, 동맹국의 패배 직후 소비에트 정부는 브레스트-리토프스크 조약을 파기했고, 상실한 영토를 되찾기 위해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 제1차 세계대전을 공식적으로 종결시킨 베르사유 조약 역시 브레스트-리토프스크 조약을 무효로 선언했습니다.

함께 읽으면 좋은 자료

- 『제1차 세계대전 지도책(Atlas de la Première Guerre mondiale)』, 오웨프랑스(Ouest-France) 출판사, 2014.

- Jean-Jacques Marie, 『러시아 내전의 역사: 1917~1922(Histoire de la guerre civile russe)』, 텍스토(Texto), 20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