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사

프랑코주의란? 스페인을 지배한 36년간의 파시즘 독재 체제

프랑코주의란?

프랑코주의(프랑키스모, Franquismo)는 1939년부터 1975년까지 스페인에서 파시스트 장군 프란시스코 프랑코(Francisco Franco)의 지도 아래 발전한 정치 체제를 가리킨다. 이는 단순한 정치 노선을 넘어, 독재자에 대한 개인 숭배와 국가 전체의 사상 통제까지 아우르는 총체적인 권위주의 체제였다.

프랑코주의란? 스페인을 지배한 36년간의 파시즘 독재 체제

글: 클라우디오 페르난데스(Me. Cláudio Fernandes)

프랑코주의의 개념과 성격

프랑코주의는 포르투갈의 살라자르주의(Salazarismo)와 마찬가지로 스페인에서 행해진 일종의 파시즘이었다. 이 용어는 1892년에 태어나 1975년 사망할 때까지 1939년부터 권력을 장악했던 프란시스코 프랑코 장군의 인물상을 지칭하며, 동시에 그의 정치 운영 방식과 대중적 개인 숭배 현상을 모두 포괄한다.

공화정에 대한 반발과 1936년 쿠데타

프랑코 장군이 공적 인물로 부각되기 시작한 것은 1930년대 초 수립된 스페인 공화국이 보수 세력과 이들에 연계된 군부로부터 도전받기 시작하면서부터였다. 인민전선(Popular Front)이 주도하는 강한 좌파 성향의 공화정에 대한 반발이 사회 전반에 퍼져 있던 시기였다.

1936년 7월, 프랑코를 비롯해 이탈리아의 파시즘과 독일의 나치즘에 공감하던 곤살로 케이포 데 야노(Gonzalo Queipo de Llano), 에밀리오 몰라(Emilio Mola), 호세 산후르호(José Sanjurjo) 등 군 내부 인사들은 좌파 정부에 대한 쿠데타를 계획·실행했다. 당시 좌파 정부는 스탈린 치하 소련의 지원을 받았고, 프랑코가 이끄는 파시스트 진영은 히틀러와 무솔리니, 그리고 포르투갈의 살라자르로부터 지원을 받았다. 결국 스페인에는 1939년까지 이어지는 격렬한 내전이 발발했다.

게르니카 폭격과 내전의 종결

내전 한가운데 있던 1937년, 프랑코를 지원하던 나치 독일은 제2차 세계대전에서 사용할 군사 장비를 시험한다는 명목으로 바스크 지방의 게르니카(Guernica) 마을을 폭격했다. 이 사건은 피카소의 걸작 『게르니카』로도 회자되며 전쟁의 참혹함을 상징하는 사건이 되었다. 프랑코가 이끄는 스페인 파시스트 세력의 승리는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한 해인 1939년에 최종 확정되었다.

1945년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면서 파시즘은 국제적으로 신뢰를 잃은 정치 모델이 되었지만, 프랑코는 살라자르와 같은 다른 지도자들과 마찬가지로 여전히 권위주의적 권력을 유지했다. 1940년대부터 1970년대까지 프랑코 정권은 파시즘 체제의 전형처럼 독재자를 찬양하는 거대한 선전 기계를 구축했으며, 이와 함께 스페인 민족의 역사 기억을 조작하는 작업도 은밀하게 진행했다.

역사 기억의 조작

연구자 자네트 아브라앙(Janete Abraão)은 논문 「5월 2일, 독립전쟁, 그리고 내전과 프랑코주의 시기 조작된 기억」에서 프랑코주의가 19세기 초 나폴레옹 제국주의에 맞선 스페인의 항쟁 기억을 어떻게 자신들의 편의에 맞게 활용했는지 지적했다.

"1808년의 '불굴의 스페인' 신화, 즉 외세의 지배에 맞서는 신화는 프랑코 정권(1939~1975) 기간 동안 막대한 반향을 일으켰다. 그러나 프랑코주의는 19세기 말 낭만적 민족주의·전통주의·가톨릭 담론이 지닌 감정적 에너지를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활용했을 뿐이라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 바로 이러한 맥락에서 프랑코주의는 1808년 5월 2일을 1936년 7월 18일과 연결 지었다. 이에 따라 프랑코주의 역사학은 '스페인 조국'에 가장 중요한 역사적 사건이 '독립전쟁'(1808~1814)과 '해방전쟁'(1936~1939)이라고 주장하기를 마다하지 않았다."
(Janete Abraão, "The 2nd of May, the 'War of Independence and the manipulated memory during the Civil War and Francoism'", In: Janete Abraão (ed.), Spain: Politics and Culture, Porto Alegre: EDIPUCRS, 2010, p. 25)

이처럼 프랑코주의는 자신들의 이익에 맞춰 재구성된 특정한 스페인 역사관을 확립하고자 했다. 이러한 왜곡된 역사 서술은 프랑코 사망 이후, 그러니까 1978년 이후에야 비로소 시작된 스페인의 민주화 과정에서 재검토되고 비판적으로 논의되기 시작했다.

* 이미지 출처: Shutterstock 및 Neftal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