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세 기사가 창을 겨누고 맞서는 토너먼트 장면은 문학과 영화 덕분에 누구에게나 익숙합니다. 그러나 이런 형태의 경기와 규칙이 중세에 처음 만들어진 것은 아닙니다. 사실 그리스의 영향 아래, 로마 기병대는 이와 흡사한 훈련을 이미 오래전부터 실시해 왔습니다.
그 이름은 히피카 짐나시아(Hippika Gymnasia). 그리스어 ἱππικὰ γυμνάσια(기마 훈련)에서 유래한 말로, 중세 토너먼트처럼 화려한 구경거리와 기술 시연이라는 두 가지 요소를 모두 갖추고 있었습니다.
기수들은 전투에서 쓸 기술을 연습하고, 때로는 까다로운 기동까지 선보이며 동료와 적 모두에게 강렬한 인상을 남겼습니다.
로마 정예 기병대는 집중적인 훈련이 필요한 복잡한 기동을 수행해야 했습니다. 이들은 주로 보조 부대(equites alares) 소속으로, 갈리아인·알레만니인·이베리아인·트라키아인 출신이었습니다. 타고난 기마 전투의 숙련도와 경험이 뛰어났기 때문에, 일반 보조군 기병(equites cohortales)보다 더 높은 급여를 받았습니다.
장비도 인상적이었습니다. 보병용과 비슷하지만 방어력이 한층 뛰어난 사슬갑옷과 투구를 착용했고, 창과 활, 그리고 검(spatha)을 휴대했습니다. spatha는 gladius보다 긴 검으로, 말 위에서의 전투를 위해 설계되었습니다. 여기에 타원형 또는 육각형 방패를 갖췄습니다.
기병의 역할은 그리스 출신 역사가 플라비우스 아리아누스(86~175년경)의 저서 Ars Tactica(전술론)에 상세히 기록되어 있는데, 여기에는 히피카 짐나시아 운동 역시 자세히 묘사되어 있습니다. 바이티카 집정관이자 카파도키아 총독, 아르메니아 국경 군단 사령관을 지낸 아리아누스는 서기 135년 알란족의 침공을 격퇴하며 뛰어난 전술 능력을 입증한 인물입니다.
히피카 짐나시아 참가자들은 갑옷 위에 화려한 붉은색 또는 보라색 킴메르식 로브를 걸치고, 은색이나 금색 가면이 달린 투구에 긴 깃털을 꽂았으며, 달릴 때 펄럭이는 밝은 색 천 꼬리를 단 스키타이식 깃발을 말에 달았습니다. 모두 사람들의 시선을 사로잡기 위해서였습니다.
고고학 발굴을 통해서도 이런 '스포츠 장비'가 다수 출토되었습니다. 다양한 합금과 금속으로 만든 갑옷, 투구, 가면 등은 거의 예외 없이 전쟁을 상징하는 신화 속 인물의 부조와 조각으로 장식되어 있었습니다.
가면 투구는 가장 독특하고 흥미로운 요소 중 하나입니다. 첫째, 남성형과 여성형이 있었다는 점입니다. 후자는 머리띠·보석·리본·독특한 헤어스타일 같은 요소가 특징인데, 경기에서 아마존 역할을 맡은 그리스인을 구분하는 데 사용되었습니다. 둘째, 제국 동부 속주가 원산지로 추정되지만 정확한 기원은 불확실하다는 점입니다.
이 가면 투구는 실제 전투에서도 사용되었습니다. 서기 9년 토이토부르크 숲 전투에서 세 개 로마 군단이 궤멸당했던 현장에서 발견된 것이 대표적이며, 시리아 두라 유로포스(Dura Europos) 유적에서도 서기 257년 로마군이 참패한 끔찍한 페르시아 포위전 현장에서 말 갑옷과 함께 출토되었습니다. 이는 아리아누스의 기록과도 일치합니다.
히피카 짐나시아에서 무기를 사용하기는 했지만 치명적이지는 않았습니다. 한 팀이 공격하고 다른 팀이 수비하며, 수비 쪽이 상대의 화살을 몸으로 받아내는 일종의 시범 행사였기 때문입니다.
또 다른 일반적인 훈련은 적을 추격하면서도 대열을 흩트리지 않고 재편성하는 것이었습니다.
페트리누스(petrinus)와 툴루테곤(tulutegon), 그리고 xynema — 켈트족 특유의 두 가지 기동으로, 로마 군대 안에서도 이름이 그대로 남은 갈리아 군사 용어에서 온 testudo(거북 진형) — 를 마친 뒤, 팀은 북부 히스파니아 사람들의 유명한 작전인 Cantabricus densus(Cantabricus impetus 또는 Cantabricus circulus라고도 불림)를 선보였습니다. 투척 무기의 원거리 운용과 돌진을 결합한 전술이었습니다.
에두아르도 페랄타 라브라도르(Eduardo Peralta Labrador)가 『로마군의 칸타브리아 보조병과 로마 기병의 기동』에서 설명했듯이, 칸타브리아 돌격(Cantabria charge)은 이중 회전 동작이 실행되는 특수한 형태의 돌격이었습니다. 가장 어려운 것은 왼쪽으로 선회하는 것이었습니다. 말은 이동하면서 앞다리를 교차해야 했고, 기수는 왼손으로 방패를 계속 쥔 채 적에게 노출된 우측면을 보호하려 방패를 오른쪽으로 밀어야 했습니다. 게다가 오른손으로 투창을 던지고, 자신에게 날아드는 투창까지 막아내야 했죠. 그래서 경험이 풍부한 소수의 기수만이 이 동작을 해낼 수 있었습니다. 히피카 짐나시아의 이 운동은 원형 진행, 기수의 방패 회전, 창 던지기가 완벽하게 동기화되어야만 가능했습니다.
실전에서 기병들은 칸타브리아 돌격을 단일 종열로 적 보병을 향해 속보로 접근하며 시작했습니다. 몇 걸음 거리에 다다르면 투르마(turma, 기병 분대)는 우측으로 방향을 틀어 방패로 보호되는 좌측면을 드러내며 수많은 창을 발사했습니다. 기병들은 적진이 공격으로 혼란에 빠질 때까지 계속 우회전하며 적진을 반복해서 통과했습니다.
이 모든 훈련의 목적은 당연히 기병 훈련이었지만, 피지배 민족의 고위 인사들에게 보여주는 인상적인 구경거리라는 목적도 있었습니다. 기병들은 완전무장한 채 말의 양쪽에서 타는 법, 말이 질주하는 동안 타는 법, 무릎과 다리만으로 말을 조종하는 법을 배웠습니다. 히피카 짐나시아의 총괄 책임자는 캠피도터(campidoctor)라 불렸는데(엘 시드 로드리고 디아스 데 비바르의 별명 '캄페아도르(campéador)'도 여기서 유래), 콤모두스 황제 치세 히스파니아에서 제7게미나 군단(Legio VII Gemina) 백부장 티투스 아우렐리우스 데키무스 같은 이름도 전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