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틀러의 마지막 희생자는 독일인 자신이었다
힐데가 핀크(Hildegar Fink), 75세의 독일 여성은 오늘날 체코 영토에 속한 주데텐란트의 로스테르니츠(Rosternitz)라는 마을에서 가족과 함께 추방당할 당시 겨우 다섯 살이었다. 독일이 전쟁에서 패배한 지 몇 달 뒤, 그녀와 가족은 나치 독일 시절 '독일인이었다'는 대가를 치러야 했던 수많은 사람들 중 하나였다. 하룻밤 사이에 집을 떠나야 했던 그들은 중부·동유럽 출신 수천 명의 독일인들처럼 미지의 방향으로 내몰렸다. 핀크에게 이것은 기억 속 가장 끔찍한 경험이었지만, 독일 통일이 자리 잡은 1990년대 초에는 고향터에서조차 이방인처럼 느껴졌다고 한다.
주데텐 독일인들은 체코 대통령 에드바르트 베네슈(Edvard Beneš, 1894~1948)가 서명한 1945년 포고령, 이른바 '베네슈 포고령'의 폐지를 요구하고 있다. 이 포고령의 시행은 독일계·헝가리계 소수민족의 국외 추방, 재산 몰수, 기업 국유화, 그리고 단지 독일인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국적을 박탈당하는 결과를 낳았다.

많은 이들이 강제로 집을 떠났다. 붉은군대나 체코·폴란드 민병대를 두려워해 도피한 사람도 있었고, 제3제국 영토에서 드러난 나치의 잔혹행위에 대한 이웃들의 보복이 두려웠던 사람도 있었다. 또 어떤 이들은 추방에 앞서 모든 재산을 포기한다는 내용의 문서에 서명하고 '자발적으로 떠난다'고 선언하도록 강요당했다. 게다가 1945년 8월 포츠담 회담에서 연합국은 독일의 동쪽 국경을 오데르강-나이세강 선으로 옮기기로 결정했고, 이로 인해 수천 명의 독일인 또는 독일계 주민들이 더 새로운 국경 안으로 이주해야 했다.
흥미로운 것은 제2차 세계대전 종전 약 60년 후, 나치즘의 죄 앞에서 고개를 숙이는 데 익숙했고 어쩌면 언제나 '가해자' 역할에 지쳐버렸던 독일인들이 비로소 현대사의 '희생자'로서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왜 이 금기는 깨졌는가?
1950년대 서독(독일연방공화국)은 나치 과거사의 청산보다 온 나라를 재건하는 일이 급했다. 반면 동독(독일민주공화국)은 나치 만행에 대한 보복으로 폴란드·체코 민병대가 독일인 주민에게 저지른 행위에 대해 아무런 논의도 하지 않았다. 1990년대 발칸 전쟁에서 벌어진 인종청소와 난민 물결은 독일인들에게 제2차 세계대전 직후 자신들이 겪었던 추방의 기억을 되살렸고, 주데텐 독일인들의 요구를 이해하게 만드는 계기가 되었다. 독일은 60년이 넘는 시간 끝에 비로소 자신들 역시 희생자였음을 받아들이게 되었고, 종전 무렵 독일 도시들에 가해진 무차별 폭격마저 함께 기억하기 시작했다. 그동안 많은 역사학자들에게 간과되어 온 이 독일인들이야말로 '히틀러의 마지막 희생자'라는 평가가 등장한 것이다.

귀도 크노프(Guido Knopp)와 엔리크 프란첸(Enrik Franzen)의 저서에는 추방 이후 독일인들이 겪은 참상을 담은 컬러 및 흑백 사진들이 실려 있다. 인도에 나뒹구는 시체, 피난길에 오른 여성과 아이들, 거리 한가운데 홀로 남겨진 어린아이들, 붉은군대와 민병대에게 성폭행당한 수천 명의 여성들, 등에 하켄크로이츠를 그여진 채 구타당하는 알몸의 남성들, 그리고 나치 치하 유대인에게 강요되었던 다윗의 별에 대한 복수라며 폴란드어로 '독일인'을 뜻하는 커다란 N(Niemiec, 니에미에츠)자가 적힌 흰 완장을 차고 있는 남녀의 사진들이다.

그러나 지금 독일뿐 아니라 동유럽 이웃 국가들 사이에서도 뚜렷한 결론이 나지 않은 논쟁이 일고 있다. 베를린에 '추방 희생자 센터'를 건립하려는 계획이 있었지만, 특히 폴란드와 체코에서 좋은 반응을 얻지 못했다. 2009년에야 앙겔라 메르켈 총리가 제2차 세계대전 후 추방된 독일인들을 위한 추모비 건립에 지지를 표명했지만, 일각에서는 이를 조롱으로 받아들인다. 나치 독일이 자행한 600만 명 이상의 유대인 홀로코스트 희생자를 기리는 추모비가 이미 베를린에 세워져 있기 때문이다.
독일인들은 이제 자기들의 희생자도 기릴 때가 되었다고 생각한다. 히틀러 시대의 독일인이었다는 이유만으로 역사의 십자가에 못 박혀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에드문도 페레즈(Edmundo Pérez) 공동 작업
출처 및 이미지: 『굼벵이 걸음』 – 귀터 그라스(Günter Grass), 『파괴의 자연사』 – W. G. 제발트(W. G. Sebal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