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9년 위기는 1920년대 미국이 단행한 신용 확장 정책의 결과로 나타난 경제 대붕괴입니다. 그 여파로 미국 인구의 상당수가 실업과 굶주림에 시달려야 했습니다.
글: 클라우디오 페르난데스(Cláudio Fernandes)
세계 대공황의 시작, 1929년
두 차례의 세계대전 사이인 1919년부터 1939년까지의 시기를 연구할 때 가장 중요한 주제 중 하나는 바로 '미국 대공황'입니다. 그 최대의 상징은 1929년 뉴욕 증권거래소의 폭락입니다. 이 사건은 일반적으로 '1929년 위기'라는 이름으로 알려져 있으며, 전 세계로 번져 수백만 명을 실업과 절망으로 몰아넣었습니다.
위기의 핵심 원인: 신용 확장
1929년 위기를 촉발한 주요 요인은 1924년 캘빈 쿨리지(Calvin Coolidge) 대통령 시절부터 연방준비제도(Federal Reserve System, 미국의 중앙은행에 해당하는 기구)가 발행하기 시작한 신용 확장이었습니다. 신용 확장이 어떻게 거대한 위기를 낳았는지 이해하려면 먼저 1920년대의 경제적 배경을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제1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 경제의 부상
제1차 세계대전(1914~1918) 이후 미국 경제는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경제로 성장했습니다. 전쟁으로 유럽이 크게 파괴되면서 영국, 독일 등 강대국들의 생산력은 회복 과정에 있어 예전처럼 다른 국가들을 압도하지 못했습니다. 그 결과 미국은 국내외에 폭넓은 소비층을 확보하며 매우 큰 경제 생산을 이루었고, 동시에 구매자들에게 신용 공급을 늘리고 노동자 임금 인상 정책도 병행했습니다.
그러나 경제가 소폭 침체에 빠질 때마다, 즉 경제 생산이 줄어들 때마다 정부는 시장에 개입하여 더 많은 신용(화폐와 증권)을 공급함으로써 피해를 만회하고자 했습니다.
'인플레이션 거품'의 형성과 붕괴
이러한 신용 확장 조치는 실제 저축에 기반하지 않은 인위적인 금리를 만들어냈습니다. 뉴욕 증권거래소에 주식을 보유한 투자자들은 신용 확장이라는 잘못된 신호를 받고 사업을 확장하고, 임금을 올리고, 더 많은 투자를 단행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인플레이션 거품'이 형성되었습니다.
결국 1929년, 경제 확장의 인위성을 더 이상 감출 수 없는 순간이 도래했습니다. 시중에 유통되는 화폐는 많았지만 실제 생산에 뒷받침되는 가치는 없었던 것입니다. 허버트 후버(Herbert Hoover) 행정부 시기에 투자 자산 관리와 신용 발행을 담당하던 뉴욕 증권거래소는 마침내 붕괴하고 말았습니다.
1929년 위기의 결과
1929년 위기의 주요 결과로는 대량 실업, 공업과 농업 부문을 막론한 수많은 기업의 파산, 그리고 미국 인구의 상당 부분을 황폐화시킨 극심한 빈곤을 꼽을 수 있습니다. 미국 신용 체계와 연결되어 있던 많은 나라들 역시 심각한 경제 침체를 겪었습니다. 브라질의 경우 당시 최대 수출품이던 커피의 가격을 방어하기 위해 생산된 커피를 태워 버려야 할 정도로 고통이 컸습니다.
뉴딜 정책: 위기 극복의 해법
위기에 대한 해법은 주로 프랭클린 D. 루스벨트(Franklin D. Roosevelt) 대통령이 추진한 뉴딜(New Deal) 정책을 통해 모색되었습니다. 뉴딜 정책은 대규모 공공사업 확대, 은행 및 금융 제도 개혁, 사회보장 제도 도입 등을 통해 미국 경제 전반을 재설계하는 것을 목표로 삼으며, 대공황 극복의 전환점이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