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 역사상 가장 파괴적인 무기가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실전에 사용된 순간은 1945년 여름, 일본 상공이었다.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투하된 두 개의 원자폭탄은 제2차 세계대전을 조기에 종결시켰지만, 동시에 수십만 명의 생명을 앗아가며 핵무기라는 새로운 공포를 전 세계에 각인시켰다.
전쟁의 마지막 장면, 태평양 전선
제2차 세계대전은 교전 양측의 군부와 정부 지도자들이 명령한 끔찍한 만행의 연속이었다. 전투와 폭격으로 수천만 명이 목숨을 잃었고, 나치 독일이 자행한 홀로코스트로는 600만 명 이상의 희생자가 발생했다. 그리고 이 모든 비극 위에, 전쟁 역사상 유일하게 원자폭탄이 실전에 사용되는 사건이 겹쳐진 것이다.
1945년 5월 독일이 항복했음에도 태평양에서의 전쟁은 계속되고 있었다. 미국은 1942년 산호해 해전과 미드웨이 해전 이후 일본에 대한 전세를 유리하게 이끌어 왔다. 1945년 2월에는 이오지마 섬을 점령하며 일본 본토 공격을 본격화했다. 일본군은 폭탄을 가득 싣고 미군 함선에 자살적으로 돌진하는 카미카제 특공대를 앞세워 필사적으로 저항했다.
맨해튼 프로젝트: 최종 무기의 탄생
태평양 전쟁이 진행되는 동안 미국은 국내에서 '맨해튼 프로젝트'라는 이름의 극비 연구를 진행하고 있었다. 우라늄과 플루토늄의 핵분열 에너지를 무기로 만드는 것이 목표였다. 나치와 파시스트 정권을 피해 유럽에서 도피한 수많은 과학자와 엔지니어들이 미국 과학자들과 함께 이 프로젝트에 참여했다. 미군은 독일보다 먼저 원자폭탄을 개발하는 것을 최우선 과제로 삼았다.
1945년 7월 16일, 뉴멕시코주 알라모고르도 사막에서 플루토늄 폭탄의 첫 실험이 성공적으로 이루어졌다. 이로써 인류는 핵무기라는 전례 없는 존재와 마주하게 되었다.
히로시마, 1945년 8월 6일
같은 달, 일본 천황 히로히토는 미국이 제시한 항복 권고(포츠담 선언)를 거부했다. 이에 해리 트루먼 대통령은 일본 본토 침공 시 약 100만 명의 사상자가 예상된다는 판단 아래 원자폭탄 사용을 결정했다.
1945년 8월 6일, B-29 폭격기 '엔올라 게이'가 히로시마 상공에 우라늄 폭탄 '리틀 보이(Little Boy)'를 투하했다. 폭탄은 지상 약 570미터 상공에서 폭발했고, 하늘에는 거대한 화염구가 형성되었다. 버섯 모양의 거대한 구름은 18킬로미터 이상 솟아올랐으며, 폭심지의 열은 태양 표면에 필적할 정도였다. 추산 14만 명 이상이 목숨을 잃었다.

B-29 폭격기 '엔올라 게이', 히로시마에 우라늄 폭탄을 투하했다*
나가사키, 그리고 항복
단 3일 후인 8월 9일, 또 다른 B-29 폭격기 '복스카(Bockscar)'가 나가사키 상공에 플루토늄 폭탄 '팻 맨(Fat Man)'을 투하했다. 히로시마에 떨어진 폭탄보다 더 강력한 이 폭탄은 산으로 둘러싸인 나가사키의 지형 때문에 피해가 일부 제한되었지만, 그럼에도 4만 명 이상이 사망했다. 두 폭탄의 직접적인 피해를 살아남은 사람들 중 수만 명은 방사능 후유증으로 이후 세월에 걸쳐 생명을 잃었다.
8월 15일 천황은 라디오 방송을 통해 항복을 선언했고, 1945년 9월 2일 일본은 미주리함에서 정식으로 항복 문서에 서명하며 제2차 세계대전은 막을 내렸다. 미국 대통령의 계산대로라면 원자폭탄 사용은 '손익' 면에서 이득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일본 국민에게, 그리고 전 세계 인류에게 남겨진 것은 이 새로운 군사 무기가 가져온 끔찍한 공포의 기억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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