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사

인류를 구한 최초의 백신 — 예방접종의 역사와 그 유래


인류를 구한 최초의 백신 — 예방접종의 역사와 그 유래영국 의사 에드워드 제너(Edward Jenner)가 소의 우두(cowpox)가 인간의 천연두로부터 보호 효과가 있음을 입증한 것은 18세기 말의 일이었습니다. 이 발견은 면역학과 예방접종의 첫 번째 초석이 되었습니다. 사실 그보다 앞선 17세기부터 중국에서는 천연두를 막기 위한 시술이 경험적으로 행해졌고, 이후 콘스탄티노플을 거쳐 영국으로 전파되었습니다. 오늘날의 백신 접종은 에드워드 제너와 루이 파스퇴르의 연구를 통해 본격적으로 발전했습니다. 파스퇴르는 1879년 실험실에서 최초의 백신을 만들어냈고, 6년 후에는 개에게 물린 알자스 출신 소년에게 광견병 백신을 접종했습니다.

 

예방접종의 기원, '인두법(variolation)'

18세기 초 영국에서 유행했던 가장 기이한 관습 중 하나는 아이들에게 일부러 천연두를 노출시키는 일이었습니다. 볼테르는 열한 번째 철학 서간 「천연두 접종에 관하여」에서 이 관행을 옹호하기도 했습니다. 당시 천연두는 흑사병보다 더 치명적인 질병으로, 부자와 가난한 사람을 가리지 않고 특히 어린이들을 많이 죽음으로 몰아넣었습니다.

인류를 구한 최초의 백신 — 예방접종의 역사와 그 유래이 재앙에 맞서기 위해 중국에서는 아마도 17세기 초, 혹은 그보다 훨씬 이전부터 '인두법(variolation)'이라 불리는 방법이 사용되었습니다. 그중 하나는 천연두 딱지를 가루 내어 콧구멍에 넣는 것이었습니다. 이 초기 형태의 예방접종은 단순한 관찰에서 비롯되었습니다. 즉, 천연두는 같은 사람에게 두 번 걸리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따라서 가벼운 형태의 천연두에 인위적으로 노출된 사람이라면 평생 동안 중증 천연두로부터 보호받을 수 있으리라 기대할 수 있었습니다.

영국에서 시행된 예방 조치는 중국이 아니라 콘스탄티노플에서 전해진 것입니다. 가벼운 형태의 천연두 환자의 농포에서 채취한 고름을 작은 상처나 찌름을 통해 피부 아래에 주입하는 방식이었습니다. 이 방법이 유럽에 알려진 것은 대사(大使) 남편과 함께 오스만 제국의 수도에 머물렀던 메리 워틀리 몬터규(Mary Wortley Montagu) 부인 덕분입니다. 몬터규 부인은 편지에서 제국 전역에 널리 퍼져 있던 이 '접종' 방법을 소개했고, 1721년 영국으로 돌아온 후에는 의사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직접 딸에게 접종을 하며 그 성공을 증명했습니다.

최초의 예방접종, 제너의 우두 백신

그러나 인두법은 반대하는 이들이 많았고 격렬한 논란을 낳았습니다. 안전한 방법이 아니었던 것도 사실입니다. 실제로 일부 어린이들은 접종 때문에 목숨을 잃었습니다. 이 효과적이지만 위험한 관행을 끝낸 것은 1796년 최초의 진정한 백신 접종을 시행한 평범한 영국의 시골 의사, 에드워드 제너였습니다.

인류를 구한 최초의 백신 — 예방접종의 역사와 그 유래제너는 농장에서 일하는 처녀들이 흔히 천연두에 저항력을 보인다는 사실에 주목했습니다. 그 원인은 그들이 '우두(vaccinia)', 즉 인간에게는 가벼운 질환인 소의 천연두에 이미 걸린 적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제너는 우두에 걸린 여성의 고름을 어린 소년에게 접종한 뒤, 한 달 후에 천연두 고름을 다시 접종해 그 효과를 확인했습니다. 소년에게는 천연두의 어떤 징후도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천연두 예방접종은 영국에서 시작해 전 세계로 매우 빠르게 확산되었습니다. 그러나 현대 미생물학과 예방접종을 탄생시킨 '파스퇴르 혁명'이 일어난 것은 19세기 말의 일이었습니다.

루이 파스퇴르의 업적

1864년 4월 7일, 루이 파스퇴르가 소르본느에서 발효에 관한 연구 결과를 발표했을 때, 자연발생설은 한 세기 전 라차로 스팔란차니(Lazzaro Spallanzani)의 실험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열렬한 지지자들이 있었습니다. 발표를 지켜본 군중 속에는 알렉상드 뒤마와 조르주 상드도 있었습니다. 파스퇴르는 뛰어난 실험 솜씨로 액체가 든 플라스크를 조작하며, 현미경으로 보이는 효모가 발효의 산물이 아니라 그 원인이며 공기에서 들어온 것임을 보여주었습니다. 자연발생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효모가 발효를 일으키듯 질병에 걸린 사람의 조직에서 발견되는 세균 역시 부패의 산물이 아니라 그 원인이라고 추론할 수 있었습니다.

이러한 관찰을 바탕으로 파스퇴르는 전염병이 독(毒)이나 체내에 잠들어 있던 독의 각성 때문이 아니라, 한 사람에게서 다른 사람으로 옮겨가는 살아 있는 미생물에 의해 발생한다고 가정하게 되었습니다. 실제로 1850년 카시미르 조제프 다베인(Casimir Joseph Davaine)은 탄저병에 걸린 양의 혈액에서 현미경으로 작은 필라멘트를 관찰했고, 이 병이 아픈 동물의 혈액을 건강한 동물에 접종함으로써 전염될 수 있음을 보였습니다. 1876년에는 로버트 코흐(Robert Koch)가 배양 기술을 사용해 탄저균을 최초로 분리해냈는데, 이 배양 기술은 이후 백신 개발에 필수적인 도구가 되었습니다.

실험실에서 만들어진 최초의 백신

곧이어 파스퇴르는 사람의 종기 샘플에서 포도상구균을 발견했고, 이어 산욕열의 원인균인 연쇄상구균을 규명했습니다. 그리고 이 모든 미생물을 가리키는 말로 '미생물(microbe)'을 제안했습니다. 이는 그리스어 mïkros("작은")와 bios("생명")에서 온 용어입니다. 이 성과는 오스트리아-헝가리 출신 의사 이그나츠 필립 젬멜바이스(Ignace Philippe Semmelweis)와 영국 외과의 조지프 리스터(Joseph Lister)가 권장하던 위생적 예방 조치에 과학적 근거를 제공했습니다.

인류를 구한 최초의 백신 — 예방접종의 역사와 그 유래1879년, 파스퇴르는 닭 콜레라로 죽은 수탉의 머리를 받아 세균을 배양했습니다. 그런데 오래된 배양액은 독성을 잃었다는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이를 닭에게 주사하면 병은 일으키지 않으면서도 질병으로부터 보호 효과를 줍니다. 이렇게 탄생한 것이 최초의 약독화 생백신(live attenuated vaccine)입니다. 2년 뒤에는 그의 팀이 앙리 투생(Henry Toussaint)의 기법을 응용해 양의 탄저병 백신을 개발했습니다. 이번에는 열을 가해 세균의 독성을 약화시키는 방식이었습니다.

1885년, 파스퇴르는 어린 조제프 마이스터(Joseph Meister)에게 광견병 예방접종을 했습니다. 광견병 바이러스가 아직 분리되지 않았기 때문에 그는 건조시킨 광견병 토끼의 척수를 사용했습니다. 소년은 살아남았습니다. 역사는 이 사건을 하나의 상징으로 기억하지만, 이는 백신 개발의 한 단계일 뿐이며 반드시 가장 중요한 단계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 20세기에는 수많은 백신이 탄생했고, 질병 근절을 목표로 하는 대대적인 예방접종 캠페인이 시작되었습니다. 1980년 5월 8일, 세계보건기구(WHO)는 천연두의 공식적인 박멸을 선언했습니다. 이것은 백신 접종만으로 질병이 사라진 유일한 사례입니다.

오늘날, 특히 프랑스에서 소아마비의 지속과 치명적인 홍역의 재유행은 예방접종 정책이 여전히 공중보건의 핵심 과제임을 잘 보여줍니다.

참고문헌

- 『에드워드 제너와 천연두 백신: 예방접종의 첫 번째 단계』, 멜라니 메트라(Mélanie Mettra), 50 Minutes, 2015.

- 『예방접종의 모험(L'Aventure de la vaccination)』, 안마리 물랭(Anne-Marie Moulin), Fayard, 199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