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해상초계기의 세대교체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마틴 마리너(Martin Mariner)와 쇼트 선덜랜드(Short Sunderland) 같은 수상기는 광활한 바다 위에서 초계 임무를 수행하며 해상 감시의 중추 역할을 담당했다. 전쟁이 끝난 후 이들의 자리는 해군의 신형 기체인 록히드 P2V 넵튠(Lockheed P2V Neptune)이 물려받았다.
P2V 넵튠은 수상기는 아니었지만, 허드슨(Hudson)이나 리버레이터(Liberator)처럼 육상 기지에서 운용되던 초계기에 비해 상당한 발전을 이룬 기종이었다. 속도가 더 빨랐을 뿐만 아니라, 성능이 한층 향상된 레이더와 대잠수함 장비를 갖추고 있었다.
전략 공수 능력의 비약적 발전
1945년부터 한국전쟁 발발까지, 두 가지 분야의 항공기에서 눈에 띄는 개량이 이루어졌다. 그중 하나가 전략 수송 분야였다. 베를린 공수작전이 결정적인 계기가 되면서 전략 수송기는 놀라운 속도로 진화했다. 대형 기체가 잇달아 실전에 배치되었다.
보잉 C-97은 시속 480km로 태평양을 횡단하면서 병사 134명 또는 20톤 이상의 화물을 실어 나를 수 있었다. 더글러스 C-124 글로브마스터(Globemaster)는 병력 200명은 물론, 그동안 공중 운송이 불가능했던 차량까지 싣고 날 수 있었다.
헬리콥터, 새로운 전장의 주인공으로
헬리콥터의 발전 역시 눈부셨다. 1945년 당시만 해도 실험 단계에 머물러 있던 이 기체는 1950년에는 다른 어떤 항공기도 수행할 수 없던 임무를 감당하는 실전 무기로 거듭났다. 헬리콥터는 한국전쟁이라는 전쟁 양상과 완벽하게 맞아떨어졌다. 어떤 지형에서든 전선 지역의 전술 수송 임무를 수행했고, 이후에는 바다든 적진 한복판이든 격추된 조종사를 구출하는 임무에 특화되었다.
인천상륙작전과 유엔군의 전면 반격
1950년 가을, 유엔군은 부산에서 막대한 항공 지원을 받으며 전면적인 반격을 개시했다. 동시에 해병대가 인천에 상륙해 북한군의 배후를 찔렀고, 이로써 집게 작전의 두 번째 턱이 완성되었다. 이번에는 공산군의 완패였다.
한편 B-29 폭격기들은 적의 공업 거점, 그리고 도시들을 상대로 전략 폭격을 감행했다. 이토록 효과적인 폭격이 가능했던 이유는 — 당시 아무도 의심하지 않았지만 — 하늘에서 아무런 저항을 받지 않았기 때문이다.
미그-15의 등장, 하늘의 판도가 바뀌다
그러나 때는 바뀌었다. 유엔군은 조용히 압록강, 즉 한반도의 북쪽 국경을 건너온 중국군이 설치한 함정을 향해 나아가고 있었다. 하늘에도 새로운 기체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특히 소련이 중국에 넘겨준 후퇴익 전투기 미그-15(MiG-15)가 그것이었다. 1947년부터 시험 비행을 거친 이 전투기는 빠르게 대량 생산되어 실전 배치되었다.
1950년 11월 1일, 미그-15가 한국 상공에 나타났다. 공중전의 양상은 완전히 뒤바뀌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