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사

나이메헌 바알 강 다리 점령: 성조기가 휘날린 결정적 순간

나이메헌 바알 강 다리 점령: 성조기가 휘날린 결정적 순간

바알 강 다리를 향한 치열한 공방전

네덜란드 나이메헌에서 바알 강(Waal River) 철도교와 도로교를 점령하려는 작전은 처음부터 난항을 겪었다. 제임스 개빈(James Gavin) 장군은 월요일 아침 다리 탈환을 계획했으나, 적군이 라이히스발트(Reichswald) 숲에서 역습을 감행하며 글라이더 착륙 예정지인 동부 지역을 재점령했다. 다행히 안개로 글라이더 부대가 2시간 늦게 도착한 덕분에 큰 피해 없이 착륙할 수 있었고, 치열한 전투 끝에 독일군을 격퇴했다.

동시다발적 공격: 호록스와 브라우닝의 계획

화요일, 두 번째 글라이더 편대가 안개에 발이 묶인 사이, 개빈 장군은 근교에서 근위척탄병여단과 합류했다. 동쪽의 독일군을 견제하느라 세 개의 낙하산 연대 중 하나만 다리 공격에 투입할 수 있었다. 다리 접근로는 견고하게 방어되고 있었는데, 도로교는 전쟁 전부터 요새화되어 1940년 독일군이 점령하는 데만 사흘이 걸렸을 정도였다. 독일 사령부는 이 다리가 '불가침'이라 판단해 폭파 명령조차 내리지 않았다.

수요일 아침, 전날의 큰 손실과 난공불락의 방어선에도 불구하고 공격이 재개됐다. 브라이언 호록스(Brian Horrocks) 장군과 프레더릭 브라우닝(Frederick Browning) 장군(막 나이메헌에 낙하해 공수 작전을 지휘하던 중)이 수립한 계획에 따라, 북쪽과 남쪽에서 동시 공격이 개시됐다.

504 낙하산 연대의 도하 작전

북쪽 공격은 미 제504낙하산연대가 맡았다. 오전 중 나이메헌 시가에서 독일군을 몰아낸 이들은 오후 3시, 다리 상류 2km 지점에서 강습정을 이용해 도하를 시작했다. 급류와 집중 포화로 1진의 절반만 겨우 반대편에 상륙했지만, 이들은 교두보를 확보하고 후속 부대가 건너는 동안 버텼다. 오후 늦게 교두보에서 돌파에 성공, 철도교 북단에 성조기(Stars and Stripes)를 꽂았다. 이제 도로교로 진격 중이었다.

연기의 신호, 그리고 전차의 돌진

연기 너머로 휘날리는 성조기를 본 남쪽 제30군단 근위기갑사단은 이를 공격 개시 신호로 받아들였다. 최후의 거점과 88mm 포의 포화 사이로 영국 전차들이 도로교를 향해 돌진했다. 한편 개빈의 연대는 라이히스발트에서 밀려오는 독일군의 압박을 막아내고 있었다.

오후 9시 직후, 전차 네 대가 다리에 도달했다. 두 대는 강철 빔 뒤에 엄폐한 대전차포에 격파됐으나, 나머지 두 대는 적 진지를 깔아뭉개며 반대편 강안에 도달해 북쪽의 미군과 합류했다. 한 시간 뒤, 다리는 연합군 수중에 확고히 들어왔다.

전쟁사 가장 대담한 협동 작전

근위기갑사단과 제82공수사단이 함께 이뤄낸 이 작전은 제2차 세계대전 중 가장 대담하고 빛나는 협동 작전 중 하나로 기록된다. 작전 종료 후 마일스 뎀프시(Miles Dempsey) 장군은 개빈 장군에게 "세계 최강 사단의 지휘관을 만나 영광입니다"라며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과장이 아니었다.

아른헴으로 가는 길이 열렸고, 제30군단 선두 부대는 새벽 동이 트자 영국 제1공수사단 구원을 위해 출발 명령을 받았다.

아른헴의 고립된 전사들, 그리고 독일 지휘부의 오판

그 시각 아른헴에서는 영국 제1공수사단이 사흘 넘게 필사적인 저항을 이어가고 있었다. 오스테르베크의 타펠베르크 호텔(Hotel Tafelberg) 테라스에서는 발터 모델(Walter Model) 원수(B집단군 사령관)가 아페리티프 와인을 마시고 있었다. 그의 사령부가 아른헴에서 불과 3km 떨어진 곳에 있었음에도, 그는 물론 남쪽 뷔흐트(Vught)에 있던 쿠르트 슈투덴트(Kurt Student) 장군(제1낙하산군 사령관) 역시 연합군의 공수 작전을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슈투덴트 장군은 네덜란드 주둔 독일군과 루프트바페 야전사단, 제15군 잔여 병력까지 흡수하며 전력을 불리고 있었다. 영국 제2군의 지상 공격은 예상했지만, 마켓 가든 작전(Market Garden)의 공수 투하는 "완전히 예기치 못한 일"이었다. 훗날 그는 회고록에서 이렇게 적었다.

"다리 폭파 전 점령을 위해 공수부대를 투입하는 것은 논리적이었다. 하지만 우리 군단장들, 병사들, 나 자신과 참모진까지, 끝없이 몰려드는 임무에 파묻혀 보병의 눈으로만 작전을 보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