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사

뉘른베르크 법률: 나치 독일이 유대인 박해를 법으로 만든 순간

뉘른베르크 법률(Nuremberg Laws)은 1935년 9월에 통과된 법률로, 통혼 문제, 시민권, 독일 국기에 관한 사항을 다루며 아리안인과 유대인을 법적으로 정의했습니다.

뉘른베르크 법률은 1935년 나치당이 반포한 법률입니다. 세 개의 법률로 구성되어 있으며, 유대인과의 혼혈 금지, 독일 국기에 관한 규정, 그리고 가장 핵심적인 부분인 나치 독일에서 시민권을 부여받을 수 있는 기준을 정의했습니다. 뉘른베르크 법률은 독일 내 유대인에 대한 증오를 제도화하는 중요한 단계였으며, 이는 결국 제2차 세계대전 기간 홀로코스트로 이어졌습니다.

뉘른베르크 법률: 나치 독일이 유대인 박해를 법으로 만든 순간

배경

1933년 나치가 독일에서 집권하자마자 사회 우생학과 반유대주의 정책이 실행되었습니다. 초기에는 우생학 정책이 반유대주의보다 더 큰 영향력을 발휘했지만, 나치가 유대인에게 취한 첫 번째 조치 중 하나는 1933년 유대인이 독일 공무원 직위를 맡는 것을 금지한 것이었습니다.

초기에는 롬족(집시), 동성애자, 범죄자에 대한 정책이 반유대주의 정책보다 훨씬 강경했지만, 나치는 반유대주의를 정권 지지율이 낮을 때 체제를 보호하는 도구로 활용하기도 했습니다.

1935년이 되자 독일 내 유대인에 대한 폭력이 크게 증가했고, 유대인 상점에 대한 보이콧이 잇달아 일어났습니다. 또한 사회와 당 내부의 일각에서는 유대인에 대한 차별 조치를 요구했으며, 그중 하나가 유대인과 비유대인 독일인 간의 결혼 금지였습니다. 역사학자 이언 커쇼(Ian Kershaw)는 다음과 같이 설명합니다.

[...] 운동의 급진파 눈에는 1935년 초까지 사회에서 유대인을 근절하기 위한 조치가 거의 이루어지지 않았던 것으로 보였습니다. [...] 새로운 폭력 물결은 유대인에 대한 차별법 도입을 요구하는 목소리를 높였고, 이는 당 강령의 실현으로 이어졌습니다.|1|

유대인에 대한 폭력은 나치 지도부가 펼친 증오 선전의 결과물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치 지도부는 경찰을 동원해 폭력 사태를 억제했습니다. 이는 나치즘이 국제사회에서 이미지를 유지할 필요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언 커쇼의 말처럼 유대인에 대한 야만적 행위는 줄었지만, 차별과 협박은 여전히 거대했습니다.|2|

나치 지도부는 경찰로 반유대주의 폭력을 통제하는 한편, 증오 연설을 통해 대중을 선동했습니다. 이러한 역설적인 상황은 집권 후 처음 2년간 나치즘의 인기가 아돌프 히틀러의 미이행된 약속들 때문에 좋지 않았다는 사실로 설명할 수 있습니다. 나치 정권은 반유대주의를 비판으로부터 주의를 돌리는 수단으로 사용한 것입니다.

이러한 맥락에서 반유대주의의 고조는 정권에 "문제"가 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하여 군인 간 "혼혈 결혼"을 금지하는 법이 통과되었고, 곧 이 법이 독일 전역으로 확대될 것이라 여겨졌습니다. 또한 외국계 유대인의 시민권 신청이 독일 정부에 의해 거부되기 시작했습니다.

이러한 조치들은 국내 반유대주의 폭력을 줄이는 데 기여했고, 독일의 유대인들을 완전히 분리시키는 법률 제정의 필요성에 대한 논쟁을 촉발했습니다. 이는 나치즘에 대한 비판으로도 이어졌는데, 당 강령 자체가 이러한 조치의 시행을 옹호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1935년 9월, 나치당의 연례 집회가 뉘른베르크에서 열렸습니다. 그 직전인 8월에는 제7차 코민테른(공산주의 인터내셔널) 대회가 열려 파시즘에 대한 새로운 국제적 투쟁 노선이 채택되었습니다. 이 대회의 개최와 내부적 압력이 더해지면서 히틀러는 독일 내 유대인에 대한 더욱 엄격한 법률 시행을 결심하게 됩니다.

히틀러에게 반유대주의 법령은 유대인이 조직했다고 여겨지는 소위 '국제 음모'에 대한 대응이었습니다. 그리하여 의회(라이히스타크)에서 법률이 통과되었고, 시민권·혼혈·국기에 관한 새로운 법률은 1935년 9월 15일 전국에 공포되었습니다.

뉘른베르크 법률이란?

뉘른베르크 법률: 나치 독일이 유대인 박해를 법으로 만든 순간
뉘른베르크 법률은 1935년 나치당 전당대회에서 공포되었습니다.*

뉘른베르크 법률은 1935년 9월 15일 라이히스타크(독일 의회)에서 통과되고 공표된 법률들의 집합입니다. 이 법률들은 아돌프 히틀러의 직접 명령에 따라 작성되었으며, 시민권의 정의, 혼혈, 독일 국기 등의 문제를 다루었습니다. 뉘른베르크 법률을 구성하는 세 가지 법은 '독일 혈통과 명예 보호법', '라이히 시민법', '라이히 국기법'입니다.

1. 독일 혈통과 명예 보호법

이 법은 독일 사회의 사적 영역에 크게 작용했으며, 독일인과 유대인 간의 결혼을 금지했습니다. 독일인과 유대인 간의 성관계도 법으로 금지되었고, 유대인은 45세 미만의 독일인 하녀를 고용하는 것도 금지되었습니다. 이 법을 위반한 모든 사람은 '성적 타락'으로 고발되었습니다.

역사학자 리처드 J. 에번스(Richard J. Evans)에 따르면, 1936년부터 1939년까지 이 법으로 인해 매년 약 420명이 성적 타락죄로 유죄 판결을 받았으며, 이 중 약 3분의 2는 유대인 남성이었습니다.|3|

2. 라이히 시민법

이것이 뉘른베르크 법률에서 가장 '중요한' 핵심이자 두드러진 부분이었습니다. 이 법은 누가 독일 시민으로 간주되고 누가 그렇지 않은지를 규정했습니다. 법에 따르면 독일 혈통을 지니고 계보적으로 입증된 관계가 있는 사람만이 독일인으로 인정받았습니다. 시민권을 받지 못한 사람들은 단지 '국가의 신민'으로 간주되어, 국가에 대한 의무는 있지만 권리는 없는 사람들이었습니다.

라이히 시민법에 따르면, 4분의 3(¾)이 유대인 혈통이거나 유대교를 실천하는 모든 사람은 유대인으로 간주되었습니다. ¾란 부계와 모계 조부모를 모두 포함하는 개념으로, 네 명의 조부모 중 세 명이 유대인이면 독일 법상 유대인으로 분류되었습니다.

4분의 1(¼) 또는 2분의 1(½)의 유대인 혈통을 가진 사람들은 각각 2등급 및 1등급 혼혈(Mischlinge)로 분류되었습니다. 이 두 '혼혈' 범주에 속한 사람들은 독일 시민권을 가질 수 있었습니다. 다만 혼혈로 분류된 사람이라도 유대교를 실천하거나, 유대인과 결혼했거나, 유대인 아버지 또는 어머니의 자녀인 경우에는 유대인으로 간주되었습니다.|4|

3. 라이히 국기법

라이히 국기법은 하켄크로츠(스바스티카)를 독일 국기의 필수 상징으로 삼았고, 독일의 색을 빨강, 흰색, 검정으로 규정했습니다.

수정의 밤

뉘른베르크 법률은 유대인을 독일 사회에서 배제하는 법적 길을 닦았다는 점에서 나치 독일 역사의 이정표입니다. 이 시기의 또 다른 중요한 이정표이자, 독일 국가에 의한 유대인에 대한 폭력과 물리적 감금의 시기를 연 사건은 1938년 11월 독일 전역에서 일어난 포그롬(집단 공격), 이른바 수정의 밤(Kristallnacht)입니다.

홀로코스트

나치의 유대인에 대한 증오 선동은 제2차 세계대전 중 유대인 대량학살(제노사이드)로 귀결되었습니다. 홀로코스트 기간 유대인 학살은 동유럽에서 활동한 특수학살부대인 아인자츠그루펜(Einsatzgruppen)과 강제수용소를 통해 이루어졌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날 무렵, 600만 명의 유대인이 살해되었습니다.

최종 해결책

뉘른베르크 법률: 나치 독일이 유대인 박해를 법으로 만든 순간
유대인 절멸 계획인 '최종 해결책'은 하인리히 힘러(왼쪽)와 라인하르트 하이드리히(가운데)가 입안했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 중 홀로코스트의 특징인 유대인 대량 학살은 나치당이 하인리히 힘러(Heinrich Himmler)와 라인하르트 하이드리히(Reinhard Heydrich)를 통해 구조화한 '최종 해결책(Final Solution)'이라는 계획이 수립되면서 본격화되었습니다. 이 계획은 유럽의 유대인들이 어떻게 절멸될 것인지를 구체화했습니다.

강제수용소

홀로코스트의 한 단계는 유대인을 강제수용소에 수감하는 방식으로 진행되었습니다. 이곳에서 나치는 유대인의 노동력을 착취했고, 아우슈비츠(Auschwitz)와 트레블링카(Treblinka) 같은 절멸수용소가 건설되면서 나치는 산업적 규모로 유대인을 학살하기 시작했습니다.

뉘른베르크 재판

제2차 세계대전 종식과 나치 독일의 패망 이후, 전쟁 범죄와 독일이 자행한 집단학살에 연루된 당원들은 뉘른베르크 국제군사재판소(International Military Tribunal at Nuremberg)에 회부되었습니다. 이 재판에서 나치즘 관련자들의 유죄 또는 무죄가 판결되었으며, 율리우스 슈트라이허(Julius Streicher)와 요아힘 폰 리벤트로프(Joachim von Ribbentrop) 같은 인물들은 교수형에 처해졌습니다.

|1| KERSHAW, Ian. Hitler. São Paulo: Companhia das Letras, 2010, p. 373.
|2| 상게서, p. 372.
|3| EVANS, Richard J. The Third Reich in Power. São Paulo: Planeta, 2014, p. 620.
|4| KERSHAW, Ian. Hitler. São Paulo: Companhia das Letras, 2010, p. 380.

*이미지 출처: Everett Historical, Shutterstoc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