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북미에서 이루어진 영국의 식민지화는 여러 측면에서 포르투갈이 아메리카 대륙에서 전개한 식민지화와 뚜렷하게 구분되는 양상을 보였습니다.
유럽의 해양 팽창과 영국의 진출
15세기는 해상 항해술이 비약적으로 발전한 시기였으며, 유럽 각국은 이를 경제적 팽창의 핵심 수단으로 활용했습니다. 포르투갈과 스페인이 가장 먼저 바다를 건너 새로운 땅과 귀금속을 찾아 나섰고, 그 결과 아메리카의 여러 지역이 식민지화되었습니다. 해양 원정의 성공에 고무된 다른 유럽 국가들 역시 수익성 있는 무역 관계를 약속하는 식민지 확보에 뛰어들었는데, 잉글랜드(영국)가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16세기 말, 새로운 영토 정복에 대한 야망을 품은 영국인들은 선박 건조와 중상주의 정책에 적극적으로 투자하여 왕국의 부를 축적하고자 했습니다. 이를 위해 국왕과 시민 계급(부르주아지)이 연합하여 해양 원정 자금을 조달하고 식민지화할 후보 지역을 물색하는 무역 회사들이 설립되었습니다.
최초의 식민 시도와 버지니아 식민지 건설
최초의 시도는 1584년부터 1587년 사이에 이루어졌습니다. 월터 롤리(Walter Raleigh) 경이 지휘한 원정대는 북미 영토 정복을 시도했으나, 영국의 침략에 맞서 저항하던 원주민들에게 격퇴당하며 실패로 돌아갔습니다. 그러나 1607년, 한 무역 회사가 마침내 원주민들을 굴복시키고 버지니아(Virginia) 식민지를 건설하는 데 성공했으며, 이곳은 영국이 최초로 지배한 북미 지역이 되었습니다.
버지니아 식민지에서 영국인들은 당시 유럽 시장에서 매우 높은 수익성을 자랑하던 담배 재배에 집중했습니다. 이후 식민 활동이 확장되면서 조지아, 노스캐롤라이나, 사우스캐롤라이나, 메릴랜드, 델라웨어 등 농산물 생산에 투자하기 위한 여러 지역이 추가로 정복되었습니다.
남부 식민지: 착취형 식민지화
생겨난 식민지들은 경제 구조와 인구 구성 모두에서 서로 다른 특징을 발전시켰습니다. 남부 지역에서는 착취형(exploitation) 식민지화가 전개되었습니다. 정착민들은 유럽으로 수출할 농산물의 상업화를 통해 이윤을 추구했으며, 이러한 방식은 본국에 부를 공급하는 것을 목적으로 삼고 노예 노동을 동원하는 등의 수단을 사용했던 포르투갈 식민지의 형태와 유사했습니다.
북부 식민지: 정착형 식민지화
반면 북부 지역의 뉴저지(New Jersey), 뉴욕(New York), 매사추세츠(Massachusetts) 등의 식민지에서는 정착형(settlement) 식민지화라 불리는 유형이 발전했습니다. 이 지역 정착민들의 목표는 단순한 자원 착취가 아니라 새로운 삶의 터전을 만드는 것이었습니다. 따라서 북부 식민지에는 영국 왕실의 직접적인 개입이 거의 없었는데, 이는 해당 지역이 농업에 불리한 기후 조건을 지녀 이윤에 목마른 상인들의 주목을 끌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북부 식민지의 정착 과정 또한 독특했습니다. 이 지역 정착민의 상당수는 종교 박해를 피해 온 사람들이었기 때문입니다. 가톨릭 교회가 신교도(프로테스탄트)들을 박해하면서 많은 이들이 종교적 관용이 허용되는 새로운 세계를 찾아 이곳으로 이주했습니다. 1620년에는 청교도(Puritan) 집단이 플리머스(Plymouth)를 건설하여 이 지역 인구 형성에 크게 기여했습니다.
포르투갈 식민지화와의 비교
영국의 식민지화는 여러 방면에서 포르투갈령 아메리카의 식민지화와 차이를 보였습니다. 영국 남부 식민지에서는 내수 시장을 겨냥한 경제 발전을 추구하는 사회가 형성된 반면, 포르투갈 식민지는 외부 시장에서 거래할 부를 착취하는 데 초점을 맞춘 상업적 체제를 구축했습니다. 그 결과 영국 남부 식민지들은 본국으로부터 더 큰 정치적·경제적 자율성을 확보할 수 있었던 반면, 포르투갈령 아메리카 식민지는 시간이 갈수록 정복국에 대한 경제적 종속이 심화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