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파시즘(Anti-fascism)은 파시즘과 극우 운동의 확산에 맞서기 위해 일부 집단이 채택하는 행동 방식을 말합니다. 이들은 주로 파시스트와의 공개적인 대결을 통해 활동하며, 그 기원은 1920년대 이탈리아의 파시즘과 독일의 나치즘에 맞선 투쟁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반파시즘은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반파시즘은 반드시 하나의 독립된 정치 운동으로 보기보다는, 특정 사회 운동이 채택하는 행동 형식에 가깝습니다. 그 기본 이념은 파시즘과 모든 극우 정치 세력에 맞서 투쟁하는 것입니다. 오늘날 이러한 방식의 활동가들은 '안티파(Antifa)'라는 이름으로도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안티파는 파시즘과 극세력에 맞서 직접 행동(direct action)을 취합니다. 즉, 구성원들이 모여 더 나은 사회를 위한 방안을 함께 제안하고, 파시즘에 대항하는 최선의 전략을 논의하는 식입니다. 이러한 반파시스트 동원은 대체로 주류 정당의 개입 없이 자발적으로 이루어집니다.
반파시즘은 사회주의, 공산주의, 아나키즘 등 좌파 운동에서 뿌리내린 사상입니다. 진보적 성향을 가진 사람들이 힘을 모아 1920~1930년대 유럽에서 파시즘과 나치즘의 확산을 막고자 했으며, 이러한 이념적 뿌리는 현대 반파시즘에도 그대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오늘날 반파시즘의 투쟁 목표는 신(新)파시즘, 극우, 그리고 상호 연결된 백인 우월주의 단체들의 활동에 맞서는 것입니다. 여기에 이민자 보호, 반인종주의 투쟁, 동성애 혐오와 남성 우월주의에 대한 대결, 그리고 자본주의 비판 역시 현대 반파시즘의 공통된 특징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반파시즘의 등장 배경
반파시즘은 1920년대와 1930년대에 걸쳐 형성되었습니다. 당시 이탈리아와 독일에서 각각 파시즘과 나치즘이 급성장했고, 이는 유럽 다른 지역에서도 유사 운동의 출현을 부추겼습니다. 초기 반파시즘 활동은 본질적으로 나치·파시스트 폭력에 대한 자위적(self-defense) 운동이었습니다.
이 두 시기는 극우 운동이 대거 등장한 시기로, 그 중심에는 파시즘과 나치즘이 있었습니다. 이들 운동은 강한 군국주의적 성격을 띠었고, 특히 사회주의자·공산주의자·아나키스트 같은 정적들을 폭력으로 억눌렀습니다.
이러한 극우 집단의 부상은 제1차 세계대전 이후 나타났습니다. 전쟁의 결과물인 분노와 경제 위기, 정치적 혼란, 불확실성은 유럽 전역에 만연했고, 이는 초국수주의·군국주의·보수주의·반유대주의 이념을 내세우는 운동에게 절호의 기회가 되었습니다.
베니토 무솔리니와 아돌프 히틀러는 이 물결을 능숙하게 타며 큰 인기를 얻었습니다. 무솔리니는 1919년 Fascio di Combattimento(전투 파시스트단)라는 정치 운동을 창설해 1921년 정당으로 발전시켰고, 히틀러는 1919년 독일 국가사회주의 노동자당(나치당)의 초기 당원이 되어 1920년대에 당수로 부상했습니다.
이탈리아에서는 파시스트들이 squadristi, 즉 검은 셔츠단(camicie nere)이라 불리는 준군사 조직을 꾸렸습니다. 이들은 파업 노동자, 사회주의자, 공산주의자들을 습격했으며, 이탈리아 사회주의 약화의 직접적인 원인이 되었습니다. 경제 엘리트들이 가장 두려워하던 세력이 사회주의자였기 때문에, 검은 셔츠단의 폭력은 이들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독일에서는 Sturmabteilung(SA), 이른바 돌격대(storm troopers)가 같은 역할을 수행했습니다. 독일에서 이들의 폭력은 나치가 가장 박해한 집단 중 하나인 유대인에게도 집중되었습니다. 파시스트의 폭력은 곧 반파시즘의 반격을 낳았지만, 사실 그 이전에도 유럽에는 반파시즘의 선례가 존재했습니다.
그 선례는 프랑스에서 일어났습니다. 유대인 출신 군인 알프레드 드레퓌스 대위는 프랑스 군사 기밀을 독일에 넘긴 혐의로 억울하게 기소되었는데, 이 사건은 프랑스 사회에 강한 반유대주의를 촉발했습니다. 이에 진보 진영이 결집해 반유대주의 단체들의 움직임에 맞섰고, 이 프랑스의 활동은 '원형(原型) 반파시즘' 경험으로 평가받습니다.
유럽의 반파시즘 운동
1920~1930년대에 반파시즘의 강력한 저항은 당연히 이탈리아와 독일에서 두드러졌지만, 영국과 스페인 같은 곳에서도 유사한 반응이 나타났습니다. 앞서 살펴본 대로, 이는 대체로 파시스트 폭력이 특정 집단을 겨냥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자위적 성격을 띠었습니다.
이탈리아의 경우, 파시즘에 대한 대응은 아나키스트 아르고 세콘다리(Argo Secondari)가 이끈 Arditi del Popolo(인민의 돌격대)를 통해 이루어졌습니다. 아르디티즘(arditismo)으로도 알려진 이 반파시스트 조직은 이탈리아의 주요 좌파 정당과 연계하지 않고, 수천 명의 자원봉사자를 동원해 squadristi에 맞설 준비를 갖췄습니다.
그러나 아르디티즘은 오래 지속되지 못했습니다. 이탈리아에서 파시즘이 빠르게 성장해 정치적 힘을 얻었고, 반파시스트들의 조직적 대응이 너무 늦게 시작되어 이탈리아 사회주의가 크게 약화된 시점에야 이루어졌기 때문입니다. 1922년 무솔리니가 집권하면서 아르디티즘은 힘을 잃었습니다.
독일의 경우, 반파시즘 저항은 공산당과 사회민주당이라는 주요 좌파 정당과 직접 연결되어 있었습니다. 독일의 문제는 돌격대였는데, 이들은 세력이 커질수록 행동이 거칠어져 공산주의자와 사회주의자의 거점까지 침입하기 시작했습니다.
1929년 이후 독일 좌파가 결집하면서 적색전선전사동맹(Roter Frontkämpferbund), 철의 전선(Eiserne Front) 등 여러 반파시스트 단체가 등장했습니다. 그중 가장 유명한 것은 독일 공산당이 직접 창설한 반파시스트 행동(Anti-Fascist Action)입니다. 이 단체는 좌파 전체를 규합해 나치즘에 맞서는 통일 전선을 구축하고자 했으며, 이들의 상징은 현대 반파시즘 운동의 영감이 되었습니다.
1933년 나치가 정권을 잡으면서 독일의 반파시스트 저항은 크게 약화되었습니다. 히틀러는 게슈타포의 모든 역량을 반파시스트 탄압에 동원했고, 그들은 그 해 말까지 이미 크게 위축된 상태였습니다. 그럼에도 독일의 반파시즘 저항은 의미 있는 것이었는데, 돌격대와의 거리 투쟁에서 파시스트 진영 수백 명이 사망할 정도로 치열했기 때문입니다.
현대의 반파시즘
반파시즘은 제2차 세계대전에서 파시스트와 나치가 패배한 뒤에도 소멸하지 않았습니다. 파시즘이 약화되었음에도 일부 극단주의 단체 속에 명맥을 유지했고, 이러한 파시스트 단체의 존재는 유럽을 비롯한 세계 곳곳에서 반파시스트들의 활동을 이어가게 만들었습니다.
먼저 반파시즘은 투쟁 대상을 파시즘에 국한하지 않고 모든 극우 단체로 확장했습니다. 또한 새로운 강령이 추가되어, 오늘날 반파시즘은 다음을 옹호하는 정치적 행동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 반인종주의(anti-racism)
- 반자본주의(anti-capitalism)
- 남성 우월주의와 동성애 혐오에 대한 투쟁
반파시스트들은 여전히 좌파 이념에 동기를 부여받는 집단으로, 정치·사회 조직의 한 형태로서 사회적 자율 관리(self-management)를 강하게 지지합니다. 이들은 세계 여러 지역에서 활동하며 공개적 대결과 공간 장악을 파시즘에 맞서는 주요 투쟁 방식으로 삼아 왔습니다.
다만 공개적 대결은 행동 전략으로서 힘을 잃어가는 추세입니다. 많은 극우 단체가 극단주의적·권위주의적 성향을 교묘히 감출 수 있는 온건한 공개 태세를 취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반파시스트들은 신(新)파시즘의 확산에 맞서는 핵심 세력 중 하나로 남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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