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사

유틀란트 해전 1916: 전투의 중심에서 결정된 해상 패권

석양 아래, 포격의 시작

속도 면에서 우위를 점한 독일 순양함들이 가장 먼저 적의 포화를 받았고, 순양함 뤼초(Lützow)는 이내 불길에 휩싸였습니다. 독일 함대는 일단 물러난 뒤 약 19,000야드 거리에서 다시 포문을 열었습니다. 그러나 시야는 점차 좁아졌고, 지는 해가 자신에게 불리하게 작용하고 있음을 깨달은 존 젤리코(Jellicoe) 제독은 함대를 서쪽으로 선회시켰습니다. 이어 그는 구축함과 순양함들에 어뢰 일제 사격을 명령했고, 함선들은 침로를 바꿔 어뢰를 발사한 뒤 남쪽으로 이탈했습니다.

이 결단은 독일 함대에 큰 타격을 입혔습니다. 어뢰들은 남쪽 열중대를 덮쳐 경순양함 엘빙(Elbing), 로스토크(Rostock), 바이스바덴(Wiesbaden)을 차례로 침몰시켰고, 프라우엔로프(Frauenlob)호는 승무원들의 손으로 자침되었습니다. 반면 근접전 과정에서 왕립해군 역시 블랙 프린스(Black Prince), 워리어(Warrior), 디펜스(Defense) 등 세 척의 순양함을 상실했습니다.

저녁 8시 35분, 결전의 막이 내리다

개전 이래 양측이 모두 갈구해 온 대결전은 마침내 종막을 고했습니다. 왕립해군은 창설 이래 가장 참담한 패배를 기록했습니다. 순양전함 라이온(Lion), 인데파티거블(Indefatigable), 퀸 메리(Queen Mary), 인빈시블(Invincible)과 순양함 블랙 프린스, 워리어, 디펜스를 모두 잃었기 때문입니다.

베를린의 발표에 따르면, 제5전열 소속 전함 말라야(Malaya), 바럼(Barham), 워스파이트(Warspite), 밸리언트(Valiant)는 독일 제국의 전리품으로 넘어갔습니다. 함장들은 약 2,000명에 달하는 승무원들과 함께 명예로운 대우를 보장받는 조건으로 자침하지 않기로 합의한 것으로 전해집니다. 데이비드 비티(Sir David Beatty) 제독은 바다 위에서 행방을 알 수 없게 되었고 전사한 것으로 추정되며, 후드(Hood) 제독은 인빈시블의 대폭발과 함께 생을 마감했습니다. 왕립해군의 손실은 사망자 6,500명에 달했고, 포로 또한 이와 맞먹는 규모였습니다.

해상 패권의 종언인가

당시 상황을 목격한 이들의 증언에 따르면, 독일의 정교한 포술과 노련한 지휘, 치밀한 해군 전략은 영국의 해상 우위를 사실상 분쇄했습니다. 이 전투는 대전(大戰)의 향방을 가르는 전환점이 될 가능성이 높다는 평가가 나옵니다. 다만 영국이 이 처참한 타격에서 사기를 회복할 수 있을지는 지금으로서는 단언하기 어렵습니다. 수많은 함선의 상실에 더해 비티, 후드, 에번토머스(Evan-Thomas) 제독의 전사는 대양을 지배해 온 전통에 대한 영국의 자신감에 깊은 금을 남겼습니다.

독일 항구 봉쇄도 위태롭다

설상가상으로, 영국이 독일 항구에 대한 해상 봉쇄를 계속 유지할 수 있을지도 의문시됩니다. 국제법에 대한 논란 많은 해석으로 정당화되어 온 이 봉쇄는 1914년부터 이어져 왔으나, 함대의 전력이 크게 약화된 지금 그 실효성은 심각하게 흔들리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