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사

칭찬받은 직후 참수형에 처해진 프랑스 수비대의 비극

동당 요새: 강력한 무장을 갖춘 국경의 방어 거점

1940년 9월, 일본군이 프랑스령 인도차이나 북부로 진격하던 시기, 베트남 국경의 동당(Dong Dang) 요새에서는 전쟁사에 남을 참혹한 전투와 배신이 벌어졌습니다. 동당 요새는 81mm 박격포와 75mm 야포 등 충분하고 강력한 화력을 갖춘 현대식 방어 진지였으며, 유럽인 30명을 포함해 총 170명으로 구성된 정예 중대가 이곳을 방어하고 있었습니다. 또한 랑선(Lang Son)과 나참(Na Cham)과 전화로 연결되어 있었고, 무선 통신 설비도 갖춘 잘 조직된 거점이었습니다.

9일 밤, 포격과 함께 시작된 공격

9일 낮, 일본군 병력이 눈에 띄게 증가하고 전날 경보가 울린 상황에서 수리에(Soulié) 대대장은 요새의 경비를 근무 부대에 맡기고 나머지 인원은 막사에 대기하도록 했습니다. 그러나 밤 9시경 격렬한 포격과 함께 공격이 시작되었고, 곧이어 감행된 첫 번째 적의 돌격은 수비대의 저항으로 격퇴되었습니다.

밤사이 일본군 일부가 요새 안으로 잠입하는 데 성공했지만, 수비대가 과감히 진지 밖으로 돌출하여 반격하면서 이들을 몰아내는 데 성공했습니다. 다만 이 과정에서 수리에 지휘관이 전사했습니다. 10일 낮에는 일본군이 일단 물러났지만, 교란 사격을 통해 수비대를 계속 압박했습니다. 그리고 밤이 되자 공격자들은 다시 공세에 나섰으나 막대한 손실을 입은 채 격퇴되었습니다. 11일 아침, 일본군이 제안한 항복 권고는 아노스(Annosse) 대위에 의해 단호히 거부되었습니다.

밤새 이어진 공방전과 탄약 고갈

그러나 11일 밤부터 12일 새벽까지 돌격은 멈추지 않았습니다. 수비대의 저항은 점차 약해졌고, 상당수의 무기가 일본군의 집중 포격으로 파괴되었습니다. 마침내 새벽 무렵 적은 요새 위에 발판을 확보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더 이상 버틸 탄약이 남아 있지 않자, 아노스 대위는 추가 희생을 막기 위해 요새를 넘겨주기로 결정합니다.

칭찬 뒤에 숨겨진 배신, 그리고 참수형

그러나 그들을 기다린 것은 포로로서의 예우가 아니었습니다. 아노스 대위와 그의 병사들은 공격을 지휘한 일본군 장군으로부터 공을 인정받는 듯한 축하를 받았지만, 곧이어 생존자 약 50명과 함께 처형당했습니다. 그들은 옷을 벗기운 채 피동 방어용 참호 가장자리로 끌려가 무릎을 꿇게 된 뒤 참수되었고, 부상자들은 총검으로 잔인하게 마무리되었습니다. 승전의 축하 연설 직후 벌어진 이 만행은 전쟁 범죄의 극단적인 사례로 기록되고 있습니다.

집단 매장지에서 살아남은 세 사람

그럼에도 이 비극 속에는 기적적인 생존자들이 있었습니다. 크롱(Cron) 이병과 두 명의 식민지 보병, 모두 세 사람이 집단 매장지에서 기어 나오는 데 성공한 것입니다. 세 사람 모두 중상을 입은 상태였지만, 현지 주민들의 도움으로 프랑스 분견대에 도달할 수 있었습니다. 크롱 이병은 이후 중국 땅에 무사히 도착했으며, 두 명의 보병은 각각 고향 마을로 돌아가 생을 이어갔다고 전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