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사

흑사병으로 죽은 이를 돌보고 장사한 사람은 누구였을까? 중세 알렉시안 형제회의 이야기

종교 기관의 세계는 겉에서 보기보다 훨씬 복잡합니다. 일반적으로 모든 성직자는 정규 성직자(수도원 규율에 따르는 성직자)와 세속 성직자(독립된 사제와 부제)로 구분되지만, 실제로는 각기 다양한 유형의 기관으로 더 세분화됩니다. 그중 대표적인 두 갈래가 수도회와 회중이며, 후자의 구성원은 성직자일 수도 있고 평신도일 수도 있습니다. 이 글에서는 평신도 회중에 초점을 맞추어, 그중에서도 셀라이트(Celite), 즉 알렉시안 형제회(Alexian Brothers)라는 특별한 단체를 살펴봅니다. 이들의 활동 분야가 무척 독특했기 때문입니다.

평신도 회중의 구성원들은 엄숙한 서약이 아니라 단순 서약만 했기 때문에 성직자가 아니었습니다. 이들은 주로 교육(교리 교육)이나 취약 계층 보호에 힘을 쏟았습니다. 고아, 병든 가난한 이, 죄수가 대표적입니다. 그런데 셀라이트 형제회가 돌본 대상은 한층 극단적이었습니다. 접촉만으로도 목숨을 잃을 수 있는 환자, 즉 전염병 — 특히 페스트 — 에 걸린 이들이 바로 그 대상이었습니다.

수백 년 전 전염병이 창궐했을 때 인류가 할 수 있었던 일은 감염자를 격리하는 것 외에는 거의 없었다는 점을 먼저 짚어둘 필요가 있습니다. 사망률이 너무 높아 감염의 사슬이 끊길 때까지, 곧 병이 저절로 사그라들기를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그 사이 죽어가는 이들은 돌봄에서 방치된 채 집에 유폐되거나 도시 경계 밖으로 내몰렸습니다.

흑사병으로 죽은 이를 돌보고 장사한 사람은 누구였을까? 중세 알렉시안 형제회의 이야기

바로 이러한 맥락에서 흑사병은 유럽 중세사의 결정적 국면 중 하나로 기록됩니다. 오늘날 선(腺)페스트로 확인되는 이 질병은 예르시니아 페스티스(Yersinia pestis)균이 원인이었습니다. 쥐에게 기생하던 벼룩에 물려 전파된 이 병은 14세기 중국발 무역로를 타고 들어와 이탈리아에서 처음 나타났습니다. 최악의 시기는 1346년부터 1361년까지 약 20년간 이어졌으며, 최소한 인구의 3분의 1이 목숨을 잃었습니다(일부 학자는 3분의 2까지 주장합니다). 이는 대략 5천만~8천만 구의 시신에 해당하는 충격적인 수치입니다.

이처럼 방대한 사망자는 시신 처리라는 심각한 문제를 낳았습니다. 아무도 시신에 다가가려 하지 않았고, 살아 있는 환자의 경우에는 상황이 더욱 참혹했습니다. 이 공백을 메우기 위해 여러 종교 조직과 기관이 설립되었는데, 당시 이웃을 돕고 자선을 실천하게 만든 원동력은 바로 신앙이었습니다.

예컨대 톨레도 자선 형제단은 이름 그대로 11세기부터 수많은 병원을 세우며 가진 것 없는 이웃을 위한 활발한 활동을 벌였습니다. 의료 지원, 굶주린 이들에게 식량 제공, 고아와 과부 부양, 죄수의 몸값 지급까지 그 범위가 넓었습니다. 흥미롭게도 회원 대부분이 귀족 출신이라는 점은 꽤나 역설적입니다.

이 형제단의 활동 중 하나는 셀라이트 형제회와 겹치는데, 바로 특수한 상황에서 죽은 이들의 매장을 담당한 일입니다. 신분을 확인할 수 없는 익사자, 처형된 죄수, 살해된 창녀, 돌봐줄 이 없는 병자 등 — 어떤 이유로든 정상적으로 장례를 치를 수 없는 모든 이가 그 대상이었습니다.

동시에 이들은 영혼을 위한 미사 봉헌이라는 중요한 임무도 수행했습니다. 언뜻 사소해 보이지만, 영적인 차원을 넘어 현실적으로는 미사와 장례 업무에 대한 보수를 지불해야 했고, 이들을 위해 수집한 구호품의 일부가 바로 이곳에 쓰였습니다.

'셀라이트(Celites)'라는 이름은 라틴어 cella(이들이 생활한 작은 방, 즉 감방을 뜻함)에서 파생됩니다. 이들은 수호성인 성 알레시오(San Alejo)를 따라 알렉시안(Alexians)으로도, 창립자 메키오(Meccio)의 이름을 딴 메다뇨스(medaños)로도 불렸습니다. 1460년에 시작되어 1476년 교황 식스토 4세의 재가로 공식 승인되었지만, 사실상 그보다 최소 100년 전부터 유명한 비긴(Beguine)의 남성판 격인 베가드(Beghard) 운동의 한 갈래로 존재해 왔습니다.

이들은 평신도였지만 성 어거스틴의 규칙에 따라 생활했습니다. 브라반트(플랑드르)에서 첫걸음을 내디딘 뒤 중부 유럽 전역으로 확산되었습니다. 장례식에서 부르는 찬송가 때문에 롤라드파 등 다른 이단과 혼동되는 일이 잦았고, 그래서 교황 그레고리오 11세가 이들을 보호하기 위한 규정을 마련해야 했습니다.

오늘날 셀라이트 형제회는 독일, 벨기에, 영국, 미국에 활동을 한정한 채 여전히 존재합니다. 회원 다수가 의료·건강 관련 직종에 종사하며 비영리 병원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그곳에는 더 이상 흑사병 환자는 없지만, 에이즈, 알코올 중독, 약물 중독, 정신질환, 노인성 치매, 노숙 같은 현대의 한계 상황에 놓인 환자들이 있습니다. 전통적으로 이들의 돌봄이 필요했던 바로 그 영역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