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사

왕의 손길로 병을 고치다? 프랑스·영국 군주의 '왕자병 치유' 의식 비사

왕의 손길로 병을 고치다? 프랑스·영국 군주의  왕자병 치유  의식 비사‘왕의 손길’ 의식이 처음으로 문서에 기록된 것은 뚱보왕이라 불린 루이 6세(재위 1108~1137)의 통치 시절이었다. 왕이 병을 고치는 능력은 점차 프랑스와 영국 국왕만이 지닌 특권으로 자리 잡았다. 경건왕 로베르 2세도 이런 권능을 지녔을 가능성이 있으며, 필리프 1세와 루이 6세는 좀 더 확실하지만, 수많은 증언으로 그 사실이 입증되기 시작한 것은 성왕 루이 9세부터였다. 영국에서는 플랜태저넷 왕조의 헨리 2세가 이 의식을 처음 행한 군주다. 기독교 군주에게 치유의 능력이 있다는 믿음에 바탕을 둔 이 관습은 프랑스에서 1824년 샤를 10세의 대관식까지 이어졌다.

왕자병(écrouelles)이란 무엇일까?

‘왕자병’ 또는 ‘임파선 부스럼’이라고도 불리는 이 병은 중세의 언어로는 오늘날의 결핵성 림프절염(림프결핵)을 가리킨다. 목의 림프절에 염증이 생겨 덩어리가 부풀어 오르고 끔찍하게 고름이 흘러나오는 질환으로, 당시에는 대개 생식기 결핵이 드러난 외적 징후로 해석되었다. 여러 증상이 뒤섞여 나타나는 탓에 당시에는 더욱 흔한 병으로 여겨졌다. 전염성이 있지만 치명적이지는 않으며, 환자에게 닥칠 수 있는 가장 큰 위험은 불임이었다. 특히 자연 치유가 일어나기 쉬운 질환이라는 점이 오랫동안 ‘왕의 기적 같은 치유력’을 정당화해 주었다.

대관식에서 탄생하는 치유의 권능

왕의 손길로 병을 고치다? 프랑스·영국 군주의  왕자병 치유  의식 비사12세기 프랑스에서는 평민이든 귀족이든, 군주가 이 병을 고칠 수 있다는 사실을 의심하는 이가 없었다. 그래서 이 병은 ‘왕의 병(royal evil)’이라고 불리기도 했다. 그러나 이 믿음의 역사는 생각보다 짧다. 왕권의 카리스마를 강화하고자 루이 6세가 대관식 의례를 개혁하면서 비롯된 것이며, 이후 후계者们 아래에서 확립되다가 1364년 즉위한 샤를 5세 현왕(賢王) 때 비로소 의례가 최종적으로 확정되었다.

실제로 1108년부터 프랑스 국왕의 대관식에 빠질 수 없는 조건은 도유(塗油), 즉 신성한 기원을 지닌 기름을 군주의 몸에 바르는 의식이었다. 성유(聖油, Holy Chrism)라 불리는 이 기름은 성령이 보낸 비둘기가 랭스의 레미 주교에게 전해준 ‘성합(聖壺)’에서 나온 것으로 전해진다. 레미 주교는 이 기름으로 프랑크인의 첫 왕인 클로비스에게 세례를 베풀었다고 한다. 하늘에서 내려온 이 기름은 군주에게 그리스도처럼 기적을 행할 수 있는 종교적 자격을 부여했다. 카롤링거 왕조 시대 프랑스에서 탄생한 이 의례는 왕권에 신성한 정당성을 부여했다. 프랑스 국왕은 하나님의 백성을 다스리고 교회를 보호하는 ‘왕이자 사제’, 그리고 다른 필멸자들보다 하나님께 들어올려진 존재, 빛남과 신비로운 힘—그중에서도 치유의 힘까지—을 지닌 인물이 된 것이다.

“왕이 너희를 만진다. 하나님이 너희를 낫게 하시기를”

초기의 의식은 화려함 없이 소박했다. 성왕 루이는 매일 미사가 끝난 자리에서 청을 올리는 병자들을 직접 만져주었다. 그러나 루이 11세(1461~1483)부터는 병자들이 한데 모여 주 1회 의식을 받게 되었다. 15세기에는 다른 병을 앓는 사람을 걸러내기 위해 간단한 사전 진찰을 거치도록 하였다. 카페 왕조의 군주들은 병든 부위를 손으로 만지고 그 위에, 혹은 환자의 이마에 십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히 여겼다. 상징적으로 말하자면 왕의 손길은 왕 안에 깃든 보이지 않는 힘을 전달하고, 왕이자 사제인 군주의 축복이 그 모든 것을 완성하는 구조였다.

왕의 손길로 병을 고치다? 프랑스·영국 군주의  왕자병 치유  의식 비사16세기부터 왕은 손길에 정형화된 문구를 곁들이기 시작했다. “왕이 너희를 만진다. 하나님이 너희를 낫게 하시기를.” 실제로 치유가 일어났다면 그것은 분명 자연스러운 심리적 작용의 결과였다. 백성들이 기적이 반드시 일어난다고 확신하고 있었기 때문에 기적은 일어났던 것이다. 17세기에 이르러 왕의 접촉은 군주정의 가장 엄숙한 의식 중 하나로 격상되었다. 부활절, 성령강림절, 특히 크리스마스 등 주요 기독교 명절에만 거행되었고, 포고꾼과 게시판으로 널리 알려진 뒤 대개 루브르 궁의 대회랑에서 열렸다. 병자들은 우르르 몰려왔고, 외국인들마저 프랑스인들과 어깨를 나란히 했다. 프랑스 왕실은 이 ‘왕의 기적’을 유럽의 경쟁 왕조들에 대한 우월성을 과시하는 수단으로까지 활용했다. 1715년 성령강림절, 서거를 불과 얼마 앞두고도 루이 14세는 여전히 1,700명의 병자를 만졌다. 건강 상태가 어떠하든 왕은 백성을 위해 자신을 내어주어야 하며 그 책무를 회피할 수 없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단면이다.

점점 힘을 잃어가는 기적

그러나 이 의식의 수명은 그리 길지 않았다. 루이 15세와 루이 16세 때에도 여전히 수천 명의 환자가 왕을 찾았지만, 기적에 대한 믿음은 혁명 전야의 사상적 변화를 견디지 못했다. 계몽시대를 휩쓴 합리주의는 이 전통이 뿌리내린 종교적 세계관으로부터 엘리트들을 멀어지게 만들었다. 하층민들이 여전히 기적을 행하는 왕을 숭배하는 동안, 계몽된 지식인들은 회의적이었고 심지어 노골적으로 조롱했다.

볼테르는 루이 14세가 왕자병에 걸린 정부(情婦) 중 한 사람을 고치지 못했으면서도 “그녀를 아주 잘 만졌다”고 무례하게 적어 놓았다. 왕들 자신도 더 이상 자신의 권능을 믿지 않는 듯했다. 루이 15세부터는 왕의 문구가 의미심장하게 뒤집혔다. “하나님께서 낫게 하시기를, 왕이 당신을 만졌으니.” 그리고 1824년 샤를 10세는 병자들에게 “저는 위로의 말씀을 전하러 왔습니다. 회복하시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라고 말하는 데 그쳤다.

영국의 왕실 기적

중세와 근대 유럽에서 오직 영국의 국왕들만이 프랑스 국왕의 이 특권을 공유했고, 이는 다른 왕조들의 질투와 우려를 자아냈다. 영국 왕들은 1276년부터 1714년까지 왕자병 환자를 만졌다. 이 의식은 어떤 의미에서 중세 내내 프랑스와 영국 군주정이 벌인 긴 위신 다툼의 상징적 무대였다. 영국의 의식은 13세기에는 프랑스의 의식과 비슷했지만, 이후 왕이 예속 사제와 함께 집전하는 훨씬 더 엄숙하고 화려한 종교 전례로 발전했다.

영국 플랜태저넷 왕조는 두 번째 특권도 내세웠다. 왕의 접촉 직후인 14세기 초에 나타난 이 의식에서 왕은 매주 성금요일마다 궁전 예배당의 제단 앞에 엎드렸다가 금화와 은화를 놓고, 곧바로 일반 화폐로 교체하여 그것을 ‘속죄’했다. 왕은 그렇게 한순간 교회의 재산이 되어 축성된 금화와 은화로 반지를 만들었다. 왕이 하사한 이 반지는 착용자를 치유하는 힘, 특히 간질성 질환을 낫게 하는 힘이 있다고 믿어졌다.

더 읽을거리

- 레옹 랑두지(Léon Landouzy), 『왕자병의 접촉(Touching the Ecrouelles)』, ESR, 2006.

- 마르크 블로크(Marc Bloch), 『왕의 기적: 왕권에 부여된 초자연적 성격에 관한 연구, 특히 프랑스와 영국을 중심으로』, NRF, 198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