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사

보름스 의회(Diet of Worms): 마르틴 루터가 가톨릭 교회에 맞선 역사적 순간

보름스 의회(Diet of Worms): 마르틴 루터가 가톨릭 교회에 맞선 역사적 순간

By Demercino Junior

독일 남서부 라인란트팔츠주에 위치한 도시 보름스(Worms)는 백포도주 '리프라우밀히(Liebfraumilch)'의 산지이자 화학·금속 공업으로 유명한 곳이다. 그러나 이 도시를 역사에 영원히 각인시킨 것은 1521년 1월 28일 신성로마제국 황제 카를 5세가 소집한 회의였다. 바로 가톨릭 교회에 대한 죄로 마르틴 루터를 심판한 이 회의가 '보름스 의회(Diet of Worms)'다.

'디에트(Diet)'의 진짜 의미

흔히 '다이어트'로 알려진 diet라는 단어는 라틴어 '디아이타(díaita)', 즉 '삶의 방식'에서 유래했다. 사전에 따르면 이 단어는 두 가지 의미를 지닌다. 하나는 식이요법, 다른 하나는 정치적 또는 행정적 회의다. 여기서 주목할 것은 후자다. 즉 '보름스 의회'는 음식과 무관한, 제국 차원의 중대 회의를 뜻하는 용어인 것이다.

마르틴 루터, 교회에 맞서다

마르틴 루터(Martin Luther)는 독일 출신의 사제이자 신학 교수였다. 1517년, 그는 면죄부 판매 관행, 성경 접근의 독점, 근거 없는 종교적 관행 등을 격렬하게 비판하며 가톨릭 교회에 정면으로 맞섰다. 루터는 자신의 비판을 모두 모아 '95개조 반박문(The 95 Theses)'이라는 문서로 발표했고, 이것이 유명한 종교개혁(Protestant Reformation)의 시작이 되었다.

또한 루터는 성경을 라틴어에서 독일어로 번역하는 중요한 작업을 수행했다. 당시 성경은 라틴어로만 쓰여 있어 성직자들만 접근할 수 있었지만, 루터는 성경 읽기가 모든 사람의 몫이라고 확신했다.

교황의 요구와 루터의 거부

1520년, 교황 레오 10세는 분노하여 루터에게 주장을 철회하라는 문서를 보냈고, 거부 시 파문하겠다고 경고했다. 루터는 공개적인 장소에서 이 문서를 불태우며 응답했고, 독일은 정치적 위기에 휩싸였다. 결국 루터는 철회를 요구받는 처지에 놓였다.

역사적인 질문과 대답

보름스 의회에 도착한 루터는 자신의 저서들이 탁자 위에 진열된 앞에 서게 되었다. "이 책들이 당신의 저작인가?"라는 첫 질문에 그는 "그렇다"고 답했다. 이어 던져진 두 번째 질문이 핵심이었다. "저술된 내용에 동의하는가, 아니면 철회하고 싶은가?"

루터는 답변을 위해 하루의 시간을 요청했고, 24시간의 유예를 받았다. 다음 날 그는 역사에 남는 답변을 내놓았다.

"성경의 증언과 명백한 논거에 의해 반박되고 설득되지 않는 한(나는 교황도 공의회도 믿지 않는다. 그들이 자주 잘못을 저질러 왔으며 서로 모순됨은 분명하기 때문이다), 나는 내가 인용한 성경 말씀에 굴복한다. 나의 양심은 하나님의 말씀에 사로잡혀 있다. 나는 철회할 수 없고, 하지도 않겠다. 양심에 반하는 일을 하는 것은 안전하지도 현명하지도 않기 때문이다. 이것이 나의 입장이다. 나는 달리 할 수 없다. 하나님께서 나를 도우소서. 아멘!"

파문당했지만, 역사는 바뀌었다

루터는 사형 선고는 피했고(1546년 자연사로 생을 마감했다), 대신 파문되었다. 그러나 구원을 판매하는 면죄부와 성물 매매(시모니)에 대한 그의 비판은 가톨릭 교회의 기둥을 흔들었고, 교회가 더 인간적이고 덜 기만적인 방향으로 나아가는 계기를 만들었다. 나아가 그의 저항은 개신교(Protestant Church)의 탄생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며 서양 종교사의 큰 전환점을 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