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사

멸망과 추방의 위기 속에서도 살아남은 '왼손잡이 부족' 베냐민, 훗날 이름은 이스라엘

오늘날에는 흔한 일이지만, 고대 사회에서 왼손잡이로 사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거의 모든 문명은 오른손을 선호하는 편견을 공유해 왔습니다. 실제로 오른쪽은 좋은 일, 의식, 음식, 신성, 치유와 연결된 반면, 왼쪽은 저주, 모욕, 재앙 등 모든 부정적인 것과 묶여 다뤄졌습니다.

합리주의자로 불리는 플라톤조차 오른쪽을 선(善)으로, 왼쪽을 악(惡)으로 자주 연결했습니다. 그보다 앞선 피타고라스는 열 가지 근본 원리를 대립하는 짝으로 나열하면서, 오른쪽에 남성성·빛·선함을, 왼쪽에 여성성·어둠·악을 배치했습니다.

그럼에도 고대 문헌 곳곳에는 왼손잡이 전사들의 모습이 등장합니다. 호메로스의 『일리아스』(XXI, 164-168)에는 양손에 하나씩 든 두 개의 창을 아킬레스에게 동시에 던지는 아스테로페우스가 나옵니다. 강의 신 아크시오스의 후손인 양손잡이 파이오니아 영웅이었던 그는 결국 아킬레스의 손에 쓰러집니다.

멸망과 추방의 위기 속에서도 살아남은  왼손잡이 부족  베냐민, 훗날 이름은 이스라엘

그러나 전장에서 왼손잡이는 독특한 강점을 발휘했습니다. 오른손잡이 병사들은 상대 역시 오른손잡이일 것이라 예상하고 싸우는 데 익숙했기 때문에, 왼손잡이 전사는 처음부터 기습 효과를 누릴 수 있었습니다. 게다가 왼손잡이는 평소 오른손잡이 상대를 상정하고 훈련해 온 반면, 오른손잡이는 갑작스러운 상황에 즉석에서 적응해야 하는 부담을 안고 있었습니다.

이 원리를 건축 요소까지 활용한 사례도 있습니다. 영국 링컨 대성당의 나선 계단은 일반적인 방향과 반대로 설계되어 있는데, 아마도 가장 잘 알려진 예 중 하나일 것입니다. 덕분에 오른손잡이 공격자는 계단을 오르며 검을 효과적으로 휘두를 수 없었고, 왼손잡이 수비군은 훨씬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었습니다. 실제로 이 대성당의 방어는 왼손잡이들로만 구성된 스코틀랜드 일족에게 맡겨졌다고 전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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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로 시선을 돌리면, 성경에는 왼손잡이가 정확히 세 번 언급되는데 흥미롭게도 모든 경우 베냐민 지파와 관련되어 있습니다. 첫 번째는 왼손잡이인 이스라엘의 두 번째 사사 에훗이 모압 왕 에글론을 암살한 사건입니다(삿 3:12-30). 두 번째는 700명의 베냐민 정예병이 왼손으로 물매를 사용하며 그 치명적인 명중률을 과시했다는 기록입니다(삿 20:16). 세 번째는 헤브론에서 다윗을 지원하러 온 24명의 양손잡이 베냐민 전사에 대한 언급입니다(역대상 12:2).

2013년 연구자 보이드 시버스(Boyd Seevers)와 조애나 클라인(Joanna Klein)은 베냐민 사람들의 왼손잡이·양손잡이 특성이 타고난 것인지, 아니면 학습된 것인지를 분석했습니다. 그들의 결론은 두 가지 요소가 모두 작용했다는 것이었습니다.

베냐민 족속은 유전적으로 그런 특성을 지녔을 가능성이 높지만, 실제 전투에서 전략적 우위로 이어지려면 부족 내부의 훈련을 통해 이러한 특성을 의도적으로 장려해야 했을 것입니다.

시버스와 클라인에 따르면, 성서의 기록자들이 베냐민 사람들의 독특함을 굳이 기록으로 남긴 것은 그들이 스스로를 베냐민이라 불렀다는 사실이 당대 사람들에게 얼마나 기묘하고 이상하게 느껴졌기 때문일 수 있습니다. '베냐민'은 문자 그대로 오른손의 아들, 즉 '오른손잡이'를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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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이러한 전투적 강점에도 불구하고 베냐민 지파는 기브아 전투(기원전 1200년~1000년 사이)에서 어린이와 여성을 포함해 다른 이스라엘 지파들에 의해 사실상 전멸당합니다. 약 600명만이 살아남아 4개월 동안 동굴에 숨어 지내야 했습니다.

이후 지파들은 베냐민 족속이 영원히 사라질까 두려워하여 그들에게 새 아내를 주기로 허락했습니다. 그러나 어떤 여성도 베냐민 남성과 결혼하려 하지 않았고, 결국 논란이 될 만한 결정이 내려집니다. 마길 지파에서 베냐민의 운명을 슬퍼하지 않은 남자 약 400명을 없애고, 그들의 미망인들을 베냐민 족속에게 넘겨준 것입니다. 이렇게 해서 베냐민 지파는 이후 가장 작은 지파가 되었음에도 명맥을 이어갈 수 있었습니다(현대에 이 용어가 소수 집단과 연관 지어 쓰이는 연유이기도 합니다).

시간이 흘러 기원전 930년경 이스라엘 왕국이 분열된 후, 베냐민 지파는 유다 지파와 합류하여 새로운 왕국을 세웠습니다. 그들은 앗수르에 의해 이스라엘이 멸망당할 때에도 살아남아 바빌론으로 끌려가는 유수기를 견뎌냈습니다. 포로 생활이 끝나자 베냐민 지파와 유다 지파 사이의 구별은 사라졌고, 두 지파는 하나의 새로운 정체성, 바로 '이스라엘'로 통합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