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사

클로드앵브루아즈 레니에 – 나폴레옹 제정의 사법대신, 마사 공작

클로드앵브루아즈 레니에(Claude-Ambroise Regnier)

마사 공작(Duc de Massa) · 1746년 11월 5일 블라몽(Blamont) 출생 ~ 1814년 6월 25일 파리에서 사망

클로드앵브루아즈 레니에는 낭시(Nancy)에서 변호사로 활동한 법조인 출신 정치가로, 프랑스 혁명부터 나폴레옹 제정의 종말까지 격동의 시대를 관통한 인물이다.

혁명기의 경력

레니에는 삼부회(États généraux)에서 낭시 관구의 제3신분 대표로 선출되어 의회 내 온건파 진영에 속했다. 이후 공포정치기에는 한동안 잊힌 인물이 되었으나, 1795년 원로원(Conseil des Anciens)에 들어가며 정계에 복귀했다.

집정정부와 제정기의 부상

그는 1799년 18브뤼메르 쿠데타에 가담했으며, 국가평의회(Conseil d'État)가 창설되자 그 일원이 되어 『민법전(Code civil)』, 즉 나폴레옹 법전의 초안 작성 작업에 실질적으로 기여했다. 1802년에는 아브리알(Abrial)을 대신하여 대심판관(grand juge), 곧 사법대신 자리에 올랐고, 1813년 11월까지 그 직책을 유지했다.

같은 시기 그는 경찰 업무도 함께 총괄했는데, 그의 역량 부족이 문제가 되면서 결국 1804년 7월 10일 총경찰성(Ministère de la Police générale)이 다시 설치되는 결과를 낳았다.

서임과 권좌에서의 하강

레니에는 1808년 제국 백작(comte de l'Empire)에, 이듬해인 1809년에는 마사디카라라 공작(duc de Massa di Carrara)에 봉해지며 영예의 절정에 달했다. 그러나 1813년 11월 20일 사법대신직을 몰레(Molé)에게 넘기며 물러나게 된다. 이후 나폴레옹은 그를 입법부(Corps législatif) 의장으로 임명했는데, 정작 그는 입법부 의원이 아니었기 때문에 의원들의 강한 반발과 불만을 샀다.

말년과 최후

1814년 레니에는 황제 퇴위 결의안에 찬성하는 선택을 했다. 그는 같은 해 6월 25일 파리에서 세상을 떠났으며, 프랑스 역사상 최고의 영예로 여겨지는 판테온(Panthéon)에 안장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