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사

기타가 울 때: 플라멩코의 거장 파코 데 루시아(1947~2014)

존경과 재능, 그리고 성공을 두루 갖춘 예술가—요즘 세상에서는 좀처럼 찾기 힘든 조합입니다—가 불멸의 세계로 떠났습니다. 음악 전반의 대가이자, 무엇보다 스페인 기타의 거장. 우리는 프란시스코 산체스 고메스(Francisco Sánchez Gómez), 즉 파코 데 루시아(Paco de Lucía)를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그는 포르투갈 출생인 어머니 루시아 고메스(Lucía Gomes)의 이름을 딴 예명으로 널리 알려져 있으며, 2014년 2월 27일 66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당시 인터넷을 통해 전해진 정보에 따르면 사인은 심장마비였던 것으로 알려집니다.

현대 스페인 음악을 가르치는 모든 음악 교사에게 파코 데 루시아의 이름은 결코 빼놓을 수 없습니다. 페루 역사에서 앙가모스 해전과 미겔 그라우(Miguel Grau) 제독이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인 것과 같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여섯 줄의 현을 지배했던 이 대가에게 짧은 글이라도 바치고자 합니다. 그는 우리에게 찬란하고 결코 대체될 수 없는 음악적 유산을 남겼습니다.

고향의 소리를 세계로

파코 데 루시아는 보편적 음악가의 가장 좋은 본보기를 몸소 보여주었습니다. 어린 시절부터 갈고닦은 고향 알헤시라스(스페인 안달루시아 카디스)의 민속 음악을, 그 본질과 소리를 흐트러뜨리지 않은 채 전 세계로 전파한 것입니다. 플라멩코 기타의 천재이자 '누에보 플라멩코(Nuevo Flamenco)'의 주역으로서, 그는 현대 클래식, 재즈, 보사노바, 라틴 음악의 요소를 자신의 뜨거운 프레이징 속에 녹여냈습니다. 마치 스페인의 불꽃이 사방으로 튀는 듯한 연주였습니다. 이 모든 융합은 그의 강렬하고 빛나는 창조력이 낳은 결실이었고, 덕분에 그는 5개 대륙 수백만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는 기타리스트가 되었습니다.

수많은 음악 애호가와 학자들이 그를 존경했습니다. 하지만 어쩌면 그의 가장 위대한 업적은 동료들 사이에서 '최고'로 인정받았다는 점일지도 모릅니다. 이 충직한 나무 악기를 연주하는 저마다 뛰어난 기타리스트들은 그의 이름을 들을 때마다 깊은 경의를 표했고, 함께 무대에 설 기회가 생기면 그를 최고의 예우로 맞이했습니다. 그 역시 동료 음악가들과 무대를 함께하는 일을 즐겼습니다. 자신의 천재성을 의식조차 하지 않는 듯한 소박함과 겸손함으로 말입니다. 오늘날 실력에 걸맞은 겸손을 잃은 이들이 본받아야 할 자세입니다.

60장이 넘는 앨범, 그리고 위대한 동행들

파코 데 루시아는 1965년부터 2011년까지 스튜디오 녹음과 라이브 실황을 포함해 60장이 넘는 앨범을 발표했습니다. 카마론 데 라 이슬라(Camarón de la Isla, 본명 호세 몬헤 크루스), 포스포리토(Fosforito), 안토니오 마이레나(Antonio Mairena) 등 걸출한 집시 가수들의 반주를 맡았고, 브라이언 애덤스(Bryan Adams) 같은 록 뮤지션과도 호흡을 맞췄습니다. 나아가 재즈와 클래식, 중동 음악, 브라질 음악을 아우르는 세계 각국의 기타리스트들과 폭넓게 협업하며 음악적 지평을 넓혀갔습니다.

페루 카혼을 세계에 알리다

이 현의 달인은 페루와도 각별한 인연을 맺고 있었습니다. 그가 마지막으로 페루를 찾은 것은 불과 몇 달 전인 2013년 10월, 리마의 그란 테아트로 나시오날(국립대극장)에서 펼친 특별한 콘서트를 위해서였습니다.

많은 사람이 아직 모르는 사실이 있습니다. 파코 데 루시아는 페루의 카혼(cajón)을 자신의 앙상블에 도입한 최초의 플라멩코 음악가였다는 점입니다. 이 일을 계기로 세계 음악계는 카혼을 스페인 음악과 연결 짓기 시작했고, 심지어 오늘날까지도 카혼의 원산지가 페루가 아니라 스페인이라고 믿는 이들이 적지 않습니다. 그의 세계적 영향력이 그만큼 컸다는 방증입니다. 그러나 그의 정직함 또한 만만치 않았습니다. 그는 카혼이 페루의 악기라는 사실을 밝힐 기회를 단 한 번도 놓치지 않았고, 그 악기가 자신의 친구이자 페루를 대표하는 음악가인 페페 토레스(Pepe Torres)와 카를로스 카이트로 소토(Carlos Caitro Soto)가 선물한 것임을 늘 공언했습니다.

혁신과 기교의 달인

데 루시아는 화성에서 보여준 혁신과 색채, 그리고 오른손의 놀라운 솜씨로 유명했습니다. 극도로 빠르고 복잡한 프레이징도 거침없이 소화해내는 힘과 유연함을 겸비한 것입니다. 대비의 달인이었던 그는 솔로와 레토르티도(스트러밍)를 다른 주법과 결합해 교차시켰고, 작곡에는 추상적인 코드와 선율적인 음계까지 더했습니다. 이러한 혁신 덕분에 그는 폭넓은 스타일을 섭렵하면서도, 자유롭고 유기적이며 자연스러운 플라멩코 음악가로서의 정체성을 끝내 잃지 않았습니다.

영원히 울릴 기타 소리

그는 다시 만날 수 없는 대가였지만, 그의 음악은 남습니다. 우리 아이들의 교육은 진정한 음악가에게 마음을 열 때 한층 풍요로워지고 시야도 넓어질 것입니다. 파코 데 루시아처럼 유행과 얕은 상품주의의 변두리에 머물면서도 줄곧 최전선을 지켜온 음악가들에게 말입니다.

파코 데 루시아가 만든 음악은 역사와 지리, 한 민족 고유의 정서와 맞닿아 있습니다. 동시에 재능과 규율을 무기로 밑바닥에서 성장해 올라간 끈기의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한 명의 기타 예술가 안에 이 모든 가치가 응축되어 있었습니다. 잘 가십시오, 대가님.

참고 자료: El Mund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