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사

낙하산 병의 비 – 아른험 상공에 나타난 연합군 공수부대

낙하산 병의 비 – 아른험 상공에 나타난 연합군 공수부대

1944년 9월 17일 아침, 서부 전역의 하늘이 요동쳤다. 수천 대의 연합군 항공기가 낮게 깔리며 내뿜는 "그 거대한 굉음"이 지평선 너머에서 밀려온 것이다. 그러나 그 소리를 들은 독일 공수부대의 상징인 쿠르트 슈투덴트(Kurt Student) 장군조차, 그것이 어떤 위협인지 즉시 깨닫지는 못했다.

그 소리는 오히려 그에게 로테르담과 크레타에서 자신이 직접 낙하산 강하 작전을 지휘하던 시절을 떠올리게 했다. 참모장이 발코니로 다가왔을 때, 슈투덴트는 이렇게 중얼거릴 뿐이었다.
"아! 내가 지금 저만큼 강력한 수단을 손에 쥘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예언된 기동이었음에도, 믿지 않은 독일군

모델(Walter Model) 원수 역시 놀라움을 감출 수 없었다. 흥미롭게도 사흘 전, 그의 참모 장교 한 명은 연합군의 입장에 서서 독일 본토 진입 문제를 어떻게 풀 것인지 상상해 본 적이 있었다. 그는 아이젠하워(Eisenhower) 총사령관이 명령을 하달한다고 가정하고, 제2군이 마스(Meuse) 강을 도하해 뢰르몬트(Roermond)를 거쳐 루르(Ruhr) 공업지대로 진격하며, 리페(Lippe) 강 북쪽 뮌스터(Münster) 남부 일대에 대규모 낙하산 부대를 투입한다는 가상 명령서까지 작성해 두었다.

그러나 이 가설은 독일 장군들 사이에서 설득력을 얻지 못했다. 네덜란드 점령지 경찰 총감 라우터(Hanns Rauter) 장군이 "아른험(Arnhem) 지역에 공수부대가 착륙하는 것도 충분히 가능한 일"이라고 모델에게 의견을 냈을 때조차, 모델과 참모장 크렙스(Hans Krebs) 장군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들의 논리는 이랬다. 전술적 신중함으로 유명한 몽고메리(Montgomery)가, 안트베르펜(Antwerp) 항이 아직 연합군 손에 들어오지 않고 보급선이 그토록 길게 늘어선 상황에서, 귀중한 공수부대를 그렇게 위험한 작전에 내던질 리 없다는 것이었다. 게다가 아른험은 제1군 선봉부대와 너무 멀리 떨어져 있어, 그곳에 투하된 공수부대는 지상군이 도착하기도 전에 궤멸당할 위험이 크다는 판단이었다.

아페리티프를 집어던진 원수

하지만 현실은 논리보다 빨랐다. 서쪽 3킬로미터 남짓한 곳에 영국 낙하산 부대가 쏟아져 내린다는 사실을 확인하는 순간, 모델은 평소의 특유의 민첩함으로 움직였다. 그들을 반드시 격멸시키기 위한 모든 준비를 갖추기 위해서였다.

손에 들고 있던 아페리티프 잔을 내던진 그는 즉시 필요한 조치를 취해 사령부를 철수시켰고, 방으로 뛰어들어 허둥지둥 여행 가방을 챙겼다. 호텔 앞에서는 기사가 신경질적으로 클랙슨을 울리고 있었다. 그의 예를 따라 장교들도 재빨리 짐을 꾸려 길로 내달렸다. 다만 여러 서류 파일, 작전 계획서, 기밀 문서 등 상당한 분량의 물건들은 그 자리에 내팽개친 채였다.

자전거 위의 SS 지휘관

차량 행렬은 아른험 방면으로 몰아쳤다. 불과 1킬로미터도 채 지나지 않아, 그들은 최고 속도로 페달을 밟으며 아른험을 향해 달려가는 SS 지휘관 한 명과 마주쳤다.

"—어느 길로 가야 하오?"
선두 차량 앞좌석에서 모델이 외쳤다.
"—도이친험(Doetinchem) 가는 길로 가십시오!"
SS 지휘관도 같은 어조로 화답했다.

이날 시작된 작전이 바로 연합군의 마켓 가든 작전(Operation Market Garden), 역사상 최대 규모의 공수 작전이었다. 모델의 사령부는 영국 제1공수사단의 강하 지점에서 불과 몇 킬로미터 떨어진 오스터베크(Oosterbeek)의 호텔 타펠베르크에 자리하고 있었다. 운명의 아이러리인지, 독일군은 이 우연한 근접 덕분에 신속하게 대응할 수 있었고, 아른험의 다리를 건너는 데 실패한 연합군의 야심찬 계획은 결국 좌절하고 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