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사

제3차 십자군 원정 도중 우연히 키프로스를 정복하게 된 사자심왕 리처드의 이야기

키프로스 제2의 도시, 라마솔

라마솔(Limassol)은 키프로스의 수도 니코시아에 이어 두 번째로 큰 도시로, 섬의 남부 해안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기원후 5세기경 '네아폴리스(Neapolis)'라는 이름으로 세워졌으며, 그 기반이 된 더 오래된 정착지는 일부 학자들은 기원전 8세기까지 거슬러 올라간다고 보고, 다른 이들은 기원전 4세기부터라고 주장합니다.

고대부터 번영을 누린 아마투스(Amathus)와 쿠리온(Kourion)이라는 두 도시 사이에 끼어 있었던 탓에, 라마솔은 중세 초기 수백 년 동안 크게 주목받지 못했습니다. 그러다 우연한 역사적 사건 하나가 이 도시를 예상치 못한 무대로 밀어 올립니다.

폭풍우가 만든 역사의 전환점

1190년, 제3차 십자군 한가운데서 잉글랜드 왕 리처드 1세, 이른바 '사자심왕(Richard the Lionheart)'은 거의 100척에 달하는 함대와 17,000명의 군대를 이끌고 성지를 향해 항해를 시작했습니다.

제3차 십자군 원정 도중 우연히 키프로스를 정복하게 된 사자심왕 리처드의 이야기

이 원정에는 리처드와 다른 배를 탄 인물들도 있었습니다. 바로 그의 누이이자 시칠리아 왕비인 후아나(조안), 그리고 약혼녀인 나바라의 베렝가리아입니다. 베렝가리아는 비밀리에 리처드의 약혼자로 정해진 상태였으며, 시칠리아의 메시나에서 함대에 합류했습니다.

그런데 아크레로 향하던 함대가 폭풍우를 만나 키프로스로 피신하게 됩니다. 후아나와 베렝가리아의 배는 당시 섬 전체가 비잔틴(동로마) 제국의 지배 아래 있던 라마솔 항구에 들어섰습니다.

제3차 십자군 원정 도중 우연히 키프로스를 정복하게 된 사자심왕 리처드의 이야기

두 가지 기록: 환영과 유폐설

한 기록에 따르면, 총독 이삭 콤네노스(Isaac Komnenos)는 두 여인에게 상륙을 권했지만, 그들은 붙잡힐 것을 우려해 제안을 거절했다고 합니다. 이삭이 신선한 물 제공마저 거부하자, 폭풍이 지나간 뒤 두 사람은 항해를 계속했습니다.

반면 또 다른 기록은 이삭이 두 왕비를 라마솔에 유폐시켰다고 전합니다. 폭풍으로 병력과 함께 섬의 다른 지점에 도착한 리처드는 이 소식을 접하자마자 라마솔로 향해 이삭에게 석방을 요청했습니다. 그러나 거절당하자 도시를 포위했고, 도주하는 이삭을 추격해 격파하고 생포하면서 결국 섬 전체를 손에 넣었습니다.

라마솔에서 열린 왕실 결혼식

1191년 5월 12일, 리처드와 베렝가리아는 라마솔에서 결혼식을 올렸습니다. 어떤 기록은 성 게오르기 예배당에서, 다른 기록은 바실리카 교회(아마도 대성당)에서 거행되었다고 전합니다. 흥미롭게도 이 교회 부지 위로 2년 뒤 라마솔 성이 세워졌는데, 이 성은 현재 중세 도시 박물관으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이 성은 예루살렘의 명예 왕이었던 기 드 뤼지냥(Guy de Lusignan)이 1193년에 세운 것으로, 오늘날에도 결혼식이 거행되었다고 전해지는 방을 직접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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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전기사단 매각과 뤼지냥 왕조의 시작

리처드는 키프로스를 오래 지니지 않았습니다. 그의 목표는 어디까지나 1187년 살라딘에게 빼앗긴 예루살렘을 탈환하는 것이었으므로, 같은 해인 1191년 키프로스를 성전기사단(템플 기사단)에 팔아넘깁니다.

그러나 성전기사단은 투자금을 회수하기 위해 과중한 세금을 걷다가 주민들의 전면적인 반발을 샀습니다. 키프로스인들이 리처드에게 호소하자, 그는 새로운 매수인으로 기 드 뤼지냥을 찾아냈습니다. 기는 섬을 인수하고 왕의 칭호를 받았습니다.

일부 기록에 따르면 기는 리처드와 베렝가리아의 결혼식에 참석했고, 심지어 이삭 콤네노스와의 전쟁에서 리처드와 함께 싸웠다고도 합니다. 어느 쪽이든, 리처드가 성지로 떠난 뒤 앞서 언급한 성의 건축을 명령한 것은 분명합니다. 현재 성의 외관 구조는 1590년 오스만 제국이 재건축한 것이지만, 안쪽에는 당시의 원래 방들이 그대로 남아 있습니다. 기는 1194년에 세상을 떠났지만, 뤼지냥 가문의 후손들은 1474년까지 키프로스를 통치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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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글랜드 땅을 밟지 못한 왕비, 베렝가리아

베렝가리아는 왕비가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평생 잉글랜드 땅을 밟아보지 못했습니다. 십자군이 진행되는 동안에는 아크레에서 리처드와 함께 지냈고, 이후 두 사람은 각자 유럽으로 돌아갔습니다. 리처드가 오스트리아 공작의 포로로 잡혀 있는 동안, 그녀는 푸아티에에 머무르며 몸값 마련을 도왔습니다.

1199년 샬루 공방전에서 리처드가 사망한 뒤, 프랑스 왕 필리프 2세 오귀스트는 그녀에게 르망 영지를 하사했고, 베렝가리아는 1230년 세상을 떠날 때까지 그곳에서 살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