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라질 제4공화국은 거듭된 정치적 위기와 함께 브라질 경제·산업 발전 지표가 비약적으로 상승한 시기였습니다.

브라질 제4공화국은 1945년 바르가스 시대(Era Vargas)의 종식으로 시작되어, 1964년 군사 쿠데타로 군사독재 시대가 개막되면서 끝난 브라질 역사의 한 구간입니다. 이 시기 브라질은 경제와 산업 면에서 큰 도약을 이루었고 급속한 도시화가 진행되었습니다. 그러나 기존의 사회 불평등 역시 함께 심화되었습니다.
이 시기의 대통령들
제4공화국의 21년 동안 브라질에는 선출된 대통령들과 대통령 사망 또는 기타 사유로 직무를 승계한 인물들을 포함해 여러 명의 대통령이 있었습니다. 제4공화국 시기 브라질의 대통령은 다음과 같습니다.
- 에우리코 가스파르 두트라 (1946~1951)
- 제툴리우 바르가스 (1951~1954)
- 카페 필류 (1954~1955)
- 카를루스 루스 (1955)
- 네레우 하무스 (1955~1956)
- 주셀리누 쿠비체크 (1956~1961)
- 자니오 쿠아드로스 (1961)
- 라니에리 마지리 (1961)
- 주앙 굴라르트 (1961~1964)
대통령 선거는 1945년, 1950년, 1955년, 1960년에 실시되었습니다. 그러나 1965년에 치러졌어야 할 선거는 1964년 권력을 장악한 군사정권에 의해 무산되었습니다.
정치와 1946년 헌법
이 시기 브라질 정치의 틀은 1945년 초 바르가스가 반포한 추가 법령에서 비롯되었습니다. 바르가스의 지시에 따라 새로운 정당 설립 여건이 조성되었고, 이 시기 브라질의 주요 정당들이 1945년부터 등장했습니다.
제4공화국 전 기간을 관통하며 활동한 세 개의 주요 정당은 다음과 같습니다.
- 전국민주연합(UDN): 보수 성향의 정당으로, 정치에 대해 극도로 도덕주의적인 시각을 견지했습니다. 반바르가스·반공주의 성향이 매우 강했으며, 이 시기 내내 입헌적 법치에 반하는 쿠데타 수단으로 집권을 시도하기도 했습니다. 대표 인물로는 카를루스 라세르다가 있습니다.
- 사회민주당(PSD): 바르가스가 '이스타두 노부(신국가)' 체제 기간 구축한 관료 조직에서 탄생한 정당입니다. 바르가스가 임명한 주정부 개입관들이 창당에 참여했을 뿐 아니라, 막강한 선거동원력을 보유했습니다. 표를 모집하고 후보를 당선시키는 데 능숙했던 PSD 간부들 덕분에 이 시기 최대 정당으로 성장했습니다. 대표 인물로는 주셀리누 쿠비체크가 있습니다.
- 브라질노동당(PTB): 바르가스 본인이 직접 창당한 정당으로, 특히 도시 노동자 등 대중과의 유대를 강화하려는 그의 정치 프로젝트를 계승했습니다. 제4공화국 기간 내내 좌파가 옹호하는 정책들을 추진하는 방향으로 나아갔습니다. 대표 인물로는 제툴리우 바르가스와 주앙 굴라르트가 있습니다.
한편 제4공화국은 1946년 헌법의 틀 안에서 운영되었습니다. 이 헌법은 해당 시기 첫 민선 대통령인 에우리코 가스파르 두트라의 취임 직후 제정·선포되었습니다. 1946년 헌법은 바르가스 시절 중단되었던 권리들을 회복시키고 유권자 수 확대를 가능하게 하는 등, 특히 민주주의 분야에서 몇 가지 개선을 브라질에 가져왔습니다.
그러나 사학자들의 분석에 따르면 1946년 헌법은 몇 가지 장애 요소도 남겼습니다. 문맹자에게 선거권을 부여하지 않았고(문맹자 참정권은 1988년 헌법에서야 인정됨), 농촌 노동자들은 도시 노동자들의 처우 개선을 이끌었던 노동 성과들에서 배제된 채였습니다. 마지막으로, 이 헌법의 한 조항(토지개혁 관련)은 정치적 갈등을 낳았고, 이것이 훗날 주앙 굴라르트 정부를 덮친 위기의 핵심에 자리하게 됩니다.
각 정부별 주요 사건
PSD·PTB 연합 소속의 에우리코 가스파르 두트라는 1945년 대선에서 UDN 후보 에두아르두 고메스를 누르고 브라질 대통령으로 선출되었습니다. 두트라 정부는 먼저 자유주의적 경제정책을, 이후 국가 개입을 특징으로 하는 정책이라는 상반된 두 가지 경제정책을 시행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임기 동안 두트라는 노동자의 파업권을 상당히 제한하는 장치들을 마련했습니다. 그의 정부에서 가장 두드러진 부분은 외교 정책이었습니다. 1947년부터 두트라 행정부는 냉전 구도 속에서 미국의 이익에 무조건적으로 편승했고, 노동자 단체와 좌파 정당에 대한 탄압에 나섰습니다. 브라질 공산당(PCB)은 예컨대 1947년 불법화되었습니다.
1950년 제툴리우 바르가스는 이번에는 민주적 절차를 통해 브라질 대통령직으로 돌아왔습니다. 바르가스의 두 번째 정부는 정치·경제 프로젝트에 대한 야당의 반발과 높은 물가상승률로 인해 큰 정치적 위기를 겪은 소란스러운 시기였습니다.
두 번째 임기에서 바르가스는 내셔널리즘적 개발 정책을 추진했는데, 이는 주로 UDN으로 대표되며 국제 자본과 연결된 야당 세력의 강한 반감을 샀습니다. 이 프로젝트의 구호 중 하나는 석유 개발권의 국영화였고, 이는 페트로브라스(Petrobras)의 창설로 이어졌습니다.
바르가스 정부의 정치 위기는 인플레이션과 생활비 상승에 대한 국민의 불만으로 더욱 심각해졌고, 파업과 시위로 이어졌습니다. 주앙 굴라르트의 노동부장관 임명은 야당이 바르가스 정부를 공산주의라고 비난하는 빌미가 되었는데, 이는 사실이 아니었습니다.
바르가스의 최대 정적이자 UDN의 지도자였던 카를루스 라세르다가 저격 공격을 받아 그의 호위병(공군 군인)이 사망하는 사건이 벌어지면서, 위기는 감당할 수 없는 수준에 이르렀습니다. 이 사건에서 파생된 정치적 폭풍은 바르가스를 고립시켰고, 결국 1954년 8월 24일 그는 자살로 생을 마감했습니다.
바르가스의 자살 이후 브라질의 정치 위기는 한층 격화되었고, 단 17개월 동안 브라질에는 세 명의 대통령이 연달아 등장했습니다. 바로 카페 필류, 카를루스 루스, 네레우 하무스입니다. 우데니스트(U DN) 야당은 1955년 선거를 저지하려고 움직였지만, 육군부 장관 엔히크 테이세이라 로트가 반격 쿠데타(소위 예방 쿠데타)를 일으켜 JK의 취임을 보장했습니다.
주셀리누 쿠비체크(JK)는 PSD·PTB 연합 후보로서, 우데니스트 후보 주아레스 타보라를 근소한 차이로 누르고 브라질 대통령에 선출되었습니다. 임기 동안 JK는 브라질의 경제 현대화와 산업화를 위한 강력한 프로젝트를 추진했습니다. 목표 계획(플라누 지 메타스)으로 알려진 이 프로젝트는 브라질 경제의 일부 핵심 분야에 대한 투자 우선순위를 설정했습니다.
JK는 도로망 확충과 국가 에너지 역량 확대에 막대한 투자를 집행했습니다. 항만 인프라 역시 대규모 투자를 받은 분야였습니다. JK의 프로젝트에는 외국 산업의 국내 유치도 포함되어 있어 일자리 창출에도 기여했습니다.
이 정부가 추구한 현대화의 상징은 브라질의 새 수도 건설, 즉 브라질리아 건설이었습니다(1960년 정식 개청). 그러나 JK의 과도한 지출은 브라질의 부채 증가와 인플레이션 상승으로 이어졌습니다. 또 하나 매우 부정적인 지점은 교육과 식량 생산 분야에 대한 투자가 미미했다는 것인데, 이는 1960년대에 폭발적으로 드러나는 심각한 문제의 씨앗이 되었습니다.
1960년 대선에서는 처음으로 우데니스트 후보 자니오 쿠아드로스가 승리했습니다. 그의 선거운동은 브라질 정치에서 일체의 비도덕성을 쓸어내겠다는 도덕주의적 연설에 기반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자니오의 정부는 실패작이라 평가되는 조치들로 가득했습니다.
대통령으로서의 그의 태도는 자신의 지지 기반이던 UDN을 포함해 의회와 여러 차례 충돌을 빚게 만들었습니다. 게다가 자니오는 생활비 상승으로 이어지는 경제 조치들과 더불어 국민의 반감을 산 기이한 조치들(예: 해변에서 비키니 착용 금지)을 시행했습니다.
그러나 그의 정치 생명을 완전히 끝낸 것은 외교 정책이었습니다. 자니오는 '독자 외교 노선'으로 알려진 정책을 추진하여 미국과의 관계를 재조정하고 소련 진영과의 외교 협상의 길을 열었습니다. 이는 보수 성향의 동맹 세력을 크게 불쾌하게 만들었고, 자니오는 고립 끝에 1961년 대통령직에서 스스로 사퇴합니다.
대통령 승계 과정은 혼란스러웠습니다. 군은 '장고'(주앙 굴라르트)의 취임을 받아들이지 않고 그를 공산주의자로 몰았습니다. 브라질이 내전 직전까지 몰린 상황에서 하나의 정치적 대안이 채택되었습니다. 바로 장고가 의원내각제 아래에서 대통령에 취임하는 것이었습니다.
의원내각제는 오래가지 못했고, 1963년 1월 국민투표를 통해 장고는 대통령으로서의 전 권한을 회복했습니다. 이후 그는 나라의 구조적 변혁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는데, 이른바 기본 개혁(레포르마스 지 바이지)입니다. 브라질의 여러 분야에 걸친 개혁안들이 제안되었지만, 특히 토지개혁 문제를 둘러싼 협상 교착이 장고 정부의 추진력을 마비시켰습니다.
UDN으로 대표되는 야당 세력은 주앙 굴라르트 정부에 대한 쿠데타 음모를 꾸미기 시작했습니다. 갈등이 누적되면서 PSD 인사들도 야당 쪽으로 이탈했습니다. 이 모든 것이 진행되는 동안 미국 정부는 브라질 정치의 방향에 개입하여 보수 성향 정치인들의 선거에 자금을 대고, 쿠데타를 조직하는 데 힘을 보태었습니다.
민군 쿠데타의 실행은 브라질의 대기업들(즉, 민간 세력)이 모인 사회연구경제연구소(IPES)와, 오랫동안 브라질에 권위주의 정부를 세울 계획을 세워온 군 수뇌부가 결합된 결과물이었습니다. 쿠데타는 1964년 3월 31일 주이스지포라에서 일부 군 세력이 반기를 들면서 시작되었고, 4월 2일 아우루 지 모라 안드라지가 브라질 대통령직을 공석으로 선포하면서 확정되었습니다. 이로써 제4공화국의 민주주의 실험은 막을 내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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