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사

쿠바 미사일 위기: 인류를 핵전쟁 직전까지 몰아넣은 극적인 13일

미사일 위기는 냉전 시대 양대 초강대국이 핵전쟁의 가장자리까지 치닫았던 인류 역사상 가장 긴장감 넘치는 순간 중 하나였습니다.

쿠바 미사일 위기: 인류를 핵전쟁 직전까지 몰아넣은 극적인 13일

미사일 위기란 무엇인가?

'미사일 위기'로 알려진 이 사건은 1962년 10월 16일부터 10월 28일까지 약 13일간 이어졌습니다. 이 사건의 발단은 소련이 제작한 중거리 탄도 미사일인 R-12 드비나(SS-4 샌들)와 R-14 추소바야의 미사일 발사 기지가 쿠바 영토에 설치된 사실이 발각되면서 시작되었습니다. 왜 이 사건이 냉전 최악의 위기이자 인류 역사상 가장 긴박한 순간 중 하나가 되었는지 이해하려면, '군비 경쟁'이라 불리는 현상을 짚어볼 필요가 있습니다.

냉전과 군비 경쟁

제2차 세계대전은 1945년 8월, 미국이 일본의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우라늄과 플루토늄 기반의 두 개의 원자폭탄을 투하하면서 막을 내렸습니다. 이 폭탄이 보여준 파괴력과 미국이 핵 기술을 독점하고 있다는 사실은 이른바 '군비 경쟁'을 촉발시켰습니다. 당시 추축국과의 전쟁에서 미국의 동맹국이었던 소련(USSR)은 몇 년 뒤 미국과 결별하고 핵 기술 개발에 매진하기 시작했으며, 1949년에는 첫 원자폭탄 실험에 성공했습니다.

더 강력한 핵무기를 개발하고 이를 탄도 미사일로 발사하는 방법을 연구하는 것은 냉전 시대를 규정짓는 특징 중 하나였습니다. 1960년대 초, 이 기술·군사적 '팔씨름'을 벌이던 세계의 지도자는 미국의 존 F. 케네디와 소련의 니키타 흐루쇼프였습니다.

쿠바에 배치된 미사일

1959년, 냉전과 군비 경쟁이 격화되던 가운데 쿠바 혁명이 일어났습니다. 피델 카스트로와 체 게바라 등이 주도한 이 혁명 운동은 당시 대통령이었던 풀헨시오 바티스타 정권을 축출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1961년 피델 카스트로는 국제 공산주의에 대한 지지와 마르크스-레닌주의 선택을 공개적으로 선언했고, 4년 후인 1965년에는 쿠바 공산당을 창당했습니다. 카스트로의 이러한 입장은 쿠바를 확실하게 소련 진영으로 끌어당겼습니다. 쿠바는 지리적으로 전략적 요충지인 카리브해의 섬나라였기 때문에, 소련은 이곳에 미국 본토 도시들을 겨냥한 핵미사일 기지를 구축할 절호의 기회가 있다고 판단했습니다.

같은 해인 1961년, 쿠바는 미국으로 망명한 반카스트로 세력이 CIA의 훈련을 받아 감행한 반혁명 시도를 겪게 됩니다. 이 작전은 '피그만 침공'으로 알려져 있으며, 그 결과로 히론 해변 전투(플라야 히론 전투)가 벌어졌습니다. 반혁명 세력은 패배했지만, CIA가 이 사건에 연루되었다는 사실 때문에 쿠바는 자국 영토에 소련 탄도 미사일을 배치할 여지를 제공하기로 했습니다. 이는 아메리카 대륙 내에서 지정학적으로 입지를 다지기 위한 수단이었습니다.

미사일 발각과 '검은 토요일'

핵미사일 기지는 1962년 10월 14일, 섬을 주기적으로 촬영하던 미군의 U-2 정찰기에 의해 발각되었습니다. 이 중거리 미사일들은 약 13분 만에 미국의 수도 워싱턴 D.C.까지 도달할 수 있는 사거리를 지니고 있었습니다. 발각 이후 존 F. 케네디 대통령과 그의 참모진은 즉각적인 공격 대신 쿠바에 대한 해상 봉쇄를 선택하고, 동시에 니키타 흐루쇼프와의 협상을 통해 긴장을 완화하고자 노력했습니다.

협상은 이후 열흘간 계속되었습니다. 쿠바에서 미사일을 철수하기 위한 주요 조건은 미국이 더 이상 쿠바 영토 침공 시도를 지원하지 않겠다고 약속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긴장이 누그러지고 있다고 여겨지던 10월 27일 토요일, U-2 정찰기 한 대가 쿠바의 대공포에 격추되어 조종사가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합니다. 바로 이날이 미사일 위기의 절정이었으며, 양 초강대국이 발사할 수 있는 미사일로 인한 '핵 종말' 직전까지 몰린 순간이었습니다. 이날은 이후 '검은 토요일(Black Saturday)'이라 불리게 됩니다.

위기의 해결

10월 28일, 소련은 미국에 추가 조건을 제시했습니다. 쿠바를 공격하지 않겠다는 약속 외에도, 미국은 동유럽과 지리적으로 인접한 나라인 터키에서 유사한 물자, 즉 핵 탄도 미사일을 철수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결국 거래는 성사되었고, 소련은 카리브해의 섬나라 쿠바에서 자국 미사일을 비활성화하고 철수시키겠다고 약속했습니다. 이렇게 하여 인류를 핵전쟁의 문턱까지 밀어붙였던 미사일 위기는 마침내 막을 내렸습니다.

*이미지 출처: Shutterstock 및 douglasmac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