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베르투 카스텔루 브랑쿠 원수는 브라질 역사에서 군사 독재(군정기)라고 불리는 시대의 초대 대통령이었습니다. 그는 1964년 쿠데타로 주앙 고울라트를 축출한 며칠 뒤 권력을 장악했으며, 1967년 아르투르 코스타 이 시우바에게 자리를 물려줄 때까지 집권했습니다. 카스텔루 브랑쿠 정부 시절, 훗날 '납의 시대'로 알려진 시기를 낳은 억압 구조 전체가 구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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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임 과정과 억압 체제의 구축
카스텔루 브랑쿠는 1964년 4월 15일 브라질 대통령으로 취임하며 임시 대통령이던 라니에리 마지리를 대신했습니다. 그의 취임은 고울라트 축출 쿠데타를 조직한 군사 위원회가 권력을 공고히 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카스텔루 브랑쿠는 주아레스 타보라와 에우리쿠 가스파르 두트라를 누르고 실시된 간접선거를 통해 선출되었습니다.
카스텔루 브랑쿠가 취임할 당시 브라질은 이미 제1차 기관법(AI-1)의 영향 아래 있었습니다. AI-1은 1964년 4월 9일 제정되었으며, 쿠데타 세력인 최고 사령부는 이를 통해 군사 독재의 억압 장치를 형성하는 각종 조치를 시행했습니다. AI-1은 반체제 인사로 간주되는 사람들을 박해하고 투옥할 수 있는 법적 근거를 마련했으며, 동시에 주앙 고울라트 축출에 대한 명분을 부여하는 목적도 지니고 있었습니다.
AI-1이 시행되면서 최고 사령부가 적으로 간주한 모든 이들에 대한 박해와 검거가 시작되었습니다. 그 결과 가택 수색이 무분별하게 이루어졌고, 운동장과 해군 함선이 감옥으로 사용되기 시작했습니다. 이 시기부터 정부 소속 요원에 의한 고문 사례가 처음으로 기록되기 시작했습니다.
AI-1을 바탕으로 민간과 군 부문 모두에서 숙청이 단행되어 수천 명이 일자리에서 내몰렸습니다. 역사학자 보리스 파우스투는 보수적인 추산으로 문관 약 1,400명, 군 약 1,200명이 직위를 잃었다고 추정합니다|1|.
박해는 정치권으로까지 확대되어 수십 명의 정치인이 탄핵당했습니다. 하원만 해도 41명의 의원이 정치권리를 박탈당했는데, 그중 다수는 브라질 노동당(PTB) 소속이었습니다. 쿠데타를 지지하지 않았던 고이아스주의 마우루 보르제스 같은 주지사들도 직무에서 물러나야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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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해는 사회운동에까지 미쳤습니다. 전국학생연합(UNE)은 강경하게 탄압받아 본부가 불태워지고 활동이 금지되었습니다. 농촌에서 농지개혁을 위해 활동하던 농민 리그 역시 예외가 아니어서 곧 불법화되었습니다.
또 하나의 억압 장치는 군사경찰조사(IPM)였습니다. IPM은 독재정권이 '전복세력'이라 판단한 모든 이를 색출·응징하기 위한 조사 수단이었습니다. 쿠데타 직후 몇 주 만에 700건이 넘는 IPM이 설립되고 1만 명 이상이 이 조사의 피심인이 되었다는 사실|2|은 IPM이 억압 도구로 사용되었음을 잘 보여줍니다.
이처럼 방대한 억압 장치의 구축은 특히 브라질 정치권을 중심으로 사회 전반의 대숙청을 단행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억압의 핵심 목표는 브라질 정치에서 사회 개혁을 열렬히 옹호해 온 좌파 및 중도좌파 엘리트를 제거하고, 사회운동이 완전히 해체될 때까지 박해하는 것이었습니다|3|.
AI-2와 AI-3: 체제의 경화
카스텔루 브랑쿠 정부 시절에는 AI-1 외에도 두 가지 새로운 조치, 즉 AI-2와 AI-3가 시행되며 변화가 계속되었습니다. 이 두 기관법은 국내 체제의 경화로 이어졌습니다.
제2차 기관법(AI-2)은 1965년 말에 반포되어 대통령 선출 방식을 간접선거로 확정했으며, 행정부의 권한을 다른 삼권에 비해 강화하는 각종 특권을 신설했습니다. AI-2의 반포는 카를루스 라세르다와 아데마르 지 바루스 같은 브라질 정치계 보수 인사들이 독재정권과 결별하는 결과를 낳았습니다.
카를루스 라세르다의 결별은 광역전선(Frente Ampla)의 등장으로 이어졌습니다. 이 야권 연합은 특히 대통령 직선제 선거 실현을 목표로 민주주의 회복을 추구했습니다. 광역전선은 주앙 고울라트와 JK(주셀리누 쿠비체크)의 지지를 받았으나, 1968년 초 독재정권에 의해 불법화되었습니다.
제3차 기관법(AI-3)은 브라질에 양당제를 확립했습니다. 여당은 국민갱신동맹(ARENA), 야당은 브라질민주운동(MDB)으로 명명되었습니다. AI-3는 또한 주지사와 시장 선거도 간접선거로 치르도록 확대했습니다.
카스텔루 브랑쿠 정부의 또 다른 중요한 사건은 1967년 새 헌법의 제정입니다. 앞서 언급했듯이 카스텔루 브랑쿠 정부는 1967년까지 지속되었으며, '납의 시대'를 본격적으로 굳힌 아르투르 코스타 이 시우바 정부로 교체되었습니다.
경제 정책: PAEG
카스텔루 브랑쿠 정부의 경제 정책은 역사학자들에 의해 긴축 정책으로 평가됩니다. 이 정부의 주요 목표는 물가 안정과 공공 부채 관리였습니다. 이를 달성하기 위해 정부경제행동계획(PAEG)이 수립되었습니다.
공공 부채 감축은 정부 지출 통제를 통해 추진되었습니다. 초기 조치 중 하나는 임금 인상률 통제 정책이었습니다. 이에 따라 임금 인상률은 지난 24개월간의 평균 물가상승률에 근거해 산정되었고, 이는 일반적으로 노동자 임금의 실질 구매력 하락을 의미했습니다.
또한 파업 행위를 규율하는 법률이 제정되어 파업이 허용되기 위한 매우 엄격한 요건이 만들어졌습니다. 실제로 이 법은 국내에서 파업을 사실상 불가능하게 만들었습니다. 경제·노동 분야에서는 해고를 용이하게 하는 직원퇴직보장기금(FGTS) 창설도 결정되었습니다.
FGTS 이전 브라질 노동 체계는 노동법 통합규정(CLT)에 따랐습니다. CLT는 부당해고당한 노동자에게 근속 연수 1년당 월급 1개월분의 보상을 지급하고, 한 회사에서 10년 이상 근무한 노동자에게 고용 안정권을 부여하도록 규정하고 있었습니다.
FGTS는 기존 법규를 폐지하고 회사가 노동자 급여의 8%를 기금 형태로 적립하도록 했으며, 노동자는 부당해고를 당했거나 자가 주택을 구입할 경우에만 해당 금액을 인출할 수 있었습니다. 이 법은 카스텔루 브랑쿠 대통령이 AI-2로부터 부여받은 권한을 행사하여 제정한 것입니다.
카스텔루 브랑쿠 정부가 시행한 이러한 긴축 정책은 의도한 목표를 달성했습니다. 물가상승률은 1965년부터 하락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PAEG는 임금 인상 조건을 까다롭게 만들고 노동자 해고를 용이하게 했다는 점에서, 브라질 대기업층의 이익을 충족시키기 위해 설계된 계획으로 평가받습니다. 카스텔루 브랑쿠의 이 경제 계획은 이후 '경제 기적'의 토대를 마련했습니다.
|1| FAUSTO, Boris. 『브라질의 역사』. 상파울루: Edusp, 2013, p. 399.
|2| SCHWARCZ, Lilia Moritz & STARLING, Heloisa Murgel. 『브라질: 한 편의 전기』. 상파울루: Companhia das Letras, 2015, p. 457.
|3| NAPOLITANO, Marcos. 『1964: 브라질 군정의 역사』. 상파울루: Contexto, 2016, p. 70-71.
*이미지 출처: FGV/CPDO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