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사

인도의 마하라자가 머물렀던 스코틀랜드 멘지스 성, 숨겨진 역사

인도의 마하라자가 머물렀던 스코틀랜드 멘지스 성, 숨겨진 역사

스코틀랜드에서 성(城)을 찾는 일은 특별할 것이 없습니다. '천 개의 성의 나라'라는 별명이 있을 만큼 이곳에는 수많은 성이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오늘 소개할 멘지스 성(Castle Menzies)은 가장 많은 관광객이 찾는 곳도, 가장 웅장하고 화려한 성도 아닙니다. 하지만 이 성에 얽힌 이야기는 매우 독특하고 매력적입니다.

인도의 마하라자가 머물렀던 스코틀랜드 멘지스 성, 숨겨진 역사

2009년 당시 멘지스 성의 모습

16세기 클랜의 안식처, 멘지스 성

멘지스 성은 16세기에 멘지스 클랜(Menzies Clan)이 기존 성의 폐허 위에 새롭게 지은 건축물로, 스코틀랜드 하이랜드 지방의 전통적인 건축 양식을 고스란히 담고 있습니다. 처음부터 멘지스 클랜이 거주해 온 이 성은 긴 역사 속에서 유명하고 독특한 인물들을 맞이했으며, 영국의 격동적인 현대사를 함께 지켜온 증인이기도 합니다.

자코바이트 봉기(Jacobite Rising)

먼저 자코바이트가 누구인지 알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그들의 역사는 1688년 명예혁명(Glorious Revolution)에서 시작됩니다. 명예혁명으로 잉글랜드 국왕 제임스 2세가 폐위되고, 영국 의회가 선호하는 네덜란드 출신 개신교 군주 오렌지 공 윌리엄이 윌리엄 3세로 즉위하게 됩니다.

제임스 2세는 스코틀랜드 스튜어트 왕조의 혈통으로, 브리튼 제도에서 가톨릭 신앙의 수호자를 자처하던 인물이었습니다. 그가 폐위된 후 가톨릭 신자들은 왕좌에 다시 가톨릭 군주를 앉히기 위해 조직적으로 싸워야 할 필요성을 느꼈습니다. '자코바이트'라는 이름은 당연히도 마지막으로 폐위된 국왕 제임스(James)에게서 유래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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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렌피넌에 세워진 자코바이트 기념비

자코바이트들은 스코틀랜드 하이랜드를 중심으로 조직되었고, 이웃 나라 아일랜드의 지원은 물론 스페인 등 유럽 여러 국가로부터 경제적 원조까지 받았습니다. 다만 실제로 대규모 전쟁으로 번지지는 않았습니다. 오랫동안 끊임없는 파괴 공작과 소규모 전투를 반복하는 일종의 '게릴라전'에 매달렸으며, 본격적인 봉기는 1715년, 1719년, 그리고 이 글의 주인공이 등장하는 1745년, 단 세 차례 있었습니다.

찰스 에드워드 스튜어트와 멘지스 성

1745년 봉기를 이끈 이는 제임스 2세의 손자이자 잉글랜드 왕좌를 주장한 마지막 자코바이트인 찰스 에드워드 스튜어트(Charles Edward Stuart), 통칭 '보니 프린스 찰리'였습니다. 그는 영국의 영원한 숙적이었던 프랑스 국왕 루이 15세의 지원까지 받았습니다. 스코틀랜드의 강력한 클랜들로 구성된 군대를 이끌고 에든버러를 점령한 뒤, 1745년 성탄절에는 글래스고에 입성했습니다. 이 원정 기간 동안 그는 멘지스 성을 작전 기지로 활용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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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비드 모리어가 그린 컬로든 전투

이것이 자코바이트들이 사명 달성에 가장 근접했던 순간이었지만, 기쁨은 오래가지 못했습니다. 1746년 4월 16일 컬로든 전투(Battle of Culloden)에서 영국군이 마지막 자코바이트 봉기를 철저히 진압하면서, 젊은 왕자는 영국 본토를 영원히 떠나야만 했습니다.

이제 시간을 한 세기쯤 뒤로 넘겨 보겠습니다.

'마하라자처럼 산다'는 말의 유래

누군가 지나치게 사치스럽게 살 때 흔히 쓰이는 표현이 바로 '마하라자처럼 산다'입니다. 그런데 이 말의 유래는 멘지스 성에서 수천 킬로미터나 떨어진 인도에 있습니다. 17세기부터 인도는 천연자원을 착취하기 위한 목적으로 영국 동인도회사의 지배를 받았고, 이 과정에서 인도의 번왕들, 즉 마하라자들은 갖가지 부를 축적할 수 있었습니다.

그들의 삶은 과시와 사치 그 자체였습니다. 놀랄 만큼 웅장한 저택에서 생활했고, 목걸이, 팔찌, 초커 등 온갖 보석류에 대한 집착이 남달랐습니다. 또한 무굴 제국에서 물려받은 전통대로 갖가지 장식으로 치장한 터번을 쓰는 문화도 인상적입니다. 마지막으로 흥미로운 관습 하나를 덧붙이자면, 최소한 가장 중요한 마하라자들은 수도 델리에서 21발의 예포로 맞이받아야 했습니다.

멘지스 성의 마하라자, 달립 싱(Dalip Sing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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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코틀랜드로 떠나기 직전인 15세의 달립 싱

이야기의 주인공 달립 싱은 오늘날 파키스탄 펀자브 지역에 해당하는 라호르에서 태어났습니다. 그가 태어난 당시 이곳은 인도 565개 번왕국 중 하나인 시크 제국(Sikh Empire)에 속해 있었습니다. 그는 불과 여섯 살의 나이에 이 제국의 마하라자로 즉위했고, 얼마 지나지 않아 대영제국과의 전쟁이 시작됩니다. 그 결과 시크 제국은 영국에 정복당했고, 어린 마하라자는 열두 살에 잃어버린 영토에 대한 보상으로 후한 종신 연금을 받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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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프레스턴이 그린 1829년경 멘지스 성

그가 가장 먼저 한 일은 가톨릭으로 개종한 뒤 영국으로 이주하는 것이었습니다. 새 터전으로는 스코틀랜드가 적합했고, 그 결과 1855년부터 1858년까지 그는 멘지스 성에 거주하게 됩니다. 이후 1861년 어머니를 맞으러 인도를 다녀온 것을 제외하면 다시는 인도로 돌아가지 못했으며, 유럽에서 진정한 마하라자다운 삶을 살다 갔습니다.

20세기의 멘지스 성

마지막 저명한 인물이 떠난 후 성은 끊임없는 쇠퇴의 길을 걷습니다. 제1차 세계대전 중에는 무려 군용 마구간으로 사용되기도 했는데, 1957년 멘지스 클랜이 이 성을 단돈 300파운드에 다시 사들였을 때의 처참했던 모습은 쉽게 짐작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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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형적인 스코틀랜드 결혼식

그때부터 멘지스 가문을 중심으로 성 보호 협회가 결성되었습니다. 복원 작업은 1971년에 시작되어 1997년에야 일반에 다시 공개되었습니다. 현재도 방문이 가능하지만 여름철에만 개방됩니다. 한편 결혼식, 연회 등 행사 장소로 대관할 수도 있는데, 비용은 VAT 20%를 포함해 약 3,475파운드(약 5,000유로)입니다. 다만 밤새 숙박할 수는 없는데, 성이 아직 숙박 시설로 갖추어지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이미지 출처: commons.wikimedi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