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운 좋게 살아남아 고향으로 돌아온 참전 용사들은 새로운 삶을 시작해야 했습니다. 그러나 모든 전쟁 이후가 그렇듯, 이들 다수는 직업 없이 허탈한 현실 앞에 서게 되었습니다.
호주군의 사례가 대표적입니다. 1915년 4월 25일 갈리폴리에 상륙하여 1918년 10월 가자 지구와 예루살렘을 함락시켜 오스만군의 항복을 받아낸 30만 명이 넘는 호주 병력 가운데, 무려 6만 명은 고향으로 돌아오지 못했습니다. 또 다른 15만 명은 부상을 입거나 가스 공격에 노출되거나 포로로 잡히는 아픔을 겪었습니다.
돌아온 용사들에게 최소한의 일자리라도 보장하기 위해, 국립도로위원회 의장 윌리엄 칼더(William Calder)는 이들을 고용해 호주 남서부 해안의 고립된 정착지들을 연결하는 도로를 건설하자고 제안했습니다.

당시 사우스 코스트 로드(South Coast Road)라는 가칭으로 불린 이 도로의 노선 조사는 1918년 시작되었습니다. 바원헤즈(Barwon Heads) 마을에서 출발해 케이프 오트웨이(Cape Otway) 주변의 서쪽 해안을 따라 워넘불(Warrnambool) 인근까지 이어지는 경로가 설계되었습니다.
이 프로젝트를 수행하기 위해 그레이트 오션 로드 트러스트(Great Ocean Road Trust)가 결성되었고, 3,000파운드를 기부한 회장을 필두로 개인 청약과 차입금을 통해 총 81,000파운드를 모금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이 자금은 미래의 고속도로를 이용하는 운전자에게 통행료를 부과함으로써 상환될 계획이었으며, 빚을 모두 갚으면 도로는 공공 재산으로 귀속될 예정이었습니다.

1919년 9월 19일, 제1차 세계대전에 참전했던 호주 군인 3,000명이 동원되며 건설이 시작되었습니다. 작업은 폭발물, 곡괭이, 삽, 손수레를 사용해 거의 전부 수작업으로 진행되었고, 기계 장비는 거의 사용되지 않았습니다.
공사팀은 한 달에 약 3km씩 전진했으며, 특히 마지막 구간의 험준한 해안 산악 지형이 가장 위험하고 어려운 구간이었습니다.

군인들은 이 작업을 또 하나의 군사 임무처럼 여겼습니다. 정찰팀은 대부분의 답사에 앞서 텐트에서 생활했고, 공용 식당과 주방을 갖춘 캠프에는 피아노, 게임, 신문, 잡지 같은 편의 시설도 마련되어 있었습니다.
첫 번째 구간은 1922년에 완공되어 그해 12월 개통되었습니다. 이후 토키(Torquay) 마을과 앨런스포드(Allansford) 마을 사이 243km 전 구간이 완성되기까지 10년이 더 걸려, 1932년 11월에야 정식으로 문을 열었습니다. 몇 달 전 세상을 떠난 히치콕(Hitchcock) 회장을 추모하기 위해 그의 차량이 개통식 행렬에 포함되었고, '도로의 아버지'로 불린 그를 기리는 기념비도 세워졌습니다.

이 길을 달리는 것은 적잖은 모험이었습니다. 양방향 통행이 가능했음에도 차량 한 대가 겨우 지나갈 수 있을 만큼 좁았기 때문입니다. 새로운 도로는 주변 지역의 도시화를 촉진했는데, 인근에 거주하거나 집을 짓고자 하는 사람들은 5파운드를 내고 도로와 연결되는 교차로 건설을 요청할 수 있었습니다.
1936년 10월 2일, 이 도로는 빅토리아 주 정부의 소유가 되었고 통행료는 폐지되었습니다. 1960년대에는 그레이트 오션 로드(Great Ocean Road) 연선에 호텔이 늘어나면서, 그 이름값에 걸맞게 일부 구간이 넓어졌습니다. 그럼에도 오늘날 이 길을 운전하는 것은 여전히 만만치 않은 도전이며,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도로 중 하나로 꼽힙니다.

일명 '코스타 델 서핑(Surf Coast)' 전체를 잇는 이 도로는 열대우림, 해변, 절벽, 협곡을 가로질러 이어집니다. 이곳에서 접근할 수 있는 절경 명소 중에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열두 사도(The Twelve Apostles)가 있습니다.
2004년에는 나란히 이어지는 트레킹 코스인 그레이트 오션 워크(Great Ocean Walk)가 조성되었습니다. 그리고 2011년, 이 도로는 제1차 세계대전 전사자들을 기리는 세계 최대의 전쟁 기념물로서 호주 내셔널 트러스트 목록에 등재되었습니다.
출처
그레이트 오션 로드 공식 웹사이트 / Australian War Memorial / The Sydney Mail / Engineers Australia / Wikipedi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